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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감탄한 서원, ‘붕당 온상’ 딱지도 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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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감탄한 서원, ‘붕당 온상’ 딱지도 떼야죠”

입력
2019.07.25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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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 

박성진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은 아제르바이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본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홍보용으로 만든 서원 수첩을 받으려고 길게 줄선 외국인들을 꼽았다. “수첩만 봐도 BTS 기운이 난데요 허허”. 이한호 기자
박성진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사무국장은 아제르바이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본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홍보용으로 만든 서원 수첩을 받으려고 길게 줄선 외국인들을 꼽았다. “수첩만 봐도 BTS 기운이 난데요 허허”. 이한호 기자

“우리가 평가절하 했던 문화유산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했습니다. ‘이제 한 고비를 끝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죠.”

이달 초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참가했던 박성진(60)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이하 통합관리단) 사무국장은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2005년 한국서원연합회 상임이사를 시작으로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준비위원회(2011년), 등재추진단(2012년), 통합관리단(2015년) 등을 거치며 한국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서 만난 그는 “5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유네스코 자문 심사기구)의 등재 권고가 나왔지만 솔직히 총회 전까지 등재 확률을 7대 3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코모스 등재 권고안이 ‘9개 서원의 통합보존관리단이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았다. 연계 홍보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해 이 부분을 분명히 개선해야 한다’는 토를 달고 왔어요. 더구나 총회에서 21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 등재가 확정되는데 회원국 중에 중국이 있었죠. 중국 담당자가 ‘한국 서원의 독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하면 등재가 반려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원 9곳 중 하나인 안동 병산서원 전경. 경북도 제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원 9곳 중 하나인 안동 병산서원 전경. 경북도 제공

박 사무국장은 1994년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최초로 고증해낸 전통문화 전문가다. 1995년 문화행사 전문기업 예문관을 설립해 지금까지 과거시험, 정조대왕능 행차, 고종과 명성황후 가례, 고종황제 즉위식 등을 재현하고 있다. 박 사무국장이 서원과 인연을 맺은 건 성균관 기획실장, 성균관 유교교육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서원을 연구하면서부터다. 그는 “서원연합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서원총람’(2012)을 냈다. 거기 등록된 국내 서원이 673개”라고 말했다. “교과서에서 구한말 흥선대원군 활약으로 서원철폐를 배우잖아요. 서원이 붕당의 온상이라고. ‘우리나라 좀 이상하다, 이렇게 나라에서 나쁜 거라고 하는데 서원이 왜 그렇게 융성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도 향촌사회에서 서원을 복원하려는 근저가 뭘까, 우리가 대단한 역사를 스스로 비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2011년 추진위가 발족됐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등재를 신청해야 하는 원칙상 준비부터 녹록하지 않았다. 서원 9곳이 있는 광역시, 기초단체만 14곳. 지자체 예산출현, 사례조사, 연구비 지원을 조율하는 기관으로 통합관리단 발족된 배경이다. 2015년 등재신청서를 냈지만, 이듬해 신청서를 철회하는 불운도 맛봤다. 한 국가가 1년에 한 건만 신청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재수’를 감행하면 다른 지자체의 문화유산이 그만큼 등재신청 기회를 잃는다. 박 사무국장은 “수많은 사람, 수년에 걸친 노력이 꺾인 그 상실감은 말로 할 수 없다. 사람들 얼굴을 볼 수 없어 땅 파고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유산 심사에서 크게 두 가지를 보더구먼요. 인류의 공존 화합을 꾀한 보편성, 인류 문화를 발전하는데 기여한 독보적인 가치. 데크스 리뷰(desk review)라고 신청서의 논리, 역사와 건축구조만 심사하는 단계가 있어요. 그 다음 현지실사, 이 의견을 모아 세 차례 회의를 거치는데 조금이라도 가치가 떨어지면 다음 단계로 못 올라가요.”

박성진 한국의서원보존통합관리단 사무국장이 국내 서원 9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박성진 한국의서원보존통합관리단 사무국장이 국내 서원 9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조선시대 사설 엘리트 교육기관인 서원을 현재의 사립대학으로 비유하니 답이 보였다. 중국과의 차별성도 선명해졌다. 관료양성소로 운영된 중국과 달리 한국의 서원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었다. 중국 서원의 학문은 시대 따라 바뀌지만, 한국은 성리학으로 단일하다. 세계유산 신청서에도 한국의 서원의 등재 가치를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돼 지역적인 특색을 가지며 꽃피운 중요한 사례”로 게재했다.

‘이제 요령이 생겨 다시 신청하면 준비 잘 하시겠다’는 말에 곧바로 “두 번 못한다”고 답이 돌아온다. “등재 조건을 지킬 일이 남았습니다. 9개 서원이 함께 등재된 거라 통합보존, 관리하는 게 중요해요. 저희 법인을 연말까지 출자회사로 바꾸고 홍보 연계프로그램도 늘려야 합니다.”

박 국장에겐 개인적인 바람이 더 있다. 서원 부문에 대한 교과서 해설을 바꾸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구한말 서원이 당쟁의 소굴처럼 나와요. 그래서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했다고요. 이런 시설이 왜 세계유산등재됐냐고 학생이 물으면 교사가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서원은 파폐된 향교를 대신한 엘리트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후기에 설립 정신을 잃고 당쟁이나 붕당정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식 전수와 인격도야 기관으로 긍정적 기능이 지대했고, 그 점을 높이 사 대원군 시절에도 살아남았습니다. 이코모스 실사 담당들이 어떻게 이런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엘리트 양성 사립학교가 있을 수 있나 놀라워했죠. 이 부분의 개선이 시급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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