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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입력
2018.04.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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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찾은 안산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든 것이 여전하다’고 말합니다. 어린이였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는 사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그들은 영영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안산의 청소년들은 선언합니다. 그들의 선배들처럼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그리고 ‘가만히 잊지도 않겠다’고 말입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한국일보가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기획, 제작, 사진 :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스물한 살. 이젠 제법 어른의 태가 났다. 세월호 참사 1,000일째였던 지난해 1월 7일, 9명의 생존 학생들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 주었더라면...” 편지를 읽던 눈시울이 서서히 젖어들었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여전히 세상은 우리에게 고합니다. ‘가만히 있어라.’ 단지 ‘어리다’는 이유입니다. ’아직 뭘 모른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날로부터 4년 후. 다시 찾은 안산에서 만난 아이들은 ‘모든 것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당시엔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던 어린이들이 그 날 배에 올랐던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이 됐다. 너무 어려서 잘 몰랐던 비극의 실체를 뒤늦게 깨우치기 시작했지만 어른들은 말했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계속 몰라도 된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4ㆍ16 청소년연대 <민들레이야기>가 그 시작이다. 

“청소년들은 아직 못다 핀 존재들이잖아요. ‘꽃씨’를 떠올렸어요. 멀리멀리 날아가 어디서든 눈부시게 노란 꽃을 피워내자는 의미예요. 그래서 민들레이야기죠.”  전국서 200여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의사를 전해왔고, 안산에 사는 학생을 주축으로 15명이 꾸준히 모인다. 이들은 그들의 선배들처럼 가만히 있지도, 어른들처럼 가만히 잊지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급식 먹고 돌아왔는데 학교 끝났다고 집에 가라고. 아무것도 모르고 막 신나서 집으로 뛰어갔어요. 그 이후로는 그냥 어리둥절해 있던 기억밖에 안 나요.” -홍재현(15)군- 그 누구도 열두 살짜리 어린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섣불리 묻지 않고 눈치껏 알아야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어른들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어리니까 몰라도 돼’였고, 중학생 때는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가 됐죠.” 최가람(15)양.  물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어른들도 있었다. 모르는 척 피해가려는 쪽이 더 많았을 뿐이다. 

“아직도 노란 팔찌나 리본 배지 달고 다니는 애들 중엔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남들이 하니까 그냥 다 따라서 하는 거죠.” 기억의 상징을 내걸고 다니지만, 정작 기억의 의미는 없는 셈이었다. 잊지 말자고 아프게 다짐해놓고 너무 쉽게 지겨워했다. 기억하고 되새기는 게 당연한 의무로 여겨졌던 것도 잠시. 

“학생들은 ‘어른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굳이 뭘 하냐. 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긴 하냐. 그런 반응이더라고요.” -정수빈(18)양- 새삼 ‘가만히 있으라’는 세뇌가 무섭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직접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광화문에서 4주기 추모제가 열리길래 버스를 기다리던 친구한테 물었어요. ‘우리 같이 갈래?’ 그런데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불쑥 오시더니 갑자기 쏘아붙이시는 거예요.” -김대환(16)군-

 “너희들이 거기 나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니? 얌전히 할 거나 해.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학생이 말이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공부를.” 

대환군은 재작년 11월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휴, 저 빨갱이 새끼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들이 어디서 선동을 당해 가지고!” 대환군과 친구들이 ‘빨갱이’로 몰린 이유는 하나였다. 가슴에 매단 세월호 배지.

어른들 말마따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란 말은 억울하다. 요즘 청소년 열명이 모이면 일곱 이상은 광장에 나섰던 ‘촛불 시민’. ‘어른들의 말을 잘 들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차가운 바다에 갇혔던 선배들의 존재가 그들을 바꿨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정치적으로 진화’한 존재들이다.

일단 기다려라, 훌륭한 어른이 돼 바꾸라는 말은 공허하다. “시간 지나면 결국 우리도 어른이 될 것 아닌가요? 이미 청소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게 되는 거예요. ‘계속 기다리라’하면 청소년들은 도대체 누가, 언제 대변할 수 있는 건가요.” -최가람(15)-

“청소년들 스스로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어른들이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고요.” -홍재현(15)- 어른들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면서 정작 어떻게 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안다. ‘적어도 가만히 있지 말 것’.

지금은 그때보다 안전한 것 같아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뇨!” 안전교육 관련법은 바뀌었다. 방법은 그대로고 횟수만 늘어났다. “아직도 안전교육이래 봤자 동영상 하나 보는 게 전부예요. 친구들은 다 자요. 내용도 그냥 뻔한 얘기예요. 안전벨트 하자, 구명조끼 잘 입자. 선배들이 구명조끼 안 입어서 희생된 게 아닌데…” 

세상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학생들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겨울, 강원도 산속으로 캠프를 갔는데 눈이 엄청 와서 버스가 계속 미끄러졌죠."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땐 달랐죠. 일단 다 같이 차에서 나왔어요.” 수빈양을 비롯한 친구들 모두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모두의 머리 속에 새겨진 ‘그 기억’ 때문이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의 요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뒷면에 세월호와 노란 리본이 그려진 손거울을 만들어 팔았다. 금세 동이 났다. 적지만 값진 돈은 세월호 관련 단체에 보탬이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학생들의 손만’ 거쳤다.

“저희도 해 보고 싶은 게 많아요. 퍼레이드, 서명운동, 플래시몹, 합창…. 아! 벽화 그리기도 계획 중이에요. 안산이 재개발 중이라 여기저기 위험한 공사현장들이 많거든요? 공사 가림벽에 세월호위로 날리는 민들레 꽃씨들을 그려 넣을 거예요. 그리고 청소년들도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한 우리들이 여기 있다고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다. 바삐 굴러가던 눈동자들이 동시에 반짝하고 빛났다. “동물사육사가 될 거예요. 새를 좋아해요. 보드랍고 따뜻하잖아요.” -이다영(17)양- 연극배우, IT전문가, 음악 프로듀서, 기자. 그들의 목소리가 가장 들뜨는 순간이었다.

4년 전, 어두운 바닷속 아이들의 시신은 하나같이 동그랗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고 한다. 두 주먹은 꼭 쥔 상태로. 뼈 속까지 스민 것은 한기였을까, 두려움이었을까. 그들에게도 두 뺨을 금세 붉힐 소중한 꿈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수백 개의 꿈이 부서진 그 날이, 또 왔다.

기획, 제작, 사진 :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 <민들레이야기>, 4.16안산시민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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