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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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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상처 받을 수 있는 능력

아이는 빠른 속도로 언덕을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아, 조심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대로변은 아니었으나 자동차가 꽤 자주 오가는 이면 도로였다. 봄 햇살 속에...

2018.04.08

[삶과 문화] 어떤 무해한 삶

그는 비행기를 조종할 줄 몰랐고, 등산 경험도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영국에서 티베트까지 비행기로 날아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

2018.03.18

[삶과 문화] 공동정범

하필이면 그 날 안방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다. 몇 달 끌던 번역 일을 마친 다음 날이었다. 마감 기한이 촉박해져 외출도 삼가면서 일에 한층 집중해야할 무렵이면, 이상하게...

2018.02.25

[삶과 문화] 월식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집이었다. 한 군데 트여 있는 정면으로는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푸르고 붉은 지붕들이 내려다 보였다. 아침 저...

2018.02.04

[삶과 문화] 1987

영화를 보고 나오며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1987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 해 1월에 그는 방학 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던 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동네 공업사에서 ...

2018.01.14

[삶과 문화] 폭설

옛날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 세상이 온통 모서리가 둥근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실컷 울고 난 뒤 기분 같아서,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

2017.12.24

[삶과 문화] 코끼리

모임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다. 벌써 서른 명쯤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안내하는 분이 다가와 이름을 묻는다. 내가 미처 이름을 말하기 전에 그녀는 내 뒤에 들어온 어느 작가에게 반...

2017.12.03

[삶과 문화] 그의 어머니

단추 때문에 목이 너무 아프다 ㅠㅠ 그가 보낸 문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늘 그는 와이셔츠를 입었고 넥타이를 맸다. 입사 시험 면접을 보러 갔다. 그 동안 자기 소개서를 쓰...

2017.11.12

[삶과 문화] 하얀 깃털

아버지의 얼굴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지나간다. 앞에 서 있는 이 여자가 당신의 딸은 분명한데, 이름이 가물가물하거나, 아니면 몇째 딸인지 흐릿한 거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아버...

2017.10.22

[삶과 문화] 가상 시나리오 ‘3분’

3분이라니 너무 하잖아. 3분 뒤에 이 도시로 핵폭탄이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다. 휴대폰 버튼을 눌러 아들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중이다. 사람들이 일제히 휴대...

2017.10.01

[삶과 문화] 폭력의 공범

아들은 전교생이 서른일곱 명인 분교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우리 가족은 다소 낭만적 꿈을 가지고 시골로 이사했다. 귀농을 결심할 때는 아들에...

2017.09.10

[삶과 문화] 클래스

환승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되어서 서두르셔야 할 것 같아요. 공항에서 짐을 부치는데 비행기 회사 직원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넓고 복잡하거든요. 나는 놀라서 되...

2017.08.20

[삶과 문화] 그날 밤, 당진

당신과 우연히 마주친 것은 어느 여름날 밤이었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던 거 같아요. ‘당진’이라는 도시에 있는 허름한 분식집에서였습니다.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

2017.07.30

[삶과 문화] 우연의 목적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관광객들은 제각기 낯선 나라에 대한 소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연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잖아? 집들이 깔끔하고 예뻐서 달라 보이는 거지. 그런데 고...

2017.07.09

[삶과 문화] 침묵의 목적

일요일일 수밖에 없는 날씨였다. 아무리 심술궂은 신이라도 이런 햇빛과 이런 바람, 이런 하늘을 펼쳐 놓고, 사람들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날씨 탓에 너무 긍정...

2017.06.18

[삶과 문화]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선물

갈림길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인다. 한쪽은 산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오솔길이고 다른 쪽은 자동차가 다니는 이차선 도로를 따라가는 보도다. 사람들이 많이...

2017.03.06

[삶과 문화] 물건들

한밤중에 고속도로 휴게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인형 뽑는 기계가 놓여 있었다. 투명한 통 밑바닥에 인형들이 겹겹이 깔려 있고, 버튼을 눌러 조종하면 아래위...

