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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톱이라 쓰고 #여유라고 읽는다

입력
2016.06.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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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길 둘레에 자리해 경리단길을 굽어보는 PP서울 루프톱. 강태훈 포토그래퍼
소월길 둘레에 자리해 경리단길을 굽어보는 PP서울 루프톱. 강태훈 포토그래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정문 앞. 그곳엔 ‘느리게 걷기’가 있었다. 2003년 12월 개업했던 이 카페는 테라스 문화의 효시였다. 느리게 걷기 이전의 테라스란 매연과 소음이 가득한 도시의 궁상이었으나, 이후의 테라스는 도심의 일상을 관람하는 쾌적한 여유의 아이콘이 되었다. 실내보다는 다소 덥거나 춥고 불편할지라도 테라스가, 느리게 걷기의 그 배타적으로 트인 공간이 순식간에 위풍당당한 명소가 되었다. 유독 인도 폭이 넓고 도보 통행이 드물었던 도산공원 앞 거리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당시에도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이 있었다면 한껏 차려 입은 남녀의 셀피(selfie)에는 “#압구정 #도산공원 #느리게걷기 #일상 #테라스 #여유” 같은 태그가 붙어 있었을 터다. 느리게 걷기는 현재 도산공원 앞에서 철수했지만, 그곳에서 비롯된 테라스 문화는 방방곡곡에 뿌리 내렸다.

쾌적한 여유를 실현할 수 있는 테라스가 현실에 흔하지는 않다. 절대다수의 테라스가 실상은 매연을 염려해야 하며 요란한 자동차 경적 소리에 시달리는 불쾌감까지 견뎌야 하는 대개의 도시 풍경 속에 있다. 이 인구밀도 높은 나라에서 테라스가 어울리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유럽처럼 근사한 광장을 골목 코너마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건축선에 꽉 채워 붙여 건물을 지어도 모자란 판국에 테라스를 배려하는 설계도 언감생심이다. 정원을 가진 카페가 어쩌면 한국적 테라스의 이상향이자 최대치다.

해방촌 안쪽에 파고든 루프톱 오리올. 강태훈 포토그래퍼
해방촌 안쪽에 파고든 루프톱 오리올. 강태훈 포토그래퍼

경치가 액자가 되다, 경리단길과 해방촌

용산구의 유행 첨병, 서울의 20, 30대 외식 시장 유행을 이끌어가고 있는 경리단길과 해방촌에서는 부동산마다 ‘옥상’을 찾는 대기자가 줄을 섰다고 한다. 한 축은 ‘옥탑방’ 입주희망자들이요, 한 축은 ‘루프톱’ 카페, 식당을 열고 싶은 예비사장님들이다. 양쪽 다 바람은 N서울타워의 불빛을 무드등으로 달고 한강 너머까지 탁 트인 전경을 액자로 걸고 싶다는 데에 있다. 거기에 희망 냉방 모드는 남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찬 바람과 한강에서 넘실대던 시원한 바람이 치받는 맞바람 모드다. 이 천혜의 환경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한 쪽은 물론 사장님이 되어 풍족한 생계를 누리고픈 후자 쪽이다.

물론 그 정도 이상적인 입지를 지키고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그곳에 살아온 거주민들이다. 대개는 노년층에 속하는 그들은 젊은 시절부터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야 당도해 몸을 뉘이던 익숙한 집을 떠날 마음이 없으며, 그래서 상업용은 물론 용도 변경이 가능한 주거용도 매물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해방촌 대용부동산 신정자 중개인의 설명이다. 사정은 소월길을 돌아 경리단길 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지역에서 N서울타워, 서울 전경, 시원한 바람을 갖춘 루프톱의 상업적 가치가 발굴된 데는 경리단길 초입에 자리한 ‘서울살롱’, 일명 ‘추로스 골목’이라 불리는 녹사평대로46가길의 ‘아방가르드 루프톱’ 등 재빨리 옥상을 열어젖힌 곳들의 공헌도가 높다. 이전부터 ‘화수목(현재 폐업)’ ‘하베스트 남산’ 등이 있었지만 현재의 루프톱 붐과는 관계가 적은 30대 후반 이후 경제력 있는 세대들이 편히 여긴 곳이었다. 지금의 붐을 이끄는 것은 좀 더 젊고 SNS 욕구가 강한 30대 중반 이전의 젊은 층이다.

