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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그 섬에 가고 싶다

입력
2018.06.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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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와 평화를 뜻하는 센토사 섬에서 세기의 만남이 있었다. 섬에서의 만남은 여느 인연보다 더 특별한 감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겉보다 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30여 년 전에 여수에서 배를 타고 찾아간 통영은 차라리 섬 같은 느낌이었는데 처음에는 같은 눈높이에서 만났던 151개의 섬을 얼마 전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위에서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통영의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는 배 몇 척이 유유히 떠있고 한 젊은이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그 유명한 낙조와 견줘도 꿀리지 않는다. 케이블카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통영 경제를 뒷받침하던 조선업이 해운업 침체로 덩달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긴 저물어 가는 것이 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다행히 통영은 섬과 바다가 내준 유적과 경관뿐만 아니라 음악가, 작가 등 예술자원까지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가 통영을 음악창의도시로 지정하고 국제음악제나 콩쿠르가 자주 열리면서 문화예술 자산이 한 도시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1980년대 조선업이 쇠퇴하고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쇠퇴했던 스페인의 공업 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랜드마크로 유치해 매년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빌바오 효과’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와 닮았다.

통영에 윤이상과 박경리가 있다면 산토리니에는 자유로운 인간의 원형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어 별로 가진 것도 없이 잃는 것이 두려워 애면글면하는 나 같은 이방인들을 끌어당긴다. 그곳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쏟아지는 강렬하고 순수한 빛이 육체를 관통해 급기야 영혼까지 스며들다가 해질녘에는 부드러운 오렌지 빛이 되어 하얀 집들을 물들이고 바다로 떨어진다. 지금은 산토리니의 자랑이 된 와인과 흰색 마을도 역경을 이겨낸 화산섬의 스토리를 품고 있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는 언뜻 콩 덩굴로 보일 정도로 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며, 가시 면류관 모양의 똬리를 틀고 밤바다에서 밀려온 안개를 가둬 물 대신 그 습기로 힘들게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귀하고 바람이 거세 사람들은 절벽에 동굴을 파고 움막생활을 했는데 앞집 지붕이 뒷집 마당으로 다닥다닥 붙어 눈부신 햇빛아래 아름다운 군무를 춘다. 가난한 섬 산토리니는 화산폭발로 생긴 화산재를 선물 삼아 유럽풍 고급 와인 빈산토(Vinsanto)를 만들고 푸른 칼데라 위에 파스텔톤으로 물드는 이아(Oia)마을을 탄생시켰다.

한 시인이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하니 또 한 소설가는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을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로 빛나는 별’이라고 한다. 산토리니의 포도밭 한 가운데에 자리한 민박집 여주인은 아침마다 우렁각시처럼 갖은 식재료로 우리의 식탁을 대가도 없이 가득 채워준다. 그가 소개한 식당은 이름이 하필 ‘굿 허트(Good Heart)’인데 주인 안나(Anna)는 우리 일행을 오랜만에 만났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헤어지는 형제자매처럼 끌어안고 견과류와 빈산토를 거저 내준다. 받은 선물들이 척박한 땅에서 자라며 타는 목마름을 한낱 습기로 견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가슴이 더 뻐근하다. 민박집 여주인의 남편이 마침 큰 선박을 인수하러 통영 근처에 가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우리나라와 그리스간 직항이 열리기도 전에 우리들 가슴 속에서 두 섬이 먼저 연결된다. 통영도 산토리니도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섬 사이에서 서성대는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저 안에 깊이 감추고 있다. 조르바처럼 거침없이, 대담하게, 육체와 영혼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을 때마다 그 섬에 다시 가고 싶다. 그 섬 가득 지천으로 피어있는 붉은 꽃 부겐빌레아의 꽃말도 ‘조화와 정열’이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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