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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여성에게 인사한 것도 죄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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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여성에게 인사한 것도 죄냐고 묻는다면

입력
2017.10.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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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유럽 여행 중에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한 남성이 저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어요. 어떤 남자는 ‘헤이 베이비!’라고 말을 걸었구요. 너무 당황스러운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에 외국에서 겪은 길거리 성희롱에 대한 고민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길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거나 추근대는 캣콜링(catcalling)은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는 캣콜링을 법으로 금지하고 벌금형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프랑스 외에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들은 이미 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마를렌 시아파 프랑스 성평등부 장관은 16일(현지시간) RTL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은 거리 성희롱을 처벌할 규정이 없어서 캣콜링을 문제 삼을 수 없는 실정”이라며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성이 여성을 몇 블록 이상 따라가거나 여성의 연락처를 17번이나 물어보는 행위 등을 예시로 들며 “어떤 수준부터 여성이 겁을 먹거나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지, 또는 성희롱을 당한다고 생각하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며 성평등부를 중심으로 여야 정치권, 사법부 관계자로 구성된 전담팀이 거리 성희롱과 캣콜링의 처벌범위, 양형기준을 검토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성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미성년자 성폭행의 경우 공소시효를 현행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포함될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구체적 안이 마련되면 내년에 투표를 거쳐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

네덜란드 여성 노아 젠스마가 지난 8월 말부터 9월말까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길거리에서 자신을 상대로 ‘캣콜링’하는 남성들과 함께 셀카를 찍은 사진들. 인스타그램 @dearcatcallers
네덜란드 여성 노아 젠스마가 지난 8월 말부터 9월말까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길거리에서 자신을 상대로 ‘캣콜링’하는 남성들과 함께 셀카를 찍은 사진들. 인스타그램 @dearcatcallers

길거리 성추행 대응 국제연대인 할라백(Hollaback)과 미국 코넬대학교가 2014년 22개국의 1만6,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4% 여성이 17세 이전에 거리 괴롭힘을 처음 경험해봤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50% 이상의 여성들은 성추행을 당했다.

그렇다보니 유럽과 북미의 많은 여성들이 ‘캣콜링’을 고발하는 운동을 진행해 왔다. 최근 한 네덜란드 여성은 8월 말부터 한 달동안 인스타그램에 캣콜링하는 남성들과 셀카를 찍어 올리는 작업을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네덜란드에 사는 노아 젠스마도 ‘휘파람부는 남자들에게’(Dear Catcallers)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거리에서 성희롱을 한 남성들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젠스마는 인스타그램 계정 첫 글에서 ‘여기 올리는 사진은 여성의 일상 속 대상화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개설 의도를 밝혔다.

인스타그램에 한 달간 게시된 사진 22장을 보면 젠스마는 무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남성들은 웃고 있다. 남성들은 거리에서 젠스마에게 “나랑 키스할래?”라고 묻거나 휘파람을 불며 “자기야”, “안녕 섹시, 내 차에 탈래?” 등 추파를 던졌다. 일부는 스쿠터 경적을 몇 번이나 울리며 “너를 보면 야릇한 생각이 들어”라며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했다. 젠스마는 미국 버즈피드 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들과 셀카를 찍을 때 촬영 의도를 알고 의심스러워 할까 봐 꽤나 겁이 났다”며 “그러나 대부분은 나의 기분을 걱정하지 않은 채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젠스마는 한달 동안 진행된 작업을 종료하며 “전세계의 다른 여성들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넘길 예정”이라며 다른 여성들이 작업을 이어갈 것이란 점을 알렸다. 

2014년 10월 쇼사나 로버츠가 10시간 동안 뉴욕 시내 거리를 걸어다니며 108회에 달하는 '캣콜링'을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 한 남성이 로버츠를 보며 성희롱 발언을 하고 있다. Rob Bliss Creative 유튜브 영상 캡쳐
2014년 10월 쇼사나 로버츠가 10시간 동안 뉴욕 시내 거리를 걸어다니며 108회에 달하는 '캣콜링'을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 한 남성이 로버츠를 보며 성희롱 발언을 하고 있다. Rob Bliss Creative 유튜브 영상 캡쳐

2014년 전세계적으로 4,5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10시간 동안 뉴욕시를 걸어본 여성’이라는 영상은 캣콜링의 대표적 사례다. 할라백이 제작한 이 영상은 배우 쇼사나 로버츠가 맨해튼 일대를 10시간 동안 걸으며 108명의 남성들로부터 다양한 캣콜링을 당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로버츠와 지나쳐간 남성들은 “웃어”라고 외치거나 노골적으로 가슴을 쳐다보고 “연락처를 달라”며 쫓아오거나 말없이 5분 이상 바짝 붙어 걷기도 한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 13만3,000여개 이상의 댓글이 붙을 정도로 큰 논쟁거리가 됐다. 이 영상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남성들이 로버츠에게 ‘좋은 아침’이나 ‘어떻게 지내’ 등 평범한 인사를 건네는 것도 캣콜링이냐고 문제 삼았다.

영상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후 로버츠는 강간∙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로버츠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글로 쓰면 대수롭지 않은 말들이지만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억양”이라며 “성폭력 예방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너무 친절하지 않도록 스스로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할라백의 공동설립자인 에밀리 메이는 “이웃에게 건네는 인사가 심각한 상황을 만들 지 않는 세상에 살기를 원한다”며 “거리 괴롭힘이 지속되고 널리 퍼져있는 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평범한 인사를 받아도 좋지 않은 상황을 우려해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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