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성폭행, 무죄로 만들어 드려요” 돈벌이 수단 된 성범죄

알림

“성폭행, 무죄로 만들어 드려요” 돈벌이 수단 된 성범죄

입력
2018.04.23 04:40
14면
0 0

미투로 고발 늘자 변호시장 활개

영업담당 사무장,브로커 투입까지

성공사례 홈피 공개,감사 후기도

맞고소 부추겨 수임 늘리기 악용

온라인에 '성범죄전담'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각종 법무법인 광고. 네이버 검색결과 캡처
온라인에 '성범죄전담'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각종 법무법인 광고. 네이버 검색결과 캡처

‘강간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이 되었다면 아주 적극적인 법적 자기방어가 필요합니다. 우리 변호인단은 경찰, 검찰 출신의 변호인들로 구성되어 찾아오시는 의뢰인들께 적극적인 상담과 더불어 변호를 진행합니다. 성폭력, 적절한 대응을 통해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성범죄 전문’을 표방하는 한 법무법인의 광고 문구다. 아울러 실명만 지운 성공사례 판결문 1,655건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강제추행부터 성희롱, 준강간까지 각종 성폭력 가해자가 이곳 변호사들로 인해 구원받고 감사의 말을 남기는 ‘후기 게시판’도 성황이다.

최근 ‘미투(#Me Too)’ 운동을 계기로 성폭력 고발이 늘면서, 가해자를 편드는 ‘성폭력 가해자 변호’ 시장도 덩달아 활개를 치고 있다. ‘성범죄 전담변호사’ ‘성범죄 전문변호사’ ‘성범죄 전담센터’ 등을 인터넷에 키워드 검색하면 무수한 광고가 쏟아진다. 아동성추행, 강간범죄, 기타 성범죄 등을 예시로 들며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끕니다’는 광고를 서울 시내 지하철역 내에서 하다가 논란이 커지자 광고판을 철거한 법무법인도 있다. 회원 수가 2,083명에 달하는 성범죄대응인터넷카페의 상담 댓글에는 ‘OO법무법인이 잘 한다더라’는 후기 나눔이 활발하다.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성범죄 전담이 전문성을 키우는 방편이자 하나의 경영전략이다. 성범죄 변호를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성범죄 변호는) 솔직히 돈이 되는 장사인 게 사실”이라며 “변호사 사무실마다 담당 영업을 하는 사무장을 상주시키거나, 일명 남초카페에 돈을 내고 광고하거나, 브로커를 투입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대검찰청 2017 범죄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성폭력 범죄는 최근 10년 새 두 배 남짓(2007년 29.1→2015년 60.3건) 폭증했는데, 강간 사건의 불구속비율은 91.26%, 불기소비율은 47.38%에 이른다. 결국 성범죄는 갈수록 커지는, 변호사들의 능력이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은 시장인 셈이다.

성폭력 사건을 ‘변호사만 잘 만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여기게 하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들 변호사들은 대개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범죄전력이 전혀 없는 초범이며, 피해자와의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진 점’ 등을 들어 무혐의를 받아내거나 감형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단순 방어에만 그치지 않고 무고나 명예훼손 등 맞고소를 부추겨 수임 사건을 늘리는 방식으로 돈벌이에 악용하는 사례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건별로 수임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맞고소를 할수록 변호사 입장에선 돈벌이 명목이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경찰청이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을 통해 취합한 ‘성폭력 역(逆)고소 현황’을 보면, 1~3월 접수된 고소장 20건 중 무고 혐의가 밝혀져 피해자와 피의자가 바뀐 사건은 1건뿐이었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성폭력 가해자의 ‘대응방법’이 불법과 합법 사이 경계에서 ‘영업수단’이 되고 일반인들에게 쉽게 ‘학습’되고 있다”라며 “변호사들이 성폭력 가해자를 변호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법의 허점이나 느슨한 부분을 틈타 상업적으로 활용하지 않도록 변호사 윤리 차원에서 규율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