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범인 잡는 과학] 성폭행 범행 당일, 범인은 교도소에?

입력
2017.05.02 04:40
0 0

낡은 주택가서 대낮에…

아기와 잠자던 30대 주부 위협

현금 48만원ㆍ금반지 등 강탈

조사 결과 성폭행 사실도 드러나

서울 광진구가 중곡동 한 주택가에 설치한 의류수거함. 2013년 중곡동 성폭행범 김민준(가명)은 범행의 결정적 증거인 ‘아기 이불’을 인근 의류수거함에 버리고 달아났다. 조원일 기자
서울 광진구가 중곡동 한 주택가에 설치한 의류수거함. 2013년 중곡동 성폭행범 김민준(가명)은 범행의 결정적 증거인 ‘아기 이불’을 인근 의류수거함에 버리고 달아났다. 조원일 기자

앞뒤 안 맞는 DNA 감식 결과

동네 의류수거함을 모조리 뒤져

범인이 몸 닦은 아기이불 찾아내

그런데 범인이 감옥에 있다니…

사건 실마리는 일란성 쌍둥이

동사무소 가족관계 확인 결과

주민번호 끝자리만 다른 형제

실제 범인은 DNA자료 없던 형

2012년 8월 이후 서울 광진구 일대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 포비아(공포증)에 휩싸였다. 벌건 대낮에 가정집에 침입, 30대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까지 한 ‘서진환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서울 변두리라 그런 건지, 무법천지가 아닌가 불안하다”는 주민들, 특히 여성들의 호소가 줄을 이었다.

낡은 주거 환경은 이들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일대 단독주택 지역에,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골목길 양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빨간 벽돌집들은 한 사람이 설계해 지은 것처럼 생김새가 비슷했다. 지은 지 20~30년이 족히 됐을 집들은, 대문 밖에서 성인 남자가 까치발을 서면 1층 내부가 훤히 보일 만큼 보안에 취약했다. 대문 옆 벽에는 도시가스 배관이 보통 대여섯 가닥씩 뻗어나가 있었다. 한 가구씩, 반 지하부터 2, 3층까지 연결된 배관은, ‘가스 배관을 타고 가정집에 침입했다’는 뉴스를 보는 주민들의 가슴을 더욱 철렁하게 했다.

2013년 3월 14일 오후 2시. 일대를 관할하는 광진경찰서로 강도 신고가 한 건 접수됐다. 1층 창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온 범인이 안방에서 갓난아기와 함께 잠들어 있던 30대 주부를 위협, 현금 48만원과 금반지 등 귀금속을 강탈해 간 사건이었다. 신고를 접수한 그날 당직 강력5팀 형사들은 ‘낮 시간에 치안이 허술한 집을 노린 평범한 사건’ 정도로 생각했다.

출동한 형사들과 과학수사계 요원들은 늘 그래왔듯, 집 구석구석을 분주하게 살피면서 범인이 남겨놨을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엄재광(54) 당시 5팀장은 피해자 K씨와 대화에 나섰다. 범행 당시 상황, 빼앗긴 금품 등 설명을 한참 듣고 막 돌아서려는 순간, 그는 “느낌이 이상하다”고 했다. 수많은 사건 현장을 다니면서 축적된 형사의 직감. “일반적인 강도 피해자들과 다른 공포감 같은 게 보였죠.” 말하지 않은, 아니 말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피해자의 가족들을 다른 방으로 보낸 후에야 K씨는 밝히지 않은 사실을 털어놨다. 성폭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극도의 불안감에 몸을 떨고 있던 그의 고개는 아래 위로 조심스레 흔들렸다.

피해자 진술을 받았던 여경이 파악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아기랑 자고 있는데 누가 창문에서 쳐다 보고 있는 것 같아 무서워서 깼어요. 화장대 위에 있던 가위를 아기에게 겨눴는데 애가 안 다치게 하려면 조용히 하라고 한 후 범행을…” 수사팀은 일단 갓난아기를 볼모로 삼았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아기 이불을 찾아라

서둘러야 했다. 타액이나 정액 같은 범인의 체액,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K씨 집에서 발견된 것은 1층 창틀 밖에 묻은 장갑 흔적과 벽을 딛고 움직일 때 찍힌 족적 등이 전부였다. 현장 감식에 나선 권준철(45) 경사는 “범인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몇 올이 나왔지만, 성폭행 증거로 제시하긴 쉽지 않았다. 범인은 현장을 떠날 때까지 장갑을 벗지 않았고 지문도 없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준비를 거친 범행이었고, 초범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습범 특유의 철저한 ‘현장 관리’였다.

