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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괴물’ 쓴 것 후회 안 해… 오히려 늦어서 미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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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괴물’ 쓴 것 후회 안 해… 오히려 늦어서 미안한 마음”

입력
2019.06.25 17:41
수정
2019.06.25 20:2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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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영미 시인이 소회를 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최영미 시인이 소회를 말하고 있다. 홍윤기 인턴기자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여고생들이 처음 들고 일어나서 시작됐어요. 그러니, 오히려 시를 쓰면서도 젊은 여성, 문단의 여성들에게 미안했어요. 내가 너무 늦게 쓴 것 아닌가 하고요. 그들 덕에 시를 발표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최영미(58) 시인은 2017년 문예지에 문단의 원로이자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거론돼 왔던 고은 시인의 성폭력 사실을 담은 시 ‘괴물’(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을 발표했다. 문화예술계 미투(#MeToo)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이후 고은 시인으로부터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최 시인은 “’괴물’을 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출간을 맞아 2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새 시집에는 ‘괴물’을 비롯해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간병하고 연애를 추억하는 등 시인의 일상 속 사색을 담은 시 48편이 실렸다. 최 시인은 “원래대로라면 지난해 나와야 했지만 알다시피 소송 등 경황이 없어 내지 못했다”며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할까 했지만, 대법원까지 갈 경우 재판 끝날 때까지 몇 년이 걸릴 테니 무엇이라도 하라고 변호사들이 권했고, 글쓰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다시금 책을 내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최 시인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최영미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최영미 신작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미투 여파로 새 시집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시집은 최 시인이 지난 4월 설립한 이미출판사에서 나왔다. 최 시인은 “시집을 엮기 위해 연이 있던 출판사에 연락을 했지만 나와 싸우고 있는 원로 시인과 친분이 두터운 곳이라 곤란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며 “1심 승소 판결이 나온 뒤에 직접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집에는 ‘괴물’과 ‘등단 소감’ 등 미투와 관련된 시가 7편 실렸다. ‘등단 소감’은 최 시인이 1993년 등단 직후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전신) 회보에 발표한 시다. 최 시인은 이날 간담회에서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라고 쓴 ‘등단 소감’을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이 2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고은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최영미 시인이 2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이 끝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 시인은 “가만히 있으면 엉덩이를 만지는 등 등단 직후 문단 술자리에 나가서 느낀 모멸감을 담은 시”라며 “당시에도 시집에 넣고 싶었지만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싣지 못했다 이번에 넣게 되었다”고 말했다. ‘괴물’ 발표 직후 왜 그 동안 침묵해오다 이제서야 말하느냐는 저간의 오해와 비판에 대한 최 시인 나름대로의 해명인 셈이다. ‘괴물’을 구상한 시점 역시 할리우드에서 미투가 촉발(2017년 10월)되기 전이었고, 서지현 검사의 미투(2018년 1월)보다 앞선 시기라고 했다. 최 시인은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투 고발 이후 생겨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문단 권력을 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에요. 평론가이자 편집위원이자 교수이자 심사위원인 사람들이요. 아마 그들이 불편했으니 (문단 내 성폭력이) 지금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겠죠. 운동이 힘을 받으려면 구체적이어야 해요. 삶에 기반을 둬야 해요. ‘괴물’을 쓴 것은 후회하진 않습니다. 이것이 제 운명이겠죠.”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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