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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가 보수를 몰락시킨 게 아니라 몰락한 보수가 홍준표에 매달린 것”

입력
2018.06.18 04:40
수정
2018.06.19 08: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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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당, 박근혜당 이미지 그대로 사죄 쇼 그만하고 정신 차려야” #2 건전한 보수 목소리와는 거리 “시대 역행하는 극우정당 이미지 태극기 부대 말고 누가 찍나”
김성태(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무릎을 꿇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김성태(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무릎을 꿇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단식하고 무릎 꿇고 하면 국민들이 또 속을 것 같은지…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굴 보고 정치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를 보수성향으로 생각한다는 경기 일산 주민 김윤기(40ㆍ회사원)씨는 17일 자유한국당 얘기를 꺼내자 더 이상 말도 꺼내기 싫다며 혀를 찼다.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이 아닌 소수정당에 표를 줬다는 김씨는 “민주당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한국당이 해도 너무 못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보수성향의 주변 지인들과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모여 한 얘기를 가감 없이 전했다.

6ㆍ13 지방선거 및 재보선에서 보수야당의 몰락을 지켜 본 보수성향 시민들, 심지어 보수야당 내부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그렇게 신호를 보냈는데 이를 무시하더니 또다시 무릎 꿇고 사죄한다는 얘기에 “이쯤 했으면 쇼 좀 그만하고 제대로 정신차릴 때가 된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일반 시민들의 뇌리 속에는 아직 ‘탄핵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잔영이 한국당 주변을 맴돌고 있다. 실명을 밝히기 꺼려한 공무원 송모(39)씨는 “한국당 하면 박근혜 덕분에 호가호위 하다 망하자 그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무늬만 바꾼 당이라는 인상 뿐”이라고 말했다. 부산 출신의 대학생 이영석(25)씨도 “그냥 한국당은 아직 박근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라고 했다.

한국당을 보수가 아닌 극우의 대표 정당으로 생각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경기 부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강태희(57)씨는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한국당은 각종 발언이나 정치 노선이 극우세력만 겨냥한 것 같다”며 “의석수만 많지 태극기 부대를 대표하는 대한애국당과 다를 바가 전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민주당 후보에 표를 줬다는 20대 한국당 지지자 송유근(28)씨 역시 “한국당 지지기반이 태극기 집회 나오는 분들 말고 누가 있느냐”며 “건전하고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한국당을 찍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보수가 처한 지금의 현실이 단순히 ‘홍준표의 문제’로만 치환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진단도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홍준표가 보수를 몰락시킨 게 아니라 몰락한 보수가 홍준표에게 매달렸다"고 말했다. 인물도, 비전도, 당내 소통도 없는 3무(無) 보수가 결국은 홍준표의 실패한 정치 실험이 가능했던 토양이었다는 얘기다.

이번에 지방선거 사상 최초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산에 사는 실향민 이중수(80)씨는 “내가 평생을 지지했던 한국당이 남북관계를 너무 정략적으로 계산하고 툭하면 ‘위장평화쇼’라고 하는데 그런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도저히 찍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골수 보수’ 성향의 그가 투표를 포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울산에서 식당업을 하는 정재성(58)씨는 “20여년간 변함없이 보수후보를 찍어오다 이번에 처음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며 “지역경제 위기를 타개하려면 무능한 야당보단 여당 후보가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보수의 품격을 얘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당을 아직 ‘새누리당’이라고 칭하는 직장인 이진석(49ㆍ대전 거주)씨는“탄핵 전에는 누구를 죽이니 살리니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하는 의원이 버젓이 당에 남아 있고, 막말을 하는 대표는 왜 그게 막말인지를 되묻는 당을 지지한다는 말을 주변에 어떻게 꺼낼 수 있겠느냐”고 그간 쌓인 응어리를 쏟아냈다. 경기 용인에 사는 전직 공무원 안경옥(68)씨는 “홍준표가 1년 넘게 당에 들어와서 휘젓고 다녀도 누구 하나 제지 못한 게 한국당의 현실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보수에 완전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민심이 보수정당에 매서운 죽비를 내리친 것은 보수의 절멸을 요구한 게 아니라, 그동안의 적폐를 깨고 나와 현 정부의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정치세력으로 기능해달라는 요구였다. 강태희씨는 “문재인 정부가 초반에 잘하고 있지만 어떤 권력이든 견제세력이 필요하다”며 “한국당이 대안을 제시할 정도의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게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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