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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아이들이 불안ㆍ혼돈 겪고 이겨낼 수 있는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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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아이들이 불안ㆍ혼돈 겪고 이겨낼 수 있는 피난처”

입력
2016.07.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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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피난처’ 오디세이학교

청소년기 방황은 당연한 것

다른 교육 통해 고민하는 기회

단순히 숨는 공간이 아니라

뭐든 도전해도 환대 받는 경험

정책 변화만큼 중요한 작은 실험

랩 하던 학생은 가사 쓰면서

사회ㆍ국어 교과 적극적 참여

‘내가 삶의 주인공’ 배우게 되고

어른에 대한 불신도 사라져

혼란과 방황, 그리고 멈추는 것은 사람의 성장에서 필수적이다. 자신을 찾고 돌아보기 위해서는 해보지 못한 것을 하며 방황하고 멈추어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뒤를 돌아보고 옆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며 청소년들이 오로지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갈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성적이라는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이 뒤처지거나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기 쉽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학교가 있다. 오디세이 학교다. 고등학교 1학년을 좀 쉬고 돌아보며 다른 일을 하면서 자신을 찾자는 취지다. 오디세이 학교를 총괄하고 있는 정병오 교사를 지난 8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꿈틀학교에서 만난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운영책임교사는 “오디세이학교의 성과가 일반 학교에도 소규모 실험 형태로 접목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꿈틀학교에서 만난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운영책임교사는 “오디세이학교의 성과가 일반 학교에도 소규모 실험 형태로 접목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무지 드러내도 환대해주는 학교

“오디세이학교는 조희연 교육감 공약 사항 중 하나였다. 덴마크에 있는 애프터스콜레가 모델이었다. 청소년들에게 다른 교육을 통해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삶의 방향을 고민하며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과정을 거치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이 시기의 방황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크게 안전막을 쳐주자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처음 오디세이 학교를 기획했을 때는 끼와 재능이 많지만 학교와 맞지 않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모집을 해 보니 다수는 학교와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분명하게 자기 길이 있는 것은 아닌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피난처’였다. 오디세이가 큰 틀에서 피난처가 돼 주면서 단순히 숨는 공간이 아니라 뭔가 아직 분명하지는 않고 모호한 것을 시도해 봐도 안전한 곳이라는 말이다. 내가 뭘 해봐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오디세이 학교는 ‘전환’을 도모하는 곳이다.”

배우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배움이란 자기에게 아직 없는 것,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을 알고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도전을 해 봐야 자기가 정말 원하던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배움을 위해서는 자신의 서툶과 무지를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걸 드러내지 않으면 ‘가르침’을 청할 수가 없다. 또한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려는 사람이 뭘 모르고 할 줄 모르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르칠 수가 없다. 그래서 배움에는 자신의 무지와 서툶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용기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냈을 때 안전하다는 생각이 있어야 사람은 용기를 낸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용기를 내서 질문했을 때 환대 받는 경험이 있어야 계속해서 질문을 할 수 있다. 오디세이학교가 ‘안전한 피난처’라는 말은 용기를 내는 것이 조롱이나 모욕을 당하는 게 아니라 환대 받는 경험을 하는 공간이라는 말이다.

“오디세이학교 과정을 마치고 나서 실시한 학생들의 설문 평가를 보면 무엇보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는 걸 배웠다고 말하는 게 제일 많다. 그 다음이 재미있다. 어른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서 어른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고 말한다. 그 전까지 어른은 불신의 대상이었다. 촘촘하게 규율을 만들어서 자신들이 잘못하는 거, 틀리는 것을 감시하고 체크하며 징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디세이학교에 와서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신뢰를 만들어내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 대안학교의 교육적 역량과 경험이다. 대안학교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어른이 처벌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모여서 서로 토론하고 논쟁하며 질서를 자치적으로 만들어간다. 이 문화를 오디세이 학교에 접목한 것이 주효했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에 대해 기다리는 사람, 같이 토론하고 협력하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갖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학생들이 대안학교의 토론과 자치 문화에 적응했던 것은 아니다. 불신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말을 하지 않고 회피하거나 혹은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며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공간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신뢰가 없을 때 자신의 존엄과 이해를 지키는 방어적인 방식이 ‘권리 주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차츰 여기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학생들의 이야기가 바뀌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른 학생들을 존중하기 위한 규칙을 스스로 찾아갔다. 이런 방식에 대해 한 번도 경험이 없는 공교육 출신의 학생들에게 대안교육의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선 것이다.

