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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현대미술관장 “미술관은 전시 공간 넘어 사회적 이슈의 공론장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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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현대미술관장 “미술관은 전시 공간 넘어 사회적 이슈의 공론장 돼야”

입력
2019.07.0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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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학 권위자인 즈덴카 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박물관학 권위자인 즈덴카 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미술관이 단순히 합의된 가치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남아선 안 돼요. 여러 지역과 계층, 사회적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간섭과 비판의 공간이 돼야 하죠.”

미술관이 좀처럼 사회 이슈의 공론장으로 역할 하지 못하고 관람객 역시 이를 기대하지 않는 한국의 분위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한마디다. 즈덴카 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장의 소신이다. 박물관학의 권위자인 그는 미술관의 가능성을 한껏 확대하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미술관은 어떤 공간인가. 그저 관람객의 감각을 충족하는 1차적 공간일까, 아니면 예술계 너머 사회 변화까지 촉발할 수 있는 다원적 공간일까. 바도비나츠 관장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슬로베니아가 민주주의 체제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미술관이 전시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체험한 인물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 5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에 참석하려 방한한 바도비나츠 관장을 지난달 27일 만났다.

슬로베니아의 정치체제 변혁에 맞물려 미술계 역시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된 중심에 그가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슬로베니아는 한국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와 비슷한 시기인 1980년대 말 사회주의 붕괴를 경험했다. 정치ㆍ사회적 과도기였던 1993년 그는 관장직에 올랐고,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가 관장으로 취임한 직후 가장 먼저 실행한 건 젊은 작가들을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그는 “미술관은 이전까지 젊은 세대에게 문을 닫은 상태였고, 미술사가들도 개념주의 미술 등 떠오르는 경향성을 외면했다”며 “하지만 젊은 작가를 다양하게 발굴하고 이들의 생각을 미술관에서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값나가는’ 작가들 위주로 작동하는 미술시장 논리에 젖지 않고 일반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주목하지 않는 여러 층위의 작가들을 포섭한다는 철학을 그는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바도비나츠 관장은 미술관의 민주화에도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미술관을 다양한 계층과 수평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미술관이 합의나 안정 같은 가치만 좇으면 안 된다”며 “여러 간섭과 반감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를 그저 반복해 보여주는 데서 벗어나서 대안 서사를 만들고 대중이 들어와 이 서사를 적극적으로 바꾸거나 추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즈덴카 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이 ‘논쟁의 공론장’이 돼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배우한 기자
즈덴카 바도비나츠 슬로베니아 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이 ‘논쟁의 공론장’이 돼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배우한 기자

슬로베니아 미술계에서도 사회주의적 유산을 배제하려는 우익과 그래도 역사적 유산은 전승하려는 좌익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다. 바도비나츠 관장은 이를 둘러싼 의제 역시 미술관으로 꾸준히 옮겨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슬로베니아의 좌익 세력인) 해방전선은 독일과 이탈리아 횡포 등에 맞서면서 노래나 연극, 조각, 프린팅 같은 예술적 유산을 다수 남겼다”며 “보수적 비평가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나는 현대미술관에서 이를 정면으로 다뤘다”고 설명했다. 류블랴나 현대미술관을 논쟁과 대화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전 유럽의 이슈인 이민ㆍ난민 문제나 극우 정치인들의 집권, 포퓰리즘 강화 등의 주제도 전시로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과거 정권이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문화ㆍ예술계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한국 예술계에 그는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바도비나츠 관장은 “민주 정부가 구체적인 지원 배제 명단까지 작성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라면서 “미술계가 외부의 목소리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남용돼 조직을 흔들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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