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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수석ㆍ미니어처ㆍ애플컴퓨터… “나만의 인생을 전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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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수석ㆍ미니어처ㆍ애플컴퓨터… “나만의 인생을 전시해요”

입력
2019.08.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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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 개인 박물관 500곳 육박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주한 아프리카 대사관 등으로부터 기증 받은 여러 부족의 생활용품과 전통미술, 공예작품을 전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영월군 제공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주한 아프리카 대사관 등으로부터 기증 받은 여러 부족의 생활용품과 전통미술, 공예작품을 전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영월군 제공

지난 16일 오후 전남 순천시 조례동 순천세계수석박물관 입구. 높이 4m에 폭 2m인 거대한 종류석은 ‘수석의 세계’의 진입을 예고하는 압도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물관의 애국관 안으로 들어서자 태극기를 비롯한 무궁화, 한반도 지도 등의 모양을 한 수석들이 즐비했다. 박물관은 산수화, 동물관 종교, 식물 등 각 주제별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사군자 등 화려한 꽃과 십이지신 동물, 숫자 1부터 10까지 새겨진 진기한 돌로 가득하다. 순천만 갯벌과 ‘S자’ 수로, 토끼가 달에서 방아 찧는 모습, 연기를 내는 초가 굴뚝, 강태공이 낚시하는 모습 등이 담긴 희귀 수석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연 개인 박물관들이 전시문화의 새 영역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취미나 기호로 오랜 기간 동안 정성껏 모은 각종 물품들을 다양한 형태의 개인 박물관으로 탄생시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다. 미술관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개인 박물관이 전국에서 500곳 가까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박물관 관련 한 전문가는 “개인 박물관은 최근 수년 동안 해마다 20개 가량이 새로 생길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 개인 박물관은 공공 박물관이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전시 분야를 개척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순천세계수석박물 관장 박병선(69)씨의 시작도 소박했다. 40여 년 전 충북 충주 남한강에서 우연히 주운 돌이 예뻐 하나 둘 모은 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8,000여점이나 된다. 전국에서 진귀한 돌을 가장 많이 갖고 있어 ‘수석 기인’으로 불린다. 공직생활 27년간 받은 월급은 물론 건물과 땅까지 팔아 수집했다. 지금껏 투자 금액만 1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변에선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은 10억원을 호가한다. 박씨는 “고가를 주겠다며 판매하라는 유혹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한 점도 팔지 않고 모으기만 했다”고 했다. 사비를 털어 통일을 위한 수석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던 박씨는 좋은 돌을 수집하는 데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세계적인 수석박물관을 만들어 각국에서 찾아오는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명소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주한 아프리카 대사관 등으로부터 기증 받은 여러 부족의 생활용품과 전통미술 공예작품을 전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영월군 제공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주한 아프리카 대사관 등으로부터 기증 받은 여러 부족의 생활용품과 전통미술 공예작품을 전시해 관심을 받고 있다. 영월군 제공

강원 영월군은 ‘개인 박물관의 고을’로 불릴 정도다. 개인 박물관만 14곳이 있다.

이 중 영월군 수주면의 호야지리박물관에선 과거부터 한국령이었던 독도 관련 옛지도 등 지리 관련 희귀자료를 관람 할 수 있다. 이곳은 2007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지리전문박물관이다. 영월군 한반도면에 자리한 영월미디어기자 박물관에선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부터 최근 신문보도까지 한국의 언론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3곳으로 이뤄진 전시실에선 취재현장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착용했던 완장과 권위주의 정부 시절 언론검열에 의한 보도자료, 시대의 기록인 보도사진도 만날 수 있다. 또 국내 정기간행물 1,800여점과 타자기, 카메라 등 당시 기자들의 취재용품도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차와 다도를 테마로 한 호안다구박물관과 곤충, 악기, 민속, 아프리카 민속, 민화, 불화, 초등학교 등 각종 이색 박물관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개항장 일대는 개인 박물관 밀집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중구 신포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혜명단청박물관’은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장 기능보유자인 정성길 관장이 1980년부터 수집해온 자료들을 모아 2009년 4월 문을 열었다. 사찰이나 궁궐 안팎을 아름답게 꾸미고 목재 부식도 막는 단청을 주제로 한 박물관은 이곳이 처음이다.

