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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열다

입력
2022.08.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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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장영실의 자격루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국보 제229호 자격루. 위키피디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국보 제229호 자격루. 위키피디아

조선은 유학과 사대(事大)의 나라였지만 그 굴레를 끊기 위한 저항도 부단히 이어졌다. 이탈의 원심력은 농업과 현실의 학문에서 비롯됐다. 하늘을 읽어 계절 절기를 간추리고, 하루를 읽어 시간을 정립하는 일, 곧 천문 과학 기술이었다. 중국과 다른, 조선의 독자적인 하늘을 읽는 일은 천자를 거스르는 반(反)사대의 의미로도 이해될 만한 과업이었다. 그걸 세종이 시도했고, 생몰연도도 기록된 바 없는 관노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이 주도했다.

원나라 기술자와 동래 기녀 사이의 관노로 태어난 장영실은 타고난 손재주와 도천법(신분 불문 인재를 조정에 천거하는 제도) 덕에 1412년 태종의 상의원에 들었다. 왕실의 옷과 가구 등을 도맡아 만든 조선 최고 기술자 집단인 상의원에서도 장영실은 두각을 나타냈고, 세종은 그를 두 차례나 명나라 사신으로 보낼 만큼 신임했다. 왕이 그에게 주문한 것은 중국의 천문 기술을 배워 오라는 거였다. 당시 조선은 역법(달력)도 위도와 경도가 다른 중국 왕실의 것을 따라야 했다. 시간도 물시계가 있긴 했지만 사람이 읽어 종이나 북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오차와 실수가 반복됐고, 해시계는 흐린 날과 밤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성문을 여닫는 시간부터 왕의 종묘 행차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혼동이 적지 않았다.

장영실은 아라비아 서적 등을 탐구, 10여 년의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1434년 8월 5일, 자격루(自擊漏)를 완성했다. 일정한 양과 속도로 청동 원통에 흘러내린 물이 부표에 닿아 작은 쇠구슬을 굴리고, 그 쇠구슬이 굴러온 더 큰 쇠구슬을 굴리는 방식으로 힘을 증폭시켜 그 힘을 받은 지렛대가 종과 북을 치도록 한, 자동시보 시계였다. 그는 1438년의 옥루까지 약 7년간 수많은 천문 기기를 독자적으로 제작함으로써 조선의 경위도에 맞는 정밀한 시간을 정립했다.

관노 출신으로 무과 정3품 대호군에 오른 그는 하지만, 1442년 의문의 어가 부실제작 사건에 휘말려 파직됐고, 이후 유학과 사대의 역사에 의해 지워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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