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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막말ㆍ갑질 어디에 말하죠”… 대학 10곳 중 1곳만 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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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막말ㆍ갑질 어디에 말하죠”… 대학 10곳 중 1곳만 인권센터

입력
2017.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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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 성희롱ㆍ캠퍼스 군기 폭력

대학사회서 비일비재 발생 불구

부당한지조차 판단해줄 곳 없어

그나마 인권센터 설치한 대학도

총장 등 관여 ‘독립적 판단’ 난망

“참자니 억울, 신고하자니 찜찜”

온라인ㆍ대자보 폭로 자체 해결

“빠른 시일내에 설치 의무화를”

서울대 인권단체모임이 13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대학원생 인권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인권단체모임이 13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대학원생 인권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서울 연세대에서 ‘텀블러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김모(47) 교수는 팔 등에 화상을 입었고, “한국도 더 이상 테러안전지대가 아니다”는 공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범행 12시간 만에 붙잡힌 범인은 대학원생 제자 김모(25)씨. 범인이 밝혀지자 의외의 반응이 쏟아졌다. “교수가 괴롭힌 게 분명하다”는 추측에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는 동정론까지. 이런 뒷얘기는 대학을 중심으로 금세 사실처럼 퍼져나갔고 “교수 갑(甲)질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교수 갑질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경험에 근거한 당연하고 합리적 의심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수면 위로는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던 대학 내 학생 인권침해가 최근 잇단 폭로 등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침해는 시도 때도 없었고,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강의실도 그 중 하나. 서울시립대 소속 김모(54) 교수는 강의 중 학생들에게 “병신 같다” 등 막말을 서슴지 않았고, 한양대 임모(68) 교수는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을 향해 “퀴리 부인을 모르면 장애인 자격이 없다”고 말해 도마에 올랐다.

선후배 간 ‘군기 문화’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는 올 초 “선배를 웃기지 못하면 옷을 하나씩 벗어야 하는” 신입생 환영행사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단 사실로 여론에 질타를 받았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특정 학우를 성희롱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우리를 보호해 줄 방패막이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권센터.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이모(22)씨는 “교수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토로는 물론, 부당한지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만한 곳이 없어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이씨가 다니는 학교에는 물론 인권센터가 없다. “당해도 당했다고 할 곳이 없고, 피해자는 충격에 비틀거리는데 가해자는 멀쩡히 학교를 다니는 비정상을 바로잡아 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학생들 요구는 그래서 정당하다.

빈발하는 대학 내 인권침해에도 불구하고 인권센터 설치가 확인된 대학은 10곳 중 한 곳도 안 된다. 20일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237개 대학을 상대로 인권센터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40곳(59.1%)은 아예 응답을 안 했고, 조사에 응한 97개교 중 19곳(8%)만 인권센터가 설치돼 있었다. “무응답 대학은 인권센터를 설치하지 않아 응답을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원실 설명이다. 노 의원은 “사실상 국내 대학 대부분이 학내 구성원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나설 의지가 없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일단 대학 측은 “설치 의무가 없다”는 말을 한다. 인권센터를 만들라는 어떤 규정도 없는 상황. 굳이 강제사항도 아닌 센터를 설치하면서 비용을 떠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이미 인권센터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하는 기관 등이 있다”거나 “추가 비용 들여 인권센터를 만들 정도로 인권침해가 심각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이며 인권센터 설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한예종 관계자는 “지난해 인권센터 설립 논의가 있었지만 학교 규모도 작고 조직개편 등에 어려움이 있어 추진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강제력이 없는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기관 권고나 제안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대학원이 설치된 182개 대학 총장에게 “인권전담기구를 설치하라”고 권고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권고를 받아들였다거나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했다는 대학을 찾기 어렵다.

인권센터가 있다고 해서 ‘인권보장‘을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권센터에 대한 구성원 신뢰도가 충분히 높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인권침해 피해자 대다수를 이루는 학생들이 “인권센터는 학교 편”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안을 축소시켜 학교 명예 실추를 최소화하는 데 급급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노 의원이 조사한 19개 대학 인권센터 실태에 따르면 학교 내 상위기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인권센터는 겨우 3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학은 인권센터를 총장 직할 또는 일반 부서처럼 두고 있어 독자적 운영과 독립적 판단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또 절반 이상은 센터 운영위원회에 학생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5곳 중 3곳은 징계 권한조차 없다. 학생들이 아예 온라인 익명 글로 자체 해결 하려 하거나, 학내 대자보로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대학생 김정현(24)씨는 “참자니 억울하고 신고하자니 곤란해질까, 익명게시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규모 예산 등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최소한의 기능(고충해결)이라도 갖춘 기구를 이른 시일 내에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인권센터 원경주 변호사는 “교수가 시키는 사적 심부름 등 과거에 문제되지 않았던 부분도 인권문제로 요즘 부각되기 시작했다”며 “민원이나 고충을 해결하는 다양한 학내 기구들을 하나의 인권센터로 운영하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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