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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트로피' 삼아 약탈… 하나둘 늘어나는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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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트로피' 삼아 약탈… 하나둘 늘어나는 귀환

입력
2015.05.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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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만에 독일 돌아간 5점

상속자 5일 박물관에 기증

아이젠하워 대통령 금지령에도

수많은 작품 종전 후 美 반출

각국서도 반환 요청 잇따라

한국은 어보 등 일부 돌려받아

지난 5일 주미 독일대사관을 통해 70년 만에 독일로 되돌아간 빅토리아 여왕의 금장 액자.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안토니 반 다이크의 작품인데,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자세를 본떴다.
지난 5일 주미 독일대사관을 통해 70년 만에 독일로 되돌아간 빅토리아 여왕의 금장 액자.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을 그린 안토니 반 다이크의 작품인데,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자세를 본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독일 데사우 지역에 진출한 연합군 부대. 격렬한 전투 끝에 이 지역을 점령한 병사들은 전쟁의 상처와 향수를 잊기 위해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군인들에게 내기를 할 만한 돈이 있을 리는 만무. 그래서 당시 데사우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명화들이 ‘게임 칩’을 대신했다. 연합군에 점령당하기 직전 박물관 관계자들은 인근 광산에 작품들을 숨겼지만, 연합군들은 이를 찾아낸 것이다. 그날 포커 게임의 승자였던 미 탱크부대 사령관 윌리엄 오브테브로 소령은 옛 거장의 그림 3점을 손에 넣었고, 이 그림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 그의 집으로 옮겨졌다. 이후 미국 텍사스의 아내 집 벽에 걸려 있다 70년이 흘러서야 드디어 그들의 원래 집인 독일 데사우 박물관으로 돌아가게 됐다.

문제의 세 그림을 포함한 5점의 작품들이 지난 5일 상속자들의 손을 거쳐 주미 독일대사관에 양도됐다. 세 그림의 상속자이자, 윌리엄 소령의 양아들인 제임스 헤링턴(71)씨는 “아버지가 포커 게임에서 이겼든 졌든 이 그림들은 도난 당한 것들”이라며 “이 사실을 안 후로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찰스1세 초상화. 왕의 정면과 양 옆의 모습을 보는 관점에 따라 세 곳으로 나눠 그린 뒤 다시 이를 모아 놓은 구도가 이채롭다.
찰스1세 초상화. 왕의 정면과 양 옆의 모습을 보는 관점에 따라 세 곳으로 나눠 그린 뒤 다시 이를 모아 놓은 구도가 이채롭다.

나머지 두 작품은 소형 작품들로, 독일 크론베르크 성에서 분실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나는 안토니 반 다이크가 1636년 그린 영국왕 찰스1세의 초상화이고, 다른 하나는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을 금장 액자에 넣은 것이다. 이 작품들은 건축가 미첼 홀란트(67) 씨가 소장하고 있었다. 그의 이모는 2차 대전 당시 여군에 입대했는데, 이모가 2005년 사망한 뒤 그녀의 금고에서 이 작품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감정 전문가들은 작품 당 2만5,000~5만 달러(5,500만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약탈의 역사는 항상 나치 독일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알브레히트 뒤러, 루카스 크라나흐, 프란스 할스 등의 수많은 작품들 역시 1940년대 트렁크 박스나 소포 등을 통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말한다. 데사우 박물관 관계자는 “도난품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다시 고향인 독일로 되돌아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옛 성들과 개인 금고, 박물관 등에서 도난 당한 작품들과 독일 나치가 다른 나라에서 조직적으로 훔쳐온 작품들의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부 미군들이 ‘잘 모르고’ 저지른 범죄”라는 변명도 통하진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이런 절도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도난 예술품 반환 추진재단 로버트 엣셀 이사장은 “이번 반환 행사는 ‘불법적인 승리 트로피(훔친 예술품)’를 벽에 걸어 두고 자랑스러워 했던 퇴역 군인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각국서 미술품 반환 요구… 체면 구긴 미국

최근 미국은 도굴과 밀거래 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장품에 대해 반환 요구가 잇따르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려 있다. 미국 게티 센터의 경우 청동 조각품을 놓고 본격 소송을 벌이고 있다. 게티는 2006년부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많은 미술품을 이탈리아에 돌려준 바 있다.

미국 박물관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은 2,500년 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탈리아 도자기를 포함해 여러 점의 작품을 2006년 반환했다. 이 도자기는 고대 그리스 화가 유프로니오스가 신들의 사자인 헤르메스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으로 가격을 따질 수 없는 국보급 작품으로 평가되며 반환 당시 전 세계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노튼 사이먼 미술관도 10~12세기 크메르 왕국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 조각석상을 지난해 5월 캄보디아에 반환하기로 했다. 경매회사가 추정한 이 석상의 가격은 약 300만 달러(32억7,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계속 미술품 반환 요청이 잇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2년에는 금과 보석이 박한 성경 표지, 손으로 깎아 낸 상아 조각과 금목걸이, 은제 유물 등 8세기 골동품들이 독일 루터 교회로 반환된 적이 있다. 물론 이 유물을 갖고 있던 텍사스 지역의 상속자에게 3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또 1945년 도난 당한 야코포 데 바르바리의 ‘그리스도’는 4만 달러에 독일 바이마르 미술관으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의 미술품 반환 사례는

올 4월1일 시애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덕종(德宗ㆍ1438~1457)의 어보(御寶)가 공식 반환됐다. 현종ㆍ문정왕후 어보를 각각 소장하고 있는 LA 고미술품 수집가와 LA카운티 미술관은 지난해 5월 “돌려주겠다”고 밝혔을 뿐 아직 환수 시기를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조선시대 어보는 총 374과가 만들어졌으며 이중 318과를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명백히 분실한 것으로 파악된 것을 제외하고 현재 37과의 행방이 묘연한 상태인데, 사라진 어보 대부분이 종묘 출입문쪽에 위치한 것으로 미뤄 한국 전쟁시기 미군 병사들이 들고 간 것으로 추측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한국 방문 때 불법 반출됐다 미국에서 압수된 국새와 어보 등 인장 9점을 들고 와 호응을 얻기도 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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