혜명단청박물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재미난박물관’에서는 빛, 소리, 촉감 등 주제별 체험과 함께 기발한 장난감을 만나 볼 수 있고, 차이나타운 인근 세계미니어처소방차박물관은 20여개국의 1,200점에 이르는 소방차 모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2016년 6월에 문을 열었으며 실제로 움직이는 소방열차와 과거 유럽에서 사용한 소방차의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세종시에는 옛 조치원문화원 사무국장을 지내던 임명수 관장이 발품을 팔아 모은 유물을 전시해 1996년 8월 문을 연 연기향토박물관이 있다. 임 관장이 세종시 연서면 민가 세 채를 사들여 3개의 전시장(총 4,500여㎡)을 꾸린 이 곳엔 선사시대부터, 삼국,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 근대에 걸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유물은 총 6,500여점으로 불상은 물론, 무기, 오층석탑, 청자, 청동, 백자, 그림(민화), 나무로 만든 쥐덫 등 다양하다. 유물 외에도 민속놀이 기구와 지명 유래, 전설, 설화, 민속 등에 다양한 기록도 볼 수 있다. 임 관장은 “문화원이 폐지된 후 혼자 몇 년 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유물을 모아 당시 연기군에 향토박물관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잘 되지 않아 직접 박물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중구 애플 컴퓨터 박물관 내부 전경. 애플 컴퓨터 박물관 제공
부산 중구 애플 컴퓨터 박물관 내부 전경. 애플 컴퓨터 박물관 제공

부산에서는 애플 컴퓨터만 모은 ‘애플 컴퓨터 박물관’이 5년 전쯤 중구 중앙동에 문을 열어 지금은 명물로 자리잡았다. 컴퓨터 관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엄대흠(51)씨는 자신의 사무실 공간 3분의 2 가량에 1980년 대 만들어진 애플 컴퓨터를 비롯한 시대별 애플 컴퓨터와 주변기기, 아이팟 등 400점 가량을 전시해 두고 있다. 엄씨는 자신의 박물관을 찾는 학생이나 시민들에게 직접 관련 설명을 돕는다. 그는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 학생들이나 시민들이 기존 공공 박물관 등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산 중구 애플 컴퓨터 박물관을 찾은 학생들이 전시돼 있는 컴퓨터들을 둘러 보고 있다. 애플 컴퓨터 박물관 제공
부산 중구 애플 컴퓨터 박물관을 찾은 학생들이 전시돼 있는 컴퓨터들을 둘러 보고 있다. 애플 컴퓨터 박물관 제공
경북 문경시 가은읍 잉카마야박물관 '카미노 레알(Camino Real)'에 걸려 있는 인디언 전통모자 '유추'. 출처 잉카마야박물관 홈페이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잉카마야박물관 '카미노 레알(Camino Real)'에 걸려 있는 인디언 전통모자 '유추'. 출처 잉카마야박물관 홈페이지

기존의 틀을 벗어난 것은 개인 박물관의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경북 문경에는 우리나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중남미와 연결되는 비밀통로와 같은 박물관이 있다. 30년 가까이 중남미에서 외교관을 지낸 김홍락(67) 전 볼리비아 대사의 수집품이 가득한 잉카ㆍ마야박물관이다.

김 전 대사는 칠레, 멕시코, 페루, 파나마 등 중남미 8개국 대사관에서 28년간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잉카와 마야문명에 빠져들었다. 그는 부인 주미영(61)씨와 틈틈이 귀한 잉카ㆍ마야의 진품 유물을 모았고, 공직 생활 후 퇴직금 등 사재를 털어 문경시 가은읍 옛 문양초등학교에 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 이름도 고대 잉카제국의 옛길을 가리키는 ‘카미노 레알(Camino Real)’이다. ‘카미노 레알’에는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나마, 과테말라의 옛 토기류 1,000점을 포함해 인디오의 전통그림인 ‘티구아(Tigua)’, 볼리비아의 목기 ‘케루(Keru)’ 등 2,000점이 넘는 중남미 유물이 전시돼 있다.

최두선ㆍ김정혜ㆍ박은성ㆍ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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