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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 조선시대 ‘홍수방지용 대숲’ 존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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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 조선시대 ‘홍수방지용 대숲’ 존재 확인

입력
2018.01.2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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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규장각 소장 ‘황산역도’에 표시

태화강 십리대숲보다 150년 앞서 축조

양산대숲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황산역도. 왼쪽이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서대제종죽이라표기돼 있으며, 오른쪽은 동대제종죽이라 기록돼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역지에서 발췌.
양산대숲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황산역도. 왼쪽이 낙동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서대제종죽이라표기돼 있으며, 오른쪽은 동대제종죽이라 기록돼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영남역지에서 발췌.

경남 양산시에 조선시대 축조한 현존 최고의 홍수방지용 대나무숲 제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홍수방지를 목적으로 조성된 이 제방은 정작 홍수방지 등에 방점을 두고

추진됐던 MB정부의 4대강 조성사업 등의 영향으로 일부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

을 자아내고 있다.

21일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1871년) 영남역지(嶺南驛誌) 중 황산역도(黃山驛圖)에 따르면 양산에 낙동강과 양산천의 범람을 막기 위한 총 길이 30리(12km)의 두 갈래 대숲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방축조는 정조실록 31권(정조 14년ㆍ1790년 8월 9일)에 당시 양산군수였던 남학문이 상소문에서 “지난 계해년에 감사의 장계로 인해 우리 선대왕께서 특별히 1만여 명의 군정을 풀어 큰 둑을 쌓아 긴 강을 가로막은 덕에 이득을 보았다”고 적고 있다.

황산역도(黃山驛圖)상 동대제종죽(東大堤種竹)과 서대제종죽(西大堤種竹)인 양쪽 대숲은 정조실록 35권(정조 16년ㆍ1792년)에 ‘동서 대숲은 길이가 삼십리(12km)’라고 기록돼 있다.

문헌기록을 종합하면 일제시대 홍수예방을 위해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4㎞)보다 150년 앞서 3배 길이의 홍수방지용 대숲(제방)이 축조됐다는 것이다.

이 대숲의 현재 상태는 황산역도(黃山驛圖)에 표시된 서대제종죽(西大堤種竹)이 있는 용화사와 증산지역에는 일부 제방과 대나무숲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대제종죽이 있는 대천(현 양산천) 일대에는 MB정부 때 시행된 4대강 사업 등 개발사업으로 대나무 숲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홍수 및 수질 개선을 목적으로 시작된 4대강 사업이 정작 홍수 및 범람 예방을 위해 조선시대에 조성된 친환경적 대숲 제방을 사라지게 만든 셈이다.

양산 대숲 시발점으로 추정되는 용화사 주지 현고 스님은 “생명 회복과 역사 복원을 위해 양산 대숲을 광범위한 조사작업과 함께 복원사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산시의회 김정희 의원도 “양산시에 사료가 뒷받침되는 조선 최대의 홍수방지용 대숲이 있었다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양산시와 경남도 등 관계기관이 즉각적인 대숲 조사 및 복원사업에 나서 역사도 바로 세우고 고용창출 등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선조에는 양산 등 경상도지역은 수해가 잦았고 그에 따른 치수정책이 이뤄진 흔적도 전해지는 문헌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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