3 흰 천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동남아의 리조트가 떠오르는 PP서울의 루프톱. 강태훈 포토그래퍼
3 흰 천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동남아의 리조트가 떠오르는 PP서울의 루프톱. 강태훈 포토그래퍼

현재 가장 예약이 어려운 루프톱은 단연 ‘PP서울’인데, 태국 음식과 근사한 실내 장식, 훌륭한 전망을 함께 즐기는 곳으로 작년 8월 8일 문을 열었다. 대표 최동길씨의 이야기를 듣자면 루프톱 붐이 시작된 것이 어느 시기였지 가늠해볼 수 있다. “20대 시절 태국에 몇 년간 살며 현지에서 식당을 하기도 했어요. 서울에 돌아와 제가 좋아하는 태국 리조트의 분위기를 즐기며 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차리려고 알아보다가 현재의 건물을 계약하게 됐죠. 임대 매물로 나온 지 10개월이 넘도록 들어오겠단 사람이 없던 곳이었어요.” 루프톱이 근사한 유행이 된 것은 고작 2015년부터의 일이다.

오리올 루프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강태훈 포토그래퍼
오리올 루프톱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강태훈 포토그래퍼

천혜의 입지를 향한 열망에 휩싸여, 루프톱 매물의 멸종에도 불구하고 예비사장님들은 기어코 가물에 콩 나듯 나오는 그것을 쟁취했다. 남산자락 옥상엔 교회 불빛보다 잦게 루프톱이 들어 찼다. 해방촌오거리로부터 시작해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 이르기까지 소월길 둘레로 가수 정엽의 카페(1층), 바(2층)이자 팬들의 성지이기도 한 ‘오리올’, 육덕진 햄버거가 이름난 ‘더백푸드트럭’, ‘PP서울’, ‘하베스트 남산’이 이어진다.

그랜드하얏트서울 앞에서 육군중앙경리단을 향해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북유럽 스타일의 카페 ‘그레트힐란(graddhyllan)’, 곳곳에 식물이 가득한 카페 ‘아워커뮨(our commune)’, ‘서울살롱’을 지나치게 된다. 여기서 추로스 골목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아방가르드 루프톱’이 멀리서부터 시야를 사로잡고, CF감독 용이 감독과 친구들이 연 피시앤칩스 전문 식당 ‘세컨드 그라운드’에서도 앙증맞은 전등을 촘촘히 매단 루프톱을 만날 수 있다. 다시 녹사평대로로 나와 남산2호터널 옆 샛길로 들어서면 DJ그룹 ‘360 사운즈’가 운영하는 식당 ‘하이드아웃서울’이 숨어 있다.

명동에서 남산과 도심을 바라보는 L7명동 21층 루프톱 플로팅. L7명동 제공
명동에서 남산과 도심을 바라보는 L7명동 21층 루프톱 플로팅. L7명동 제공

