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딸을 믿어… 즐기길 바란다’
결전 하루 앞두고 다시 꺼내 읽어
500m 실격 판정 충격 딛고
1500m 압도적 레이스 금메달
“이제 우리 가족여행 떠나요”
“엄마, 금메달 땄어. 가족 여행 가자.”
‘얼음 공주’가 활짝 웃었다. 최민정(20ㆍ성남시청)은 지난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500m에서 압도적인 레이스로 개인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다.
아직 3,000m 계주와 1,000m 두 종목이 남았지만 꿈만 같았던 금메달을 손에 넣자 그 동안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최민정은 제일 먼저 엄마를 떠올렸고 “내 경기가 끝나고 나면 엄마는 항상 입술이 부르튼다”며 “직접 뛰는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걱정하는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를 위해 희생한 가족들을 위해 여행을 가고 싶다. 여행지는 엄마가 원하는 데로 갈 건데 휴양지를 생각하시는 것 같다. 너무 힘드셨나 보다”라며 미소 지었다.
최민정의 어머니 이재순(54)씨는 딸을 뒷바라지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았다. 여섯 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탔을 때부터 국가대표가 된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훈련장과 가까운 곳에 집을 구했고, 학교와 훈련장을 오갈 때는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최민정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쇼트트랙 대회에 출전하려고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지인에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본인 대신 딸을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물론 힘겨운 시기도 있었다. 최민정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다 보니 큰 딸에게 소홀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최민정에게 “운동을 그만 두면 안 되겠니”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쇼트트랙에 푹 빠진 딸을 말릴 수는 없었다.
또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딸이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있을 때는 부담을 느낄까 봐 따로 메시지를 남기지 않는다. 단지 귀여운 이모티콘 몇 개를 보낼 뿐이다. 딸이 경기를 치르는 날엔 마음 졸여 현장에 가보지 못하고 기도만 한다.
엄마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최민정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평창올림픽을 앞둔 2017~18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전 종목 랭킹 1위에 오른 최민정은 “엄마의 존재 만으로 큰 힘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열린 올림픽 첫 종목인 500m 결승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맞았다. 2위로 통과하고도 실격 판정을 받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때 최민정에게 힘이 된 것은 엄마의 손편지였다.
엄마는 올림픽 개막 1주일 전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항상 딸을 믿는다. 넌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즐기길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최민정은 이 편지를 선수촌에 가져왔다. 그리고 1,500m 결승을 하루 앞둔 전날 밤 엄마의 손편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엄마의 편지에 힘을 얻은 최민정은 기어코 ‘금빛 레이스’를 장식했다. 그는 “힘들 때 엄마의 손편지를 한 번씩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강릉=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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