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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만화 속 일본은 가해자 아닌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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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만화 속 일본은 가해자 아닌 피해자"

입력
2015.01.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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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감상 후 날선 비판

"가해자가 역사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아야 잘못된 역사 되풀이 안해"

5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전쟁의 기억' 강좌에 참석한 중학생 11명이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5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전쟁의 기억' 강좌에 참석한 중학생 11명이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전쟁에 쓸 것을 알고 전투기를 만들었다면 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비행기 만드는 일이 직업이니 자기 일을 한 것뿐이지 않나요?”

5일 교육공동체 ‘나다’의 서울 종로 교북동 교육센터 회의실에서 중학생들의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태평양전쟁 때 사용된 전투기 제작자의 책임 논쟁은 한 학생의 말로 정리됐다. “누가 시켜서 아무 잘못도 없는 친구를 괴롭혔다면 잘못이 없는 건가요?”

나다는 별 생각 없이 보던 일본 대중문화에 드리워진 일본의 역사 인식을 비판적으로 보자는 취지에서 ‘전쟁의 기억’ 강좌를 마련했다. 9일까지 매일 오전 이어지는 수업에는 선착순으로 신청한 중학생 11명이 참가하고 있다.

이날 첫 수업 주제는 2013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였다. 이 애니메이션은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사용했던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일대기를 다뤘다. 일본 개봉 당시 한 달 만에 관객 600만명을 돌파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국내서는 주인공을 전쟁과 시대에 의해 희생됐고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만 미화했다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수업을 위해 ‘바람이 분다’를 보고, 태평양전쟁 당시 상황을 예습한 학생들은 이 애니메이션에서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를 짚었다. 가령 주인공 지로가 연인 나오코를 처음 만나는 계기인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은 아예 언급조차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 노동력을 착취한 기업 미쓰비시가 지로가 꿈을 펼치는 비행기 제작회사로, 2차대전 전범국 이탈리아의 전투기 제작자 카프로니 백작이 지로의 꿈에 나타나 영감을 주는 우상으로 등장하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박지우(16ㆍ예일중)양은 “만화 속 일본인은 그저 전쟁이 일어난 시기에 살았던 사람으로만 묘사된다”면서 “전쟁을 일으킨 가해국 국민의 모습은 없이 시대의 피해자로 그려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만화 영화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주인공이자 전투기 '제로센(A6M)'의 개발자인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설계한 제로센의 전작(AM5) 잔해 앞에 서 있다.
일본 만화 영화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주인공이자 전투기 '제로센(A6M)'의 개발자인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설계한 제로센의 전작(AM5) 잔해 앞에 서 있다.

학생들은 침략 전쟁의 실상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피해자의 모습만 부각시키는 이런 태도는 철저한 과거사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예찬(16ㆍ용강중)군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인데 일본이 이런 피해만 기억한다면 또 다시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진우(14ㆍ샨티대안학교)군은 최근 위안부를 부정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해 재무장에 나서는 일본 사회의 움직임도 반성 없는 역사 인식과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했다. 그는 “일본은 고통스럽더라도 가해의 기억을 되새겨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수업을 진행한 조민강(38) 나다 교사는 “전쟁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해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좀더 쉽게 일본 사회를 읽어내는 방법으로 만화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일본 대중문화 바로보기 수업은 ‘아톰’ ‘에반게리온’ ‘원피스’ ‘공각기동대’ 등으로 이어진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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