호텔 붐을 타고 나타난 도심 루프톱

테라스 문화의 진화요, 고밀도 지역의 공간 확장인 루프톱은 삼청동, 연남동 등 곳곳에서 꾸준히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다른 한편, 도심 한가운데 초고층에서도 루프톱 열풍은 거세다.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작년과 올해 자고 일어나면 요충지마다 새로운 호텔이 봄비 맞은 죽순처럼 돋아나 있다. 바로 얼마 전인 5월 23일에는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이, 6월 1일에는 티마크그랜드호텔 명동이 문을 열었다. 2016년 개업 대기 중인 호텔은 아직도 줄이 한참 남았다. 버짓호텔, 비즈니스호텔, 부티크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3, 4성급 호텔들은 서울 도심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리모델링 또는 신축을 통해 탄생한 이들 호텔들은 기존의 특급호텔들과 다른 차별화 전략을 낼 필요가 있다. 장안에 명성을 날리는 근사한 레스토랑이나 극진한 서비스는 이미 특급호텔에서 충분히 피력 중인 매력이요, 체급부터 불리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몇몇 호텔은 이에 옥상에 낯선 풍경을 펼쳐 놨다. 루프톱 식당, 바를 낸 것이다.

롯데호텔 계열 버짓호텔인 L7명동의 옥상층인 21층에는 ‘플로팅’이 올해 1월 12일 문을 열었다. 구조물 사이로 N서울타워가 빠끔히 보이는 이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을 컨설팅하는 박형진 대표(어반딜라이트)는 뉴욕과 홍콩, 방콕 등지에서 목격한 세계적인 루프톱에 주목했다. 그 중 결정적인 것은 뉴욕이었다.

“맨해튼 미트패킹 지역에 있는 스탠다드호텔 옥상의 르베인(Le Bain)에 들어가려는 쫙 빼 입은 사람들을 봤죠. 동남아 지역의 대도시에 있는 루프톱바들은 워낙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어요. 사시사철 여름인 기후 덕분에 운영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4계절이 있는 뉴욕에서도 금융계, 전문직 종사하는 사람들이 줄 서는 곳이라면 서울에서도 분명 트렌디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실제 루프톱은 전세계적인 유행이기도 하고요.” 플로팅에 갔을 때 입성 좋은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것을 보면 그의 안목이 틀림 없었던 모양이다.

방콕의 호텔 ‘르부아 앳 스테이트 타워’의 루프톱 ‘시로코(Sirroco)’와 ‘반얀트리 방콕’의 루프톱 ‘버티고 앤드 문(Vertigo&Moon)’가 세계적으로 도시를 상징하고 있는 명소가 된 예처럼, L7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새내기 호텔들 역시 명소로서 손색 없는 루프톱을 운영 중이다.

남산 뷰로 이름난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루프톱 르 스타일.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제공
남산 뷰로 이름난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루프톱 르 스타일.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제공
잠들지 않는 동대문을 굽어 보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더 그리핀 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제공
잠들지 않는 동대문을 굽어 보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더 그리핀 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 제공
논현동 도심에 자리한 호텔 카푸치노 루프톱. 호텔 카푸치노 제공
논현동 도심에 자리한 호텔 카푸치노 루프톱. 호텔 카푸치노 제공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의 루프톱 바 클라우드.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제공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의 루프톱 바 클라우드.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 제공
0콘래드 서울이 5월부터 9월까지 운영하는 루프톱 버티고. 콘래드 서울 제공
0콘래드 서울이 5월부터 9월까지 운영하는 루프톱 버티고. 콘래드 서울 제공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루프톱의 ‘르 스타일(Le style)’은 남산을 드넓게 바라보는 최적의 입지로 이미 유명세를 누리는 중이다. 동대문에서는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더 그리핀 바’가 있다. 어둠이 내리지 않는 동대문 주변의 야경이 펼쳐진다. 강남에서는 논현동 도심의 호텔 카푸치노 루프톱바가 시원한 강남 풍경을 눈 앞에 내준다. 역삼동 주변의 마천루 야경을 보자면 머큐어 서울 앰배서더 강남 쏘도베의 루프톱 바 ‘클라우드’가 있다. 서쪽 여의도로 눈을 돌리면 콘래드 서울이 지난 5월 28일 9층에 오픈한 공중정원 ‘버티고(VVertigo)’가 여름을 맞았다.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루프톱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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