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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공포ㆍ폐허 속 새 생명에 내민 따뜻한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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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공포ㆍ폐허 속 새 생명에 내민 따뜻한 손길

입력
2017.11.1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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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 주부 김현옥ㆍ필리핀인 셰릴씨

“대피소 ‘명당’ 내준 노부부에 감사

밥 갖다주고 위로해준 이웃들에 큰 감동

정부가 속히 임시거처 마련해 주길”

오는 22일 출산예정인 김현옥(왼쪽)씨가 16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문명호(가운데) 포항시의회 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포항시의회 제공
오는 22일 출산예정인 김현옥(왼쪽)씨가 16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문명호(가운데) 포항시의회 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포항시의회 제공

처음 당하는 지진 공포. 몸서리치는 두려움에도 엄마의 강한 의지와 주위의 보살핌 속에 새 생명의 기운은 꺾이지 않았다.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체육관. 전날 발생한 규모 5.4 강진으로 몰려 온 1,000명 안팎 대피 시민들 틈으로 고단한 얼굴을 한 두 여성이 눈에 띄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도드라지게 볼록 나온 배를 연신 쓰다듬는 모습. 만삭의 결혼 6년 차 전업주부 김현옥(33)씨와 필리핀에서 4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 이주 여성 무릴라 셰릴(37)씨다.

이들 얼굴에는 공포가 남긴 잔상이 남아 있었다. 포항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피해규모가 컸던 흥해읍 소재 대흥온천맨션과 만서세화아파트가 이들이 살고 있던 곳. 가전제품이 엎어지고, 옷장과 식탁이 쓰러지고,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집을 뛰쳐나온 게 바로 전날이다. “머리 속에는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 하나뿐이었어요.”

특히 김씨가 느꼈던 공포는 유난히 강했다. 뱃속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기로 한 날이 22일. 딱 일주일 후 둘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평온함을 되찾으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도 진정이 안 되네요.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바깥세상을 무서워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함께 대피한 이웃들은 이들에게 큰 힘이 돼 줬다. 반복되는 여진에 모두들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만삭의 임신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줬다. 벽에 등을 기댈 수 있고, 통로도 가까워 대피소 내에서 ‘명당’으로 꼽히는 체육관 가장자리를 선뜻 내준 노부부, 추운 날씨에도 체육관 밖 ‘밥차’에서 한끼 식사를 대신 받아준 중년 여성, “잠자리가 불편해서 어쩌냐”며 옷가지로 직접 만든 베개를 머리맡에 놓아준 동년배 여성. “식사나 과일을 전해주고 따뜻한 격려를 계속 해줬어요.”(셰릴씨), “뱃속 아이도 주위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을 온전하게 느꼈을 거에요.”(김씨)

다만 두 사람은 출산 후가 걱정이다. 당장 살던 집 곳곳에 균열이 생기면서 갓난아기를 데려갈 수 없는 처지다. “정부에서 빨리 임시거처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씨는 16일 밤 출산을 위해 포항에 있는 한 여성전문병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셰릴씨는 다음달 초 출산예정일까지 당분간 체육관에서 지내기로 했다. 두 엄마는 뱃속 아이를 토닥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머지 않아 빛을 보게 될 내 아이가 뱃속에서 느꼈던 이웃의 배려와 온정을 언덕 삼아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나갈 거에요.”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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