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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남자 왁싱의 오해와 진실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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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남자 왁싱의 오해와 진실 A to Z

입력
2017.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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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왁싱숍에?”

수근거릴 줄 알았는데

고객ㆍ직원 모두 거리낌 없어

왁싱남 2년 새 6배 증가

‘관리하는 남성’ 이미지 커

집에서 하는 DIY족도 늘어

[겨를] 한 남성이 왁싱을 받기 전 상담을 받고 있다. 이상무 기자
[겨를] 한 남성이 왁싱을 받기 전 상담을 받고 있다. 이상무 기자

증권사에 다니는 박지헌(32)씨는 13일 오후 서울 합정동 한 왁싱숍 앞을 30분 넘게 서성였다. 문을 살포시 열었다가 잽싸게 닫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박씨가 마침내 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내 데스크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둘러보던 박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게 안이 온통 ‘여자 손님’으로 가득할 거라 생각했다. ‘저 남자 뭐지?’ ‘남자가 여길 왜 왔어?’ 등 이런저런 수군거림이 들릴 거라 지레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걸, 여자 손님들 사이로 자신과 같은 ‘남자 손님’이 여럿 보였다. “저, 전신 왁싱 받으러 왔는데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제모 경험이 있으세요?“ 직원의 질문에는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우물쭈물한 건 박씨였다. “네.“ 들릴 듯 말 듯, 직원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경험이 있으세요?”

박씨는 집에서 혼자 제모를 하곤 했다. 여름철 반바지를 입을 때마다 “다리 털이 징그럽다”거나 “원시인 같다”는 놀림을 듣곤 했다. 대학생 때는 여학생들이 가끔 ‘괴물’을 운운하기도 했다. ‘깎으면 그만이지’라는 마음에, 남성용 털 면도기를 사서 제모를 해 본 이유였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실패였다.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어떤 곳은 털이 뭉텅이로 깎여 나갔지만 어떤 곳은 여전히 털이 남고, 쉽지가 않더라고요.”

겨드랑이 털도 박씨에겐 제거 대상이었다. 일단은 ‘이왕 하는 김에’라는 생각이 강했다. ‘제모용 테이프’를 겨드랑이에 붙였다 힘차게 떼어냈지만, 기억에는 고통만이 남았다. “느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그렇게 혼자서 낑낑거리면서 ‘잘 안 되네’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상담을 해 주던 고객 한 분이 ‘팔에 털이 많네요. 관리하면 훨씬 깔끔해 보일 텐데’라고 하는 거에요.” 박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왕 해보는 거 전문가한테 맡겨 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마침 주변에 물어보니 전신 왁싱을 하는 다른 직원들도 많다는 거예요.”

[겨를] 한 남성이 왁싱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이상무 기자
[겨를] 한 남성이 왁싱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이다. 이상무 기자

왁싱 가장 큰 이유는 ‘청결’

겨드랑이 등 냄새 줄고

항문 청결도 말끔히 해결

성적 흥분ㆍ퇴폐업소는 오해

따끔해서 딴 생각 안 들지만

논란 없애려 남성이 시술

왁싱(Waxing)과 제모(除毛)는 여성이나 하는 거라고? 요즘 함부로 그런 말을 했다간 “조선시대 사람이냐” 혹은 “아직 그런 구시대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냐”는 등 욕을 듣기 십상이다. 박씨처럼 타인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하는 남성들부터 위생과 청결 때문에 필요하다는 남성들까지, 다양한 이유를 가진 남성들이 ‘몸에 난 털을 예쁘고 정갈하게 다듬어 보겠다’고 나서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왁싱숍을 운영하는 박모(45)씨는 “작년만 해도 일주일에 40명 정도 찾던 남자 고객들이 올해는 120명 가까이 올 때도 있다”며 “한두 달이 멀다 하고 한 번씩은 꼭 찾는 단골 남성도 여럿”이라고 전했다.

실제 신한카드 빅데이터 트렌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왁싱숍을 찾는 남성 고객은 2년 새 6배 늘 정도로 급증 추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왁싱’이라는 키워드가 언급된 빈도가 2012년 1월 528회에서 2013년 1월 1,111회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올해 5월에는 6,816회를 기록할 정도다. 그만큼 왁싱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왁싱. 해보면 생각보다 편해요

