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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공감러] ‘SNS 국민 할머니’ 박옥래 “고마움을 잊으면 말도 안되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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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공감러] ‘SNS 국민 할머니’ 박옥래 “고마움을 잊으면 말도 안되쥬”

입력
2017.11.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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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래 할머니가 자신이 키우는 반려 고양이 ‘소원이’를 바라보고 있다. 박옥래 할머니 인스타그램 캡처
박옥래 할머니가 자신이 키우는 반려 고양이 ‘소원이’를 바라보고 있다. 박옥래 할머니 인스타그램 캡처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도록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밤나무가 우거진 충남 천안시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선 가수 서유석 노래인 ‘가는 세월’을 할머니의 구성진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100마리가 넘는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자식으로 둔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서 일명 ‘옥래박’으로 잘 알려진 박옥래(70)씨다. 무책임하게 버려진 강아지와 고양이들이지만 그에겐 모두 소중한 자식들이다.

지난해 11월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은 어느새 박 할머니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일상이 됐다. 구독자(팔로워) 1만 명을 자랑하는 이 계정엔 대부분 할머니 자식들의 사진으로 메워져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반려동물 관리를 위해 할머니 집을 종종 찾는 한 자원봉사자가 만들어 줬다. 그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에 빠진 이유를 묻자 “혼자 힘으로 아이들을 돌보기 힘들어 시작한 인스타그램인데 이제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가 됐쥬”라고 답했다.

박 할머니가 돌보고 있는 반려동물들 사진. 박옥래 할머니 인스타그램 캡처
박 할머니가 돌보고 있는 반려동물들 사진. 박옥래 할머니 인스타그램 캡처

그가 강아지ㆍ고양이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약 20년 전이다. 서울에 살다 몸이 아파 홀로 천안으로 내려온 그는 이곳에서 피부병 걸린 강아지를 만났다. 자신의 신세와 비슷한 처지의 강아지를 거두면서 반려동물과의 동행은 시작됐고 할머니 삶의 전부가 됐다. “사람들이 그렇게 동물을 버려유. 병원 한 번 가면 고칠 수 있는데 병원비가 아깝다고 버리는 거유. 참 불쌍해유.”

아픈 강아지와 고양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하나씩 거두다 보니 한 마리였던 반려동물은 20년이 지나 약 100마리까지 늘었다. 동물들이 늘어날수록 그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지만 삶은 더 팍팍해졌다. 산나물을 뜯어 시장에 팔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약 40만 원. 반려동물들에게 사료 한 번 실컷 줄 수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예전까진 남모르게 도와주는 손길도 있었지만 요즘엔 뜸하다. 오히려 ‘할머니가 버려진 동물을 키운다’는 소문이 퍼진 가운데 최근 1~2년 사이 할머니 집 앞에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람까지 생겨나면서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그때 힘이 됐던 게 온라인 세상 속 친구들이었다. 그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그렇게 사료를 보내 줬어유. 그 친구들 덕에 아픈 애들도 고치고 배불리 먹을 수 있고유. 참 고마워유”라고 말했다. 강아지와 고양이 용품 등 이어지는 후원에 대해 그는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할 빚”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가 자신의 집을 찾은 자원봉사자와 함께 강아지를 목욕 시키고 있다. 박옥래 할머니 인스타그램 캡처
박 할머니가 자신의 집을 찾은 자원봉사자와 함께 강아지를 목욕 시키고 있다. 박옥래 할머니 인스타그램 캡처

하지만 어려움은 계속됐다. 이번엔 할머니의 왼쪽 눈의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 최근에는 치매로 의심되는 증상까지 발생했다. “얼마 전에는 길을 잃었어유. 이러다가 치매라도 걸리면 어쩌나 싶어유. 그럼 우리 애들은 어째유.”

악성 문자도 할머니를 괴롭힌다. 욕설이 섞인 문자가 일주일에 1~2통씩 날아온다. 그는 “말도 못해유. ‘동물 팔아서 그러면 좋냐’라는 문자도 와유”라며 요즘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더 많은 이들이 할머니 편에서 위로를 해준다. 실제 할머니의 인스타그램에는 그를 응원하는 댓글이 가득하다. 박 할머니는 그런 댓글을 보며 힘든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예쁜 친구들이 많아유. 그냥 나는 항상 고마워유. 이렇게 도와주고 위로해줘서 좋아유. 이걸 다 어떻게 갚을까 싶어유.”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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