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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비정규직 우산 빼앗은 기아차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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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비정규직 우산 빼앗은 기아차노조

입력
2017.04.28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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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강제탈퇴 가결

뒷걸음질 친 노동운동.. “노동운동이 정규직ㆍ비정규직 양극화 고착화”

28일 기아차 화성공장에 정규직-비정규직 분리투표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박세인 기자
28일 기아차 화성공장에 정규직-비정규직 분리투표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박세인 기자

기아차 노조가 끝내 분리 투표를 통해 비정규직의 우산을 빼앗았다. 조합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을 택하면서 기아차 노조의 ‘1사1노조’는 9년 만에 막을 내렸다. 기아차 비정규직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질 위기에 놓였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전날부터 열린 조합원 총투표에서 ‘비정규직 하청노청 노동자들을 지회에서 탈퇴시킨다’는 안건에 대해 71.7%의 찬성(투표율 85.9%)으로 가결했다. 이는 가결기준(66.7%)을 크게 웃돈 수치다. 전체 조합원 3만여명 가운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이 91%대 9%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규직 중 반대표를 던진 이들은 9명 중 2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찬성표를 던졌다는 한 정규직 조합원은 “비정규직과 갈라선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10년간 비정규직과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는데 이를 해소할 길이 보이지 않아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로써 기아차지부의 조합원 자격은 현재 ‘기아차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서 ‘기아차 주식회사에 소속된 노동자’로 바뀌게 됐다. 2008년 1사1노조 설립 이후 그간 기아차지부라는 한 우산 아래 있었던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 2,800여명은 지부에서 강제로 분리돼 별도의 노조를 설립해야 하게 됐다.

끝내 분리 투표가 가결된 데 대해 연대의 가치가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기업 노조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규직들의 밥그릇 지키기의 결과라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별 노조 시스템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 이해관계를 하나로 통합하기 어렵다”며 “결국 정규직 중심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굴복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비정규직 차별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대의 후퇴이며, 노동운동이 그만큼 뒷걸음질 친 것”이라며 “노동운동이 정규직ㆍ비정규직 이중구조 양극화를 넘어서기 위한 주체가 돼야 하는데, 외려 이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정우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조직2부장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상대적인 약자인 비정규직 조합원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조합원은 기아차지부에 흡수되기 이전과 같이 독자 노조를 만들어 금속노조 경기지부 지회로 돌아가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앞서 기아차지부의 총투표 결정을 비판했던 상급노조인 금속노조는 “이번 결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절망감을 안겨 주게 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노조운동 자정과 혁신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다각도의 대책 방안을 수립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금속노조는 기아차지부가 절차와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서 제명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분리 결정으로 기아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은 지난 2월 현대ㆍ기아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불법 파견임을 인정하며 “2년 넘게 일한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거나 고용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라”고 판단했지만, 사측은 여전히 하청 비정규직의 전면적인 정규직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정규직 전환에 합의되지 않은 2,000명가량은 단일노조의 지원사격조차 받지 못하면서 정규직화가 더 불투명하게 됐다.

앞서 금속노조는 2006년 산별노조를 실현하고 정규직ㆍ비정규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1사1노조 원칙을 담은 규약을 채택했다. 기아차지부는 2008년 완성차 정규직노조 가운데 처음으로 사내하청지회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1사1노조를 건설하며 ‘연대 투쟁’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노동계에서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기아차 노사가 사내하청 비정규직 1,049명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사내하청분회가 “나머지 2,000여명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독자 파업을 실시하는 등 지부와 갈등을 빚었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자 지난 6일 지부 대의원회의에서 한 정규직 대의원이 ‘1사1노조 유지에 대해 조합원 의견을 묻는 총투표를 하자’는 안건을 내면서 총투표로 이어졌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화성=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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