불안ㆍ방황은 불온하지 않다

“오디세이학교에는 근본적인 불안이 있다. 다름 아닌 1년 과정을 마친 후 2학년 때 복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작년엔 5월에 학생을 모집했는데 한두 달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자 학생들 사이에 불안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은 고1 과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은데 자기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또 이렇게 자유롭게 지내다가 돌아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 이건 근본적으로 우리한테 던져진 도전이었다.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불안을 불안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년 5월 말에 처음 출범했던 오디세이학교를 수료하고 올해 3월에 복교한 1기 학생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잘 지내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힘들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공부 따라가느라 힘들기도 하고 다시 일반 학교의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기도 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1년을 보내며 자기 내면에 힘이 자랐다고 말한다. 불안을 견디고 자신의 내면의 힘에 대해 신뢰하게 된 것, 이런 게 오디세이 학교의 진짜 성과가 아닌가 한다.”

사람의 삶에서 제거될 수 없는 것이 불안과 방황이다. 그런데 앞만 보며 달리는 입시 교육은 이 불안과 방황을 너무 불온하게 생각해서 완전히 제거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면 만성적인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불안한 일이 생기거나 초조해지면 무기력에 빠지거나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해 불안을 견디는 힘이 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면의 힘을 깎아 먹는다. 내면의 힘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후퇴하는 역효과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디세이학교를 경험한 학생들이 불안이나 혼돈을 겪어내는 내면의 힘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불안을 통해 작동하는 시스템이 멈추는 것이다.

“오디세이 학교는 세 가지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첫 번째는 생활역량이다. 배우는 교과가 자기 삶과 무관하게 돌아가던 체계에서 내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배우면서 삶과 연관성, 실천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예를 들어 랩을 하던 한 학생은 이전과는 달리 랩 가사를 쓰면서 사회와 국어 교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두 번째로 관계 역량은 교사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가 책임도 지고 협력도 하는 걸 말한다. 앞에서 말한 자치를 통해서 친구들이 발표할 때는 핸드폰을 자제하자고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게 이런 관계 역량이다. 마지막으로 진로역량인데 이것은 직업을 정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생각하지 못한 삶의 방식과 내용, 의미가 있는 걸 알게 된다. 이런 것을 내면의 힘으로 가지게 하는 게 오디세이학교의 교육 과정이다.”

정병오 교사는 오디세이학교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다는 비판에 대해 ‘자발적으로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실험은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한 오디세이학교를 비판하는 ‘확장 가능성의 부족’에 대해서도 그의 견해는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했다. 오디세이에 오는 학생들이 ‘소수의’ 분명한 끼와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의지는 있지만 방향성이 분명하지는 않은 모호한 상태에서 자기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확장가능성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교육 교사 출신답게 그의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 그래도 오디세이학교에 지원한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어보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와 용기가 있지만 일반 학교에는 이 최소한의 의지도 없이 ‘학교가 제일 편한’ ‘무기력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의미 있는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오디세이학교의 성과에 더하여 좀 더 특화된 교육적 시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을 위한 작은 실험들이 정책의 변화만큼이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학자

●정병오 교사는

1966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 서울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탈북학생의 공교육 적응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사로 근무하면서 교사들의 자발성과 전문성 향상을 통해 교육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자 좋은교사운동을 시작, 대표를 지냈다. 지난해부터 서울시교육청 오디세이학교 운영책임교사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전환교육’의 내용과 확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저서 ‘시대를 뒤서 가는 사람’ ‘선생님은 너를 응원해’ ‘통일한국의 교육비전’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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