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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살리기, 서울대생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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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고시촌 살리기, 서울대생 나섰다

입력
2017.06.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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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폐지로 유동인구 뚝

상인들은 “매출 반의 반토막”

대학생들 사회공헌 실천 사업

자투리땅에 중고품 거래장 설계

카페 빌려 취미활동 모임 조성

수많은 사시생들의 꿈과 추억이 깃든 신림동 고시촌 ‘동차합격’ 식당. 정반석 기자
수많은 사시생들의 꿈과 추억이 깃든 신림동 고시촌 ‘동차합격’ 식당. 정반석 기자

“사시 폐지되고 나서 다 빠져나가고 없지 뭐, 요즘은 그냥 그래.”

마지막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이 끝난 24일 오후, 서울 신림동 고시촌 식당 ‘동차합격’ 주인 김모(73)씨 표정은 허전함이 가득했다. 김씨는 13년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식당 이름 덕인지 몰라도 유독 사시생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김씨는 “매출이 반의 반으로 줄었다”며 “직장인들이 유입되긴 했지만 낮에도 왁자지껄하던 고시촌 활력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식당 맞은편 독서실도 원룸으로 용도를 바꾸는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9년간 사시를 준비하다 올해부터 법원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이모(39)씨는 “고시촌에 가볍게 앉아 쉴 벤치도 없어 서럽다”고 했다. 고시생들이 공부에 방해가 될까 일부러 사람과 거리를 두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 외로움 탓에 만남과 휴식공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 휴식공간이나 흡연구역이 별로 없는 동네 거리엔 이날도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사시생이 빠져 나가면서 적막하고 삭막하게 변하는 신림동 고시촌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며 서울대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고시촌 자투리 공간 활용 프로젝트’라는 사회공헌 실천사업을 진행하기로 한 서울대 환경대학원생 4명이 주인공. 건물을 세울 수 없도록 규정돼 쓰레기만 나뒹구는 60㎡ 이하 자투리땅들을 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유용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면서 이번 학기 내내 고시촌 곳곳을 살피는 것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대학원생 박경선(26)씨는 자투리 공유 창고, 일명 ‘무인 오프라인 중고나라’를 설계했다. 공유 창고에 물건을 가져다 놓고 판매나 교환,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구매자는 휴대폰 앱과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물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주민들이 모여 플리마켓(벼룩시장)도 열고, 자유롭게 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박씨는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대형 팬으로 담배연기를 흡입해주는 쉼터, 화분을 맡길 수 있는 동네정원, 공부에 지친 고시생들이 누워 쉴 수 있는 오아시스 공간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은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과 함께 1, 2개 아이디어를 선정해 올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공간 조성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뿐 아니라 사회복지학과 학생들도 고시촌 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미 ‘고시촌 지역 마을 만들기’라는 수업과제를 기반으로 ‘녹임: 녹두에서 모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팀장 고승환(21)씨는 “지역 카페들을 빌려 학생 주민 고시생들이 모여 취미활동을 통해 커뮤니티를 만들도록 돕겠다”고 했다. 이달 초 열린 설명회에 자취생 등 30여명이 모이기도 했다. 고씨는 “관악구는 1인가구 비율 44.9%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만큼 관계를 형성하려는 욕구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독서실과 서점이 즐비한 24일 오후 신림동 고시촌. 휴식 공간이 없어 길거리에 고시생들이 앉아 있다. 정반석 기자
독서실과 서점이 즐비한 24일 오후 신림동 고시촌. 휴식 공간이 없어 길거리에 고시생들이 앉아 있다. 정반석 기자
쓰레기가 나뒹구는 신림동의 자투리 공간. 박경선씨 제공
쓰레기가 나뒹구는 신림동의 자투리 공간. 박경선씨 제공
자투리 공간에 세워질 공유 창고 구상도. 박경선씨 제공
자투리 공간에 세워질 공유 창고 구상도. 박경선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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