2017.02.13

[삶과 문화] 흡연 유감

학교에 다니던 스무 살 무렵의 어느 날. 첫 수업을 마치고 다른 강의실을 향해 서둘러 가고 있었다. 통로 끝에서 출입문을 열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구름다리로 들어서면서, 그 해...

2017.01.23

[삶과 문화] 귤이 배달된 저녁

새벽 4시에서 아침 10시 사이에 반드시 잠을 자야만 하는 나의 습관을 변명하다가 시작된 이야기였다. 나는 그 시간에 잠을 못 자면 하루 종일 무슨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

2017.01.02

[삶과 문화] 감시와 저항의 사소한 기록

낡은 미닫이문 유리창 너머로 가게 안을 한참 들여다본다. 세 벽면을 메우고 있는 선반마다 빨갛고 파란 표지의 만화책들이 가득하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선반 바로 아래 아...

2016.12.12

[삶과 문화] 광장에서

저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이 외친다. “여기 모인 시민 여러분은 서로를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남성이거나 여성이거...

2016.11.21

[삶과 문화] 괴물이 창궐하는 세상에서 사랑은

세상은 몬스터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는 그녀의 소꿉친구이자 몬스터를 퇴치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전사. 그녀는 그가 자기처럼 평범한...

2016.10.31

[삶과 문화] 5센티미터 위의 세상

세상이 책과 같은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에는 책을 읽다가 주인공이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괴물과 마주하는 장면이 나오면, 주인공이 납득할 수 없는...

2016.10.10

[삶과 문화] 사랑 발굴단

누가 볼까 봐 문 닫아걸고 먹는다는 가을 아욱국을 끓이려고 아욱을 손질하는 중이었다. 줄기와 잎사귀 사이에 연한 보랏빛 작은 꽃봉오리가 숨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그 순간 ...

2016.09.19

[삶과 문화] 취한 말들의 시간

“선배, 술 좀 마시지 마요. 그건 그냥 견디는 거잖아요.” 휴대폰 액정화면에 늘어서 있는 글자들을 보는 순간, 흐릿하게 무뎌진 머릿속에서 형광등 하나가 반짝 켜지는 것 같았...

2016.08.29

[삶과 문화]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버스가 비탈길을 올라간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 양쪽에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를 뚫고 곡예를 하듯 달린다. 이중 주차된 택배 트럭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기사가 혼잣말...

2016.08.08

[삶과 문화] 히말라야의 불청객

평생의 업과 죄를 씻을 수 있다는 사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은 기나긴 돌계단이다. 해발 3,700m. 산소 부족으로 밤새 두통, 구토, 설사에 시달린 관광객에게는, 경사가 급...

2016.07.18

[삶과 문화] 보고 싶다

무엇인가를 만지려고 손을 뻗은 게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어제나 그제 같은 가까운 과거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 같기도 하다. 기억은 믿을 ...

2016.06.27

[삶과 문화] 들려도 들리지 않는

그 날 나는 이모네 집 대청마루 모서리에 걸터앉아, 섬돌 위에 놓인 내 빨강색 쓰레빠(슬리퍼의 일본식 표기) 밑으로 개미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당으로 내...

2016.06.06

[삶과 문화] 박 사장이 팔아야 했던 것들

이게 있잖아요, 박 사장의 손가락이 탁자를 살짝 어루만진다. 낡은 건물이나 가구 같은 걸 해체할 때 나오는 오래된 목재로 만든 거예요. 긴 시간 건조되어서 단단하고 색과 결이 ...

2016.05.16

[삶과 문화] 너 없는 평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벌써 꽃들이 피기 시작했잖아. 가로등 불빛 아래 창백하게 그늘진 매화를 바라보며 친구는 투덜거린다. 아까부터 흘려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안타까움과...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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