결정적인 단서는 K씨 진술에서 나왔다. “범인이 자기 몸을 닦은 아기 포대기(이불)를 가지고 갔어요.” 수사팀이 다시 분주해졌다. 증거물을 인멸하기 전에 찾아야 했지만 K씨 집 주변에는 안타깝게도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수사팀은 반경 300m에 있는 모든 CCTV를 다 뒤졌다. 그제서야 범인의 모습이 흐릿하게 찍힌 영상 두어 개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나는 포대기를 든 채로, 하나는 빈손으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버려진 포대기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찾아야 했다.

인근 쓰레기통은 물론 다른 집 마당이나 외진 골목에 버리진 않았는지 샅샅이 뒤졌지만 포대기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때, 권 경사가 “의류수거함에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 의류수거함.” 수사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 팀장은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의류수거함이 왜 그리 많은지, 강력팀 형사들이 구청 직원을 불러서 의류수거함을 20개 가까이 열고 뒤졌다”고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구청 차량으로 옮겨 지기 직전의 의류수거함에서 포대기가 발견됐다.

“됐다!” K씨 집에서 수거한 증거물 감식을 위해 공문을 작성하던 권 경사는 수사팀이 가져온 포대기를 보고 안도했다. 권 경사는 “일선 경찰서에 사람의 체액 등을 확인 할 수 있는 자외선검출기가 없었기 때문에 포대기를 통째로 멸균 포장해 감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

이틀 후인 16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DNA감식 결과가 도착했다. ‘1970년생 김민재(가명)와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일치하는 유전자가 이미 확보돼 있었다는 것.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권 경사가 감정 결과를 수사팀에 전달한 지 한 시간쯤 흘렀을 때, 수사팀에서 뜻밖의 말을 전해왔다. “조회를 해보니 김민재는 2009년부터, 지금도 감옥에 있다고 나옵니다.”

범인은 감옥에 있었다?

수사팀은 혼란스러웠다. 몇 번이고 범죄자 신원 조회를 반복했지만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범인 검거가 코 앞에 있다고 생각했던 엄 팀장은 국과수 유전자 감식 담당자와 전화상으로 싸우다시피 했다. “말이 안 된다.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다. 피해자도 자기 포대기가 맞다고 했다. 어떻게 감옥에 있는 사람 유전자가 나오나. 그 쪽에서 잘못한 거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반대편에서는 “감정은 끝났다. 김민재가 확실하다”는 답이 반복해서 돌아왔다. 김민재는 강도 상해로 2009년 8월 구속돼 포항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다. 확인 결과 어떤 형식으로도 김민재는 교도소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지문보다 정확하다는 DNA 감식이 틀린 걸까. 해결이 불가능할 것만 같은 난제에 수사가 공전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오후 4시 반쯤, 권 경사는 “혹시 일란성쌍둥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놨다. 1970년대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1% 내외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란성쌍둥이, 형제 둘 모두가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뭐든 확인해 봐야 했다. 서둘러 인근 동사무소에 수사팀을 보내 가족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권 경사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김민재에게는 주민번호 끝자리만 다른, 쌍둥이 형 김민준(가명)이 있었다. DNA감식도 틀리지 않았다. 동생 때문에 쌍둥이 형의 신원이 드러난 것. 과학수사요원들의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엄 팀장은 “당시엔 정말 간담이 서늘했다”고 말했다. 엄 팀장은 “생각해보면 동생 김민재가 감옥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김민재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수사를 했을 것”이라며 “피해자 생각에 격앙된 형사들이 김민준은 놔두고 범행을 부인하는 김민재를 어떻게든 감옥에 넣으려고 했을 텐데, 생각만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범인 김민준은 사건 발생 14일째인 3월 27일, 경북 포항시의 한 원룸에서 검거됐다. 별다른 직업 없이 강도와 절도를 통해 얻은 돈으로 자신의 생활비와 동생의 ‘옥바라지’ 비용을 댔다고 한다.

DNA 증거와 함께 원룸 압수수색 과정에서 나온 여러 증거물을 토대로 경찰의 압박이 이어지자, 김민준은 또 다른 성폭행 사실을 털어놨다. 광진구 사건이 있기 불과 3달 전인 2012년 12월 16일 서울 종로구에서였다.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피해자 A씨는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전당포에 넘긴 귀금속 등 장물을 추적한 결과 18차례에 걸친 김민준의 ‘상습 빈집털이’ 범행도 드러났다. 고향이었던 강원에서 3건, 서울 동대문구에서 14건, 강동구 1건으로 대부분 치안 취약 지역이었다. 법정에서 김민준은 성폭행 동기를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라고 했다. 오히려 빈집털이만을 당한 대부분 여성 피해자는 ‘큰 위기’를 모면한 셈이었다. 김민준은 2013년 10월 고등법원 선고가 내려지자 상고를 포기했다. 징역 14년형이 확정됐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