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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줄기세포 연구하지만, 첼리스트로 더 유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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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줄기세포 연구하지만, 첼리스트로 더 유명해요”

입력
2016.09.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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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프린스턴 분자생물학 박사

현재는 카이스트 연구원

차이콥스키 청소년 콩쿠르 1위

방한 엘리자베스 여왕 앞서 연주

“생물학은 이미지로 타인 설득

청중 있는 음악도 마찬가지”

현재 카이스트 전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고봉인은 첼로 연습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편이다. "연습 시간이 다른 연주자에 비해 적지만, 다양한 경험이 음악성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현재 카이스트 전문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고봉인은 첼로 연습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 편이다. "연습 시간이 다른 연주자에 비해 적지만, 다양한 경험이 음악성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사르트르의 사팔뜨기 눈, 톰 크루즈의 난독증, 박지성의 평발. 세기의 천재, 혹은 스타에게 치명적인 치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평범한 우리는 안도한다. ‘그래, 신은 공평한거야.’

그런데 카이스트에서 유방암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첼리스트 고봉인(31)은 그런 질투어린 기대를 여지 없이 무너뜨린다. 과학자인 아버지(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 단장),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백승희 전 전주예고 교사) 사이의 그는 두 분야를 정말 잘 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학사,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첼로 석사, 프린스턴대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의 현재 직업은 카이스트 연구원이다. 요즘은 유방암 줄기세포를 연구하며 ‘평범하게’ 지내지만 한때 첼리스트로 명성이 더 높았다. 2008년 평양에서 열린 제27차 윤이상 연주회에 남한 연주자로 처음으로 초청됐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한국 방문 때 청와대에서 연주했으며, 실크로드 프로젝트로 첼리스트 요요마와도 협연했다.

고봉인이 7년 만에 독주회를 갖는다. ‘더 첼리스트’라는 타이틀로 금호아트홀에서 22일과 10월 27일 두 차례 연주한다. 고봉인은 5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두 분야의 탁월한 재능을 가진 비결로 “지구력이 좋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이큐가 몇이냐’는 질문에는 “검사해본 적 없지만 아주 낮을 것”이라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뭐든 아주 느리게 배우는 편이에요. 어릴 적 말을 못해서 부모님이 병원에 데려가실 정도였대요. 대신 한번 이해하면 잘 안 잊어버리는 편이죠.”

고봉인이 5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첼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고봉인이 5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첼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그가 첼로를 전공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는 ‘음악가의 길이 너무 고되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악기를 전혀 가르치지 않았지만, 집에서도 종종 학생들은 가르쳤다. 집에는 당연히 클래식 음반이 많았는데, 고봉인은 8살 무렵 파블로 카잘스의 베토벤 첼로 소나타 음반을 듣고는 “이 길이 내 길이다”라며 어머니에게 1년을 조른 끝에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뭐든 적응이 늦다”는 그의 말과 달리 1년 반 만인 10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들어갔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보통 음악 영재들은 현악기의 경우 4, 5살 무렵부터 배운다)는 불안감에 아침 저녁으로 연습했고 국내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아버지 같은 과학자가 되길 바랐지만, 그가 1997년 차이콥스키 국제 청소년 콩쿠르 첼로부문 1위를 차지하자 음악공부도 지원해주기 시작했다. 2000년 독일 크론베르그 첼로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후 란드그라프 폰 헷센 상을 수상하며 유럽 첼로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당시 독일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아르헨티나 출신 첼로 요정 솔 가베타, ARD 국제음악콩쿠르 첼로 부문(2010) 우승자 율리안 슈테켈 등이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것은 당연히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무한 긍정론자’인 아버지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한 번도 짜증을 낸 적이 없었고, 대여섯 살 꼬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실험을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한두 명의 천재가 분야를 이끌어 가는 물리학과 달리 “소통과 반복 학습이 중요한” 생물학은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는 “생물학은 물리학처럼 다른 세상에 있는 학문이 아니다. 자꾸자꾸 연습하면 실력이 느는 게 음악과 같다”고 말했다. “생물학 연구할 때는 예술성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 혈관 이미지 찍을 때 미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각도 조명 노출 다 생각해서 찍어요. 제 논리를 이미지를 동원해 설득하는 게 중요해요. 음악도 마찬가지잖아요. 이미 작곡된 작품을 청중한테 설득력 있게 연주하는 게 중요하죠.”

오랜만의 독주회에서도 “청중을 잘 설득할 수 있는 곡”들을 들려준다. 고봉인의 주특기인 윤이상의 대표곡 ‘첼로 독주를 위한 활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공간1’을 비롯해 벤저민 브리튼, 졸탄 코다이,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현대음악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첼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곡들이에요. 동서양 음악이 한데 어울린 측면도 있죠. 여러 문화권에서 살았던 제가 잘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고요.”

인터뷰 말미에 과학자와 연주가의 길 중 어느 길을 택할 거냐는 질문에 쑥스러운 듯 답했다. “둘 다요.”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첼리스트 고봉인.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첼리스트 고봉인.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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