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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여성의 허리를 해방시킨 위베르 드 지방시

입력
2018.03.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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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햅번, 재클린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등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들이 즐겨 찾았던 프랑스 명품 브랜드 ‘지방시’. 바로 이 ‘지방시 스타일’을 창조해 낸 장본인 위베르 드 지방시가 지난 10일 91살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평생 ‘여성의 몸을 편안하게 해방시키는 옷’을 만들어온 그. 그의 ‘패션 인생’을 한국일보가 되짚어봤습니다.

기획/제작 : 박지윤 기자 luce@hankookilbo.com

“부인은 오늘 마치 ‘와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 같군요.” -샤를 드골 대통령-

1961년 베르사유 궁전, 6월의 초여름 햇살 속에 모습을 드러낸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모습은 그야말로 찬란했다.

그가 입은 아이보리색 프린세스 드레스는 바로 지방시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여성은 지방시를 입는다.” -보그(Vogue)- 패션계의 전설이었던 그는 지난 10일, 아흔한 살의 나이로 단잠에 빠지듯 영면했다. 

지방시는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바다 건너온 형형색색의 천들에 파묻혀 자랐다. 직물 공장 감독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었다. 그 신비로운 감촉 속에서 꼬마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여덟 살 땐 비공식 ‘데뷔’까지 했다. 첫 모델은 손때가 켜켜이 앉은 인형. "천은 살아 있는 존재다. 나는 천이 인도하는 길로 따라갈 뿐이다." -위베르 드 지방시- 어머니의 패션 잡지를 훔쳐보며 굴러다니는 원단 조각을 자르고 꿰맨 아이는 금세 손바닥만 한 드레스를 뚝딱 만들어 낸다.

가족의 바람대로 법대에 갔지만 천재성은 숨겨지지 않았다. 무작정 파리를 찾은 그가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그의 우상이었던 발렌시아가의 아틀리에였다.

10년도 되지 않아 지방시는 우상의 아틀리에 바로 맞은편에 자신의 살롱을 열게 된다. 스승이자 친구, 서로에게 가장 생생한 영감을 주는 관계로 발전한 이들은 ‘B&G’라는 콤비로 불리며 패션잡지 한 면을 나란히 장식하기도 한다.

“작업을 할 때마다 발렌시아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위베르 드 지방시- 우상이 드리운 그림자가 짙을수록 주변은 금방 시들기도 하는 법. 그러나 거장은 달랐다. 그에겐 그만의 ‘정수’가 있었다.  

지방시는 자신의 옷이 ‘마네킹’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여성들의 체온과 호흡할 때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는 달랐던 그만의 정수였다. 

바로 이전 세대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여성의 몸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단단히 조인 상의로 드러내는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때 지방시가 들고 나온 ‘베이비 돌’ 드레스는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허리선이 어깨까지 올라가고 치마선이 ‘A’자로 풍만하게 퍼지는 드레스가 여성의 허리를 시원하게 해방시킨 것.

"아름다움이란 나다움에서 나오고, 나다움이란 일상의 움직임에서 나온다."-위베르 드 지방시-그에겐 한껏 자유로워진 여성들의 움직임도 ‘하나의 패션’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름답고 싶은 날의 ‘비장한 각오’가 필요 없어졌다는 것. 드레스를 입는 날이면 여성들은 새 모이만큼 먹으며 하루를 버텨낼 의지를 다져야 했다. 지방시는 아름답고 싶은 특별한 날들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패션계에 투피스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도 지방시였다. 입는 사람의 취향대로 조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게 한 것.

‘누구나 고급 패션을 접할 권리가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이때 시작됐다. 가격을 현실화한 기성복 라인 컬렉션엔 셔츠와 스커트, 코트와 바지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오드리 햅번은 지방시의 '평생의 동반자'였다.

하지만 운명적 만남이라고 여겨지는 이들의 첫 만남은 사실 그다지 운명적이지는 않았다.

지방시는 오드리 햅번이 누군지도 몰랐다. 당시만 해도 <로마의 휴일>이 유럽에 배급되지 않았던 상황. "다음 컬렉션 준비로 바쁘니 그냥 돌아가라." 이때까지만 해도 지방시는 이 어린 배우가 ‘평생의 뮤즈’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분 뒤 그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햅번의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그는 예감했다.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리라는 것을. 이때 처음 맺어진 파트너의 인연은 동업자에서, 친구로, 때론 연인으로, 결국엔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로 조금씩 모습을 바꾸며 40년을 이어졌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등장한 오드리 햅번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영원히 지방시를 한 컷으로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고, 지방시의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드레스는 그 어떤 배우도 넘볼 수 없는 햅번만의 고결한 입지를 다져줬다.

"우리는 다른 디자이너와 배우들처럼 계약 관계를 맺지 않았죠. 그냥 서로를 사랑했어요. 그게 유일한 비결이었죠.” –위베르 드 지방시-

“지방시의 드레스만이 나를 나로서 느끼게 하는 유일한 것이죠.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누군가의 개성을 창조해낼 줄 아는 사람이에요.’ –오드리 햅번-  

 “몸이 옷 모양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옷이 몸의 개성을 따라야 한다.” 그는 말했다. 그는 말했다. ‘우아함의 정형’ 같은 것은 없다고, 누구나 자기 자신만의 우아함이 있다고.

"그는 여성에게 옷을 입혔지만, 여성은 그가 창조한 옷을 입고 삶을 호흡해왔다."-카트린 조안-위베르 드 지방시, 그는 드레스에 갇혀 있던 여성의 몸뿐 아니라 정형화된 멋에 갇혀있던 정신도 해방시킨 세기의 디자이너였다.

기획/제작 :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사진출처 : <보그 온 : 위베르 드 지방시> 51books 제공, 지방시 공식 홈페이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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