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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심쿵’한 북한 응원단의 반전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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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에 ‘심쿵’한 북한 응원단의 반전 매력

입력
2017.02.2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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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응원단이 20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링크를 찾아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북한 응원단이 20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 실내링크를 찾아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이겨라, 이겨라, 조선 이겨라.” “가라~가라~ 조선 가라.” “(짝짝짜자작)최~은~성.”

2017 일본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는 삿포로의 마코마나이 실내링크에서 들을 수 있는 북한 대표팀에 대한 응원 구호다. 80여 명의 북한 응원단은 쇼트트랙 경기 첫날인 20일 관중석에서 북소리에 맞춰 인공기를 흔들며 열띤 응원으로 현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2층 중앙 관중석에 ‘만리마 조선의 기상 떨치자’라는 대형 걸개막과 인공기를 걸어 놓고 남자 1,500m에 출전한 최은성을 목청 높여 응원했다. 북한 선수의 경기가 아닐 때는 한국 선수들이 레이스에서 치고 나가거나 1위로 통과하면 큰 소리는 아니지만 박수를 보내고 기뻐했다. 또 2002 한ㆍ일 월드컵 당시 축구 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가 응원했던 ‘대~한민국’ 장단에 맞춰 ‘최~은~성’을 외쳐 눈길을 끌었다.

눈길을 집중시키는 응원에 현장기자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북한 응원단 쪽으로 향했다. 가까이서 보니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어디에서 왔나’라고 묻자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서 왔다”고 답했다. 앳된 얼굴들이 많이 보인 이유에 대해서는 “홋카이도 초ㆍ중ㆍ고에서 60명 정도 왔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을 담당하는 여 선생님은 “선수들을 응원하려고 왔다”면서 “한국 선수들도 같은 민족이니까 당연히 응원한다”고 말했다. ‘만리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하루에 만리를 달리는 말”이라며 “최근 평양에서 밀고 있는 용어”라고 답했다.

한국기자들과 인터뷰를 기피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북한 응원단은 살갑게 다했다. 다만 사진 촬영과 구체적인 신분을 밝히는 것은 양해를 구했다. 학생들은 더 쾌활했고, 유쾌했다. 또 호기심도 많았다. 한 여학생은 “(배우) 이종석과 박신혜를 좋아한다”며 쑥스럽게 웃은 뒤 기자에게 “한국에서 만나봤나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또 다른 여학생은 “저는 (걸그룹) 소녀시대 노래 좋아하고, AOA도 알아요”라고 말했다. 한 남학생은 “19일 개막식에도 갔고, 북한 경기가 있는 날은 계속 온다”면서 “2교시까지만 하고 여기로 왔다”고 일찍 수업을 마친 것을 기뻐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좋지 않냐는 질문에는 미소를 지은 뒤 “평소에 ‘열공’을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의 줄임말인 열공의 뜻도 알고 있었다.

이번 응원 구호를 준비했다는 남학생은 응원 중 박자가 ‘대~한민국’과 비슷한 것에 대해 “원래 해왔던 장단”이라고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응원에서 착안한 것은 아닌지라고 다시 묻자 “지금 열 일곱 살이라 2002년이면 내가 두 살 때”라며 “유명한 응원 박자라 다들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지켜보던 한 인사는 기자의 AD 카드를 유심히 보더니 이름 마지막 자의 ‘SEOB(섭)’을 주목했다. 그러더니 기자에게 다가와 한자로 어떻게 되는지 묻더니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불 화(火)와 말씀 언(言)을 그렸다. 그래서 ‘맞다. 불꽃 섭(燮)자를 쓴다’고 했더니 반갑게 악수를 건네며 자신의 한자 이름이 적힌 신분증 비슷한 카드를 보여줬다. 성이나 이름이 같은 것도 아니고 이름 마지막 자 하나가 같았을 뿐인데 이 인사는 “고토니역 근처에서 타코야끼 가게를 하는데 한번 놀러 오세요. 술도 한잔 합시다”라며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최근 북한의 복잡한 상황으로 선수단이 언론 접촉을 기피해왔던 반면 삿포로 현지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들은 비교적 자유분방하고 밝았다. 이들은 또한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면서도 같은 피가 흐르는 한국 선수들에게도 연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삿포로=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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