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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기레기를 누가 키웠나

입력
2014.06.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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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난립·기자 양산이 과열경쟁 오보 유발

신속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임을 알게 해야

요 며칠 사이에 세 명으로부터 똑같은 우스갯소리를 휴대폰으로 받았다. ‘삼류언론의 보도 사례’라는 제목의 글은 이런 내용이다.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한 데 대해 언론은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사주’라고 보도한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에 대해서는 ‘최영, 돌을 황금으로 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이라고 몰아붙인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세월호 승객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에다 희생자들의 가족이나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과열 취재경쟁, 왜곡보도 이런 것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낳게 했다.

인터넷 지식사전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일부 언론이 앞 다퉈 오보를 쏟아 내면서,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는 보도를 하는가 하면 선정적, 자극적 기사로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공영방송으로 자처하던 공중파 방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설명돼 있다.

군이 총기 난사범 임모 병장을 병원에 후송할 때 가짜 병사를 내세우자 언론은 ‘논란 자초한 군의 비밀주의’ 식으로 비판했다. 속아서 오보를 했으니 화도 날 만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래서 그게 어떻다구?” “너희들이 오죽하면 그랬겠니?”라는 댓글을 많이 달았다. 새로 임명된 청와대 수석이 술자리에서 기자를 맥주병으로 친 일이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라는 식이다. 기자 편은 없다.

‘기레기’는 매체 난립·기자 양산이 빚어낸 괴물이다. 매체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자격미달 기자들이 정확하지 않은 기사를 마구 써내기 때문이다. 기레기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신문 지면이 폭증했으나 기자의 수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자연히 급하게, 많이 기사를 써야 했고 기사는 묽어지고 사실 확인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조직이든 후배는 선배를 보고 배우는데, 보고 배울 만한 모델은 점차 줄어들었다. 원래 언론사의 기자 교육은 체계가 없는 터에 저마다 바쁘니 가르치고 말고가 없게 됐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면서부터 기사는 더 가볍고 묽고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종이에 육필로 기사를 쓰던 시대에는 ‘재판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엄격한 선배의 데스킹을 거쳐야 했다. 잘 쓰지 못했거나 말이 되지 않는 기사는 휴지통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기사를 버릴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지면을 채우지 못한다.

다른 요인도 더해졌다. 이념 대립이 치열해지고 진영논리가 강고해지면서 갈등 지향성 기사, 보도인지 의견인지 알 수 없는 기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이러구 저러구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거나 ‘논란이 예상된다’고 돼 있는 기사가 많다. 갈등 해소와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갈등의 중심이 되어 이를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IMF 당시 인력 감축 차원에서 교열부(또는 교정부)를 축소한 이후 정상화가 되지 않아 맞춤법 띄어쓰기 등에 대한 교열 기능이 쇠약해졌다. 누군가가 틀리게 쓰면 그대로 복사 전송되고 더 왜곡돼 확산되고 있다. 이런 모든 요인이 기레기를 낳게 한 것이다.

올해 신문의 날 표어는 ‘시대가 빨라질 때 신문은 깊어집니다’였다. 신문의 지향점을 잘 알려주는 말이다. 깊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을 고쳐야 하나를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이제부터라도 기자 교육을 통해 기자의 자세, 취재를 하는 방법을 잘 가르쳐야 한다. 특히 신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이라는 걸 알게 해야 한다. 기레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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