숍을 찾는 남성들에게는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브라질리언 왁싱’. 브라질 사람들이 주로 하는 전신 털 관리법이라 해서 붙인 이름인데, 비키니-중급-올누드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비키니는 휴가 시즌 수영장이나 해변가를 찾는 남성들이 주로 찾는다. 삼각 수영복을 기준으로, 그 밖에 나 있는 털을 ‘싹’ 정리한다. 물론 길이는 고객 마음이다. 완전히 없애거나 적당히 남기면서 ‘관리된 남성성’을 강조할 수도 있다. 종로구의 한 왁싱 업체 대표 변샛별(36)씨는 “걔 중에는 화살이나 하트 그리고 이니셜로 남기는 이들도 있다”며 “남성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브라질리언을 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예 전신에 난 털을 한 방에 제거하는 이들도 있다. 팔ㆍ다리ㆍ가슴ㆍ배 등 몸에서 털이 나는 부위를 한꺼번에 정리하는 것이다. 보험회사에 근무 중인 박우진(34)씨는 “팔과 다리에 털이 있는 편인데 여름에 반팔 유니폼을 입을 때 신경이 쓰이곤 했다”며 “지금은 보다 자신 있게 업무에 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물론 팔ㆍ다리ㆍ겨드랑이와 같이 신체 일부분에 대한 ‘타깃형 제모’에 나서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대세다. 주로 다리에 난 털이 관리 대상. 직장인 이정혁(37)씨는 “어릴 때부터 다리에 수북이 나 있는 털 때문에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싶어도 입지 못했다”며 “왁싱을 하면서 말끔해진 다리를 보고 나서 이번 여름에 반바지만 5개를 구입해 맘껏 입고 다녔다”고 자랑했다. 1년 전부터 겨드랑이 왁싱을 하기 시작했다는 문정혁(26)씨도 이씨의 말을 거들었다. “반팔 옷을 입을 때 겨드랑이 털이 밖으로 나오거나 보이는 게 싫었다”며 “겨드랑이 털을 다 밀고 나니까 어딜 가나 자신 있다. 심지어 털이 있을 때 보다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덜 나서 너무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혼자 왁싱 도구를 구입해 집에서 하는 ‘DIY족’도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브라질리언의 경우 회당 10만~19만원, 전신 왁싱은 30만원 정도 하는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뷰티 용품을 모아 놓는 가게에서는 ‘남성용 제모 용품’ 코너를 찾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다리 털 숱을 정리해 주는 면도기부터 겨드랑이털을 모두 없애주는 크림까지 상품도 다양하다. 서울의 한 뷰티 매장에서 만난 이정현(33)씨는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숍에서 팔ㆍ다리 관리를 받다 보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각종 제모 용품을 사서 집에서 하다 보면 돈도 덜 들고 시간도 아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남성들이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왁싱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편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현재(29)씨는 “여름철에 땀이 많이 날 때는 가끔 허벅지 안쪽 살이 쓸리기도 하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운동선수들 사이에서도 김씨가 말한 이유 때문에 제모를 하는 경우가 많다. ‘청결함’ 때문이라고 쑥스럽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유재광(34)씨는 “여름만 되면 땀이 털이랑 섞이면서 냄새가 날 때도 있는데 위생적으로도 제모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왁싱을 해온 정현우(30)씨는 “항문에 털이 있을 때는 큰일(?) 보고 나서 나름 깨끗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찝찝했다”며 “왁싱을 하고 나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너무 깨끗하게 닦인다”고 신나게 말했다.

퇴폐 업소라는 오해. 절대 아닙니다.

물론 아직까진 주변에 ‘나 왁싱한다’고 말하는 게 자연스럽진 않다. 최근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왁싱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성적으로 흥분되는 것’처럼 묘사,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주민(27)씨는 “왁싱하러 간다고 하면 마치 퇴폐 업소를 가는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퇴폐 업소가 아니고 단지 털을 관리받으러 가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성적 흥분’이라는 말에 난색을 표한다. 숍에서 만난 한 남성은 “관리 받는 과정도 나름 부끄럽다면 부끄러워서 오히려 빨리 끝나면 좋겠다”며 “가끔 굴욕 자세인 ‘빳데루’ 자세를 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 말했다. “성적으로 흥분한다는 사람들은 애초에 ‘왁싱’을 받겠다는 의도가 없는 것”이라고 꼬집는 이들이 다수였다. 이씨는 “크림을 바르고 떼어낼 때 생각보다 아프다. 순간 ‘악! 악!’ 소리를 지를 정도라 이상한 생각을 할 틈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마포구 S숍 직원은 “털이 좀 길면 가위로 조금 잘라 낸 다음에 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였다가 뗀다”며 “남자 분들에게는 크림을 더 많이 사용해 접착력을 높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해 아예 남성 고객을 위한 ‘남자 직원’을 고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한 왁싱숍에서 근무하는 장민규(30)씨는 금융회사 직원으로 일하다 2년 전부터 왁싱 쪽으로 전업을 했다. 장씨는 “우선 업계 전망이 좋다. 특히 남자 고객이 늘어나는데 이들을 상대할 남자 직원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뛰어 들게 됐다”며 “우리는 철저하게 남자 고객만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남자 고객들이 남자 직원을 편하게 생각하고 많이 찾아 주신다. 여자 직원이 하면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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