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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양수로 가득찬 화면 - 영화 <다우더>

입력
2014.10.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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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우더' 한 장면
영화 '다우더' 한 장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The Shiningㆍ1980)을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주는 압도적인 몇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유령에 홀린 소설가 잭(잭 니콜슨 분)이 가족을 살해하려는 이야기다. 복도를 따라 움직이는 스테디 캠의 이미지가 백미인 공포 스릴러로, 영화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는 일부 장면들은 영화사(史)에도 자주 등장하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하지만, 필자가 특히 이 장면을 잊지 못하는 것은 영화 속 복도가 주는 기괴한 인상 때문이다. 샤이닝에는 ‘복도가 주인공’이라 할 만큼 복도가 자주 등장한다. 폭설로 고립된 호텔의 빈 복도에서 잭의 아들 대니는 유령들이 아버지를 미치게 하고 있음을 알아 차린다. 그때 대니의 공포에 질린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이제 나와 가족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필자는 한번도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건 충격의 능선을 넘어 닿아본 적 없는 공포가 되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위험 앞에서 언제나 우리를 돌보고 보호해주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샤이닝이라는 영화가 인간내면에 깊숙히 침투할 수 있었던 결정적 탄두가 무엇이지 묻는다면 나는 답할 수 있다. 한 순간 가족을 살해할 수도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잠재된 위험성’이라고.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작품 중에 ‘다우더’는 샤이닝에서 보았던 ‘원초적 공포감’을 떠올리게 하는 무엇이 있다. 샤이닝이 유령에 홀린 잭과 아들 대니에게 이야기의 초점을 맞췄다면, ‘다우더’는 삐뚤어진 모성애로 얼룩진 엄마와 그것에게 벗어나려는 사춘기 소녀 산(구혜선 분)의 이야기로 집중된다. 산에게 엄마는 늘 낯선 사람이었으며 잠재된 공포의 존재다. 엄마는 산에게 집착하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살기 위해선 부모를 벗어나야 한다는 프레임 측면에선 샤이닝과 다우더는 갈등의 양상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다우더는 샤이닝 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 쌓여지는 ‘친연성에 대한 공포감’을 넘어서려고 한다. 샤이닝이 가족이라는 존재에 다가갈수록 공포가 되어가는 감정의 질서라면, 다우더는 친족에 가까이 갈수록 외로움이 되어가는 감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우리 모두가 한번쯤 가져보았던, 여전히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외로움을 건드린다.

냉정히 말해 이 영화는 공포보다는 외로움에 관한 영화다. 본질적으로 샤이닝과 확연히 다른 질감을 가져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농밀하게 요약하면 영화 다우더는 외로움이 공포가 되어버릴 것이 두려워 엄마를 떠났던 한 소녀가 오히려 더 외로워져 다시 엄마를 찾는 이야기다. 엄마를 떠난 딸이 예상치 못했던 임신을 한 후 엄마를 찾아오게 되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어머니와 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담은 다우더는 결국 모성에 관한 이야기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딸의 회귀를 보노라면 두 가지 질문이 생겨난다. 하나는 ‘엄마가 되어보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자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이다. 그건 감독이 관객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상실의 세계를 몸 속에 지닌 여성이 가진 외로움의 다른 화법일지 모른다고.

영화는 분명 어둡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사람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다. 좋은 이야기의 구성에는 그러한 ‘자아 찾기’라는 여정이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떠나 스스로를 찾아가는 드라마에는 성장통이 내재율처럼 녹아 들어 있다. 다우더에는 이러한 미덕이 잔류한다. 성장통에는 상실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고통과 연민이 공존한다. 공존은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공존은 우리가 살기 위해 치러야 할 외로움이며 그리움이기도 하다. 영화 다우더엔 담담하지만 이러한 성장통의 맥박을 담으려는 감독의 섬세한 시야가 있다. 큰 모성은 단순한 여성성을 넘어선다. 도시로 이 화면 속의 양수가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김경주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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