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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미움의 기술

입력
2017.12.11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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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미워지면 반드시 찍어 눌러야 하는 심성은 ‘미움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한국사회에 가장 부족한 기술 중 하나가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미워하는 바로 이 ‘미움의 기술’이다.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누군가 미워지면 반드시 찍어 눌러야 하는 심성은 ‘미움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한국사회에 가장 부족한 기술 중 하나가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미워하는 바로 이 ‘미움의 기술’이다. 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엄마, 나 ○○이가 너무 싫어. 자꾸 귀찮게 해.”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마치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속삭였을 때,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 “어, 그게…”만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바쁘게 다양한 답안이 지나갔다. ①착한 아이는 그럼 못 써요. ②그 친구를 좋아하려고 노력해봐. ③네가 먼저 원인을 제공한 거 아냐? ④싫으면 놀지 마.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①은 섣부른 도덕적 재단으로 아이를 비난, 대화 단절을 야기하고 ②는 인간의 감정을 너무도 손쉽게 변환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는 얕은 인간이해를 드러내며 ③은 전형적인 피해자 귀책 논리 ④는 무책임한 회피 기제이기 때문이다. 노력해서 오(惡)가 호(好)로 바뀔 수 있다면 세상에 싫은 사람이 왜 있을 것이며,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착한 아이란 정서발달에 문제가 있거나 그 자신을 감정의 주인으로 상정하지 못한 채 남의 비위만 맞춰주는 비주체적 아이가 아니겠는가. 생겨난 감정 자체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그것이 건강하고도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부모의 역할이란 자고로 이와 같아서 나는 아이의 저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을 도출해야만 했다. ‘미움의 기술’을 연구할 필요가 생겨난 것이다.

먼저 미워하는 자들의 특성을 살펴보자. 왕년에 많이 해봐서 내가 또 잘 아는데, 일단 그들은 미움의 대상에 관심이 너무 많다. 적의 동태를 감시해야 하는 척후병처럼 미운 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며, 신변의 모든 정보를 백과전서파 수준으로 입력하고, 업데이트 한다. 이렇게 힘들게 수집하고 집대성한 정보를 혼자서만 즐길 수는 없는바, 은밀하고도 대대적인 유통이 필수다. 자신의 증오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타자, 더 넓게는 공동체의 승인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 자를 미워하는 나의 이 감정은 정당하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그는 늘 누군가를 만나 열심히 헐뜯고 다니며, 자가 발전하는 이 미움의 감정은 타인의 승인에 힘입어 가공할 가속도를 생성한다. 사랑과 미움 중 에너지가 더 큰 쪽은 압도적으로 미움. 따스한 사랑이 야기하는 평정심 같은 것은 미움의 와중에는 결코 발생할 수가 없다. ‘다 부숴버리겠어’ 모드로 질주하는 이 태풍에는 태풍의 눈이 없으며, 고로 증오에는 참으로 많은 힘이 든다.

남을 미워하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는 사람. 죽도록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자기 자신이 망가지도록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 남의 것을 헐뜯는 데 정신이 팔려 자기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제작하지 못하는 사람. 모두 증오에 잡아 먹힌 사람들이다. 아이들의 세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른, 마흔, 쉰 살의 어른들이 모인 회사에도, 친목모임에도, 소셜미디어에도 그런 이들은 넘쳐난다. 초등학교부터 시작하는 학교폭력, 일터 괴롭힘과 직장 내 갑질, 노인정에서도 이어지는 이웃간 집단 따돌림. 단일 직역으로는 정치권이 압도적 선두다. ‘저 놈 잘 되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어서’가 존재의 이유처럼 보일 지경이니, 유서 깊은 한국 정치의 비생산성이 여기서 비롯됐다.

“엄마 생각에는 말야. 미움이라는 감정은 똥이랑 비슷한 거 같아. 인간이 살아있는 한 똥은 계속 생겨나. 그걸 막을 순 없어. 그렇다고 똥을 아무데서나 막 누면 안 되겠지? 그럼 온갖 데 다 튀고 냄새가 날 거 아냐? 네가 급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네 감정의 오물이 튀게 할 권리 같은 건 없어. 누가 밉다고 다른 사람한테 흉보고 같이 미워하자고 하는 짓은 절대 안돼. 폭력이야. 하지만 똥을 참으면 배가 아프고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조용히 재빨리 누고 깔끔하게 처리하고 오는 게 좋아. 그래야 편안한 속으로 맛있는 것 또 먹고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까.”

잠시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가 역시나 가장 취약한 지점을 공략했다. “그런데 어디 가서 눠? 미움이 똥이라면 화장실은 어디야?” 또다시 “음”을 반복하다 나는 그만 정답과 비슷한 것을 얼결에 말해버리고 말았다. “네 마음! 네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즐거워하는 네 마음. 네 마음이 의미와 보람을 찾으면 미움 같은 건 금방 잊어먹게 돼. 그렇게 잊고 있다 보면 싫어하던 친구의 좋은 점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도 있고!”

적폐청산의 도도한 조류 속에 시간은 또 흘러 지방선거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서울시장에 누가 나온다느니, 출마 예상자들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미움의 기술을 가진 사람, 이들 중 누구일까. 누가 남의 것을 헐뜯는 대신 자기 자신의 것을 옹골차게 만들었던가. 공적 해결절차가 필요한 객관적 미움과 홀로 고요히 처리해야 할 주관적 미움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이, 과연 누구였던지 이제부터라도 꼼꼼히 살펴봐야 할 때다.

박선영 기획취재부 차장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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