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정리뉴스] ‘윗선’ 목 조여가는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

알림

[정리뉴스] ‘윗선’ 목 조여가는 국정원 여론조작 수사

입력
2017.09.19 17:02
0 0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건물. 배우한 기자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건물. 배우한 기자

최근 국가정보원(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의 조사와 검찰 수사로 이명박 정부에서 운영된 댓글부대의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 조사와 검찰 수사에 따르면 국정원은 인터넷 여론 조작을 위해 편향된 정치적 댓글을 작성하는 인력을 조직적으로 운용했다. 이에 따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지난달 30일 징역 4년을 선고받았고 민간인 댓글부대를 총괄 운영하며 여론조작을 벌인 혐의를 받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은 19일 구속됐다.

포털ㆍSNS 댓글, 합성 사진, 시사만화로 여론조작

국정원 TF는 과거 국정원에 민간인 여론조작팀인 사이버 외곽팀이 총 30개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이들은 3,500여개의 이용자번호(ID)를 이용해 인터넷 포털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론 조작성 댓글 등을 게시하거나 특정 인물을 비방할 목적으로 합성 사진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동화작가 송명훈씨는 지난달 팟캐스트 방송에서 2012년 제 18대 대선 당시 댓글부대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시사만화의 말풍선에 넣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2011년 인터넷에 유포된 배우 김여진씨와 문성근씨의 음란성 합성사진도 국정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 이전에 이미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2009년 2월 취임 후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예술계 인사에 대해 압박을 지시하면서 82명에 이르는 좌파 연예인 명단을 만들었다. 국정원은 이들의 방송 출연을 막거나 소속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유도하고 이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기업에 항의 메일을 보내는 등 집요한 방해 공작을 벌였다.

댓글부대의 타겟들은 어떤 고통을 당했나

국정원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은 인터넷에서 악성 글로 공격당하고 아예 일감이 끊기는 등 여러가지 고통을 겪었다. 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방송을 보고 SNS에 의견을 남겼던 배우 김민선씨는 방송 출연 등이 막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배우 문성근씨는 18일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블랙리스트 명단에 함께 포함된 후배 배우 김민선이 최대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는 20대, 30대에 연기력을 키우고 이름을 알려야 하는데 김민선 배우는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배제돼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정원 댓글부대에게만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댓글부대의 공작 논리가 인터넷에 확산돼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비방과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 문씨는 19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공작조가 만들어낸 논리가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있다”며 “이번 블랙리스트 발표 후 (김민선씨가) 또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소설가 이외수도 지난 18일 인스타그램에 “블랙리스트를직접 봤다는 어떤 정부 고위직이 ‘당신은 암적 존재이므로 매장될 때까지 압박하라는 내용이 있었다’고 전했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배우 김민선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배우 김민선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계각층 보수인사에서 친MB 인사로

대선 앞두고 확 바뀐 댓글부대 팀장들

국정원 TF는 검찰에 총 48명에 이르는 국정원 댓글부대 민간인 외곽팀장들에 대한 수사를의뢰했다. 외곽팀장들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폭 교체돼 언론계 종사자, 사립대 교수, 대기업 간부, 미디어 전문가, 대학생 등 사회 유력 인사나 일반인 등 다양한 직업, 계층으로 구성됐다.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이들 가운데 해외에 한국을 널리 알린 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양학부 교수도 포함돼 있다.

대선 기간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ㆍ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오모(38)씨 등을 비롯해 보수ㆍ친MB 단체 회원 출신들 30명이 외곽팀장으로 활동했다. 검찰은 대선 기간에 친보수 성향의 일반인들이 신분상 이유 등으로 댓글 활동에 부담을 느껴 실적이 부진하자 이들보다 부담을 덜 느끼면서 보안 유지가 가능한 보수단체 사람들로 외곽팀장을 교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사이버외곽팀 책임자인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웅중앙지방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 뉴시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사이버외곽팀 책임자인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웅중앙지방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 뉴시스

국민 세금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댓글부대 운영자금으로

댓글부대 운영 자금은 국정원 특수활동비에서 나왔다. 특수활동비는 집행내역에 대한 증빙이 허술해 ‘깜깜이 예산’으로 불린다. 올해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4,930억원이다.

국정원 TF는 대선이 있던 2012년 국정원이 민간인 댓글부대에 매달 2억5,000만원씩 연간 30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냈다. 성과에 따라 댓글부대원 1인당 5만~100만원씩 지급됐다. 이 비용은 모두 특수활동비에서 나왔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2010~2012년 군의 댓글공작에도 쓰였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전 국군사이버사령부의 김기현 530심리전단 총괄계획과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정원에서 특수활동비로 매달 25만원씩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국방부는 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의혹도 전면 재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 결재권을 갖고 있던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방송인 김미화 씨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피해 상황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기자들의 질문에 답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방송인 김미화 씨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피해 상황에 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기자들의 질문에 답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국정원 댓글공작 수사의 끝은 MB

결국 국정원 댓글공작 사건 수사는 당시 정부의 최고 책임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을 고소 고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9일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을 고소했다. 2011년 11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박 시장을 종북 인물로 규정해 견제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제6차 회의에 참석한 박 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가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고 민주정부 수립을 허사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적폐청산TF 회의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박원순 제압문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적폐청산TF 회의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박원순 제압문건'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10년 KBS 내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주장한 방송인 김미화씨도 19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이 전 대통령이 부끄러움 없이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현실이 정말 어이 상실이라 생각한다”며 “이 전 대통령과 그 밑의 어느 범위까지 고소할지 변호사와 상의 중”이라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