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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탓 실직"... 뉴욕 신문업계 ‘러다이트 운동’

기사등록 : 2015.12.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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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12월 8일

뉴욕타임스 등 뉴욕 7개 신문이 1962년 12월 8일부터 114일 동안 파업했다. 게티이미지.

미국 뉴욕의 7개 신문이 1962년 12월 8일 한꺼번에 파업에 돌입했다. 엄밀히 말하면 뉴욕타임스 등 3 곳은 파업이었고, 뉴욕헤럴드트리뷴 등 4곳은 파업에 맞선 경영주의 직장폐쇄였다. 뉴욕 시민들은 장장 114일 동안 신문 없이 지내야 했다.

40년대 중반 이후 미국 노동운동은 퇴조기로 접어들었지만 전국 800개 지부에 11만3,000명의 회원을 보유한 미국인쇄노조(International Typographical Union)는 신문ㆍ출판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건재했다. 45~61년 사이 ITU는 335건의 파업(과 직장폐쇄) 투쟁을 주도했다. 60년대 초는 50년대부터 시작된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 즉 컴퓨터 식자ㆍ조판 시스템이 인쇄공들의 목줄을 죄기 시작하던 때였다. 신문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노조경영을 고집해온 LA타임스는 이미 50년대에 첨단CTS 시스템을 도입, 주식시황표 등을 증권거래소에서 보내온 디지털 파일로 인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식자ㆍ조판공이 실직했다. 뉴욕지부는 ITU의 심장이었다. 저 파업은 그러니까, 그 위기감 속에서 시작된 19세기 초 영국 러다이트운동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컴퓨터조판시스템 도입에 따른 신문제작업계 구조조정이 파업의 핵심 현안이었다. 위키피디아.

12월 7일 산별 노사협상단이 8번가 뉴요커호텔에 마주앉았다. 노조 요구는 주당 98달러 임금 인상과 35시간 근로시간 준수였지만, 이면에는 CTS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더 절박한 숙제가 있었다. 협상은 부결됐고, 노조는 상대적으로 경영여건이 나은 4개 신문의 파업을 선언했다. 발행인협회는 전 신문사의 직장폐쇄로 응수했다.

배너티페어의 2012년 보도에 따르면, 뉴스와 정보를 신문에 의존하던 당시 뉴욕은 “혈맥이 막힌 형국”이었다. 부고를 전하지 못해 장례식장이 텅 비었고, 꽃 가게들이 파리를 날렸다. 입양 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복지기관들은 절박한 소식을 전할 길이 없어 발을 굴려야 했고, 마약퇴치사업 등 시당국의 대민 행정도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신문 가판 운영자를 비롯한 수많은 보급소 종사자들도 사실상 실직했다. 파업 참가자는 기자 포함 1만7,000여명에 달했다.

대치국면의 돌파구를 연 석간 뉴욕포스트 발행인 도로시 시프.

돌파구는 직장폐쇄에 동참했던 뉴욕포스트의 여성 발행인 도로시 시프(Dorothy Schiff)가 열었다. 그는 63년 2월 28일 발행인협회 탈퇴와 함께 다음 월요일부터 신문을 발행하겠다고 선언했다. 뉴욕포스트는 뉴딜정책과 시민권운동 등에 우호적인 자유주의 매체였다. 뉴욕포스트는 3월 4일 신문 발행을 재개했고, 나머지 신문 노사도 나흘 뒤(8일) 합의했다. 주당 12.63달러 임금 인상과 함께 경영진이 CTS를 도입할 경우 이익금을 노조와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50년 뒤인 오늘의 신문ㆍ출판산업은 다시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동요하고 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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