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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YG의 실패

입력
2019.06.21 18:00
수정
2019.06.21 18: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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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한국일보 자료사진
빅뱅.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국 유럽 언론이 K팝을 언급할 때 흔히 쓰는 단어가 ‘공장(Factory)’이다. K팝 기획사들이 엄격한 훈련과 통제로 가수를 양성하는 과정이 표준화ᆞ규격화를 내세운 공장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서구에서도 신인 가수가 시장에 진입할 때 ‘상품화’를 피할 수 없다. 음반 레이블은 자신들과 계약한 신예 가수의 개성을 시장 사정에 맞게 다듬고, 대중 선호도를 반영한 노래를 발표한다. 하지만 한국 기획사처럼 ‘공산품’에 가까운 아이돌 그룹을 내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 3대 K팝 기획사(SMㆍYGㆍJYP엔터테인먼트) 오디션에 응모하는 가수 지망생만 매년 수천 명이다. 14세 이하 소년 소녀가 대부분이다. 오디션의 좁은 문을 통과하면 5년가량의 혹독한 수련 기간이 이어진다. 춤과 노래를 배우고, 말하는 방식과 화장법까지 습득한다. 기획사는 면밀한 계획과 관리로 잘 다듬은 ‘기획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아이돌 그룹에 따라 미세한 차이는 있으나 그룹 중앙을 차지하는 ‘센터’ 담당, 용모 담당 등 멤버별로 역할을 분담하는 점도 획일화된 공장 시스템이 낳은 결과다.

□ K팝 가수들은 사건사고에서 해외 가수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사회ㆍ문화적 변수가 크지만 마약 복용의 경우도 해외 가수보다 적다. 기획사들이 사생활까지 간섭할 정도로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니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가능성은 낮다. YG는 달랐다. 3대 기획사 중 관리가 많이 헐거운 회사로 알려졌다. 가수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사내 문화가 경쟁사들과 딴판이라 종종 화젯거리가 됐고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소속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과 탑, 그룹 아이콘의 비아이 등이 잇달아 마약에 연루돼 ‘YG의 자율’은 실패로 끝나게 됐다.

□ 최근 개봉한 영화 ‘로켓맨’에 따르면 영국의 팝스타 엘턴 존은 약물ᆞ알코올중독 등 갖은 중독에 시달리다 1991년 재활을 통해 새 사람이 됐다(쇼핑중독만은 끊지 못했다고 한다). 노래로 막대한 부를 쌓고 만인의 사랑을 받았던 존을 괴롭힌 건 실연과 외로움이었다. 10대 중반부터 또래들과 단절된 채 수도승처럼 춤과 노래를 배워 세상에 나오는 K팝 가수들이라면 외로움은 더욱 불가피하다. 기획사의 관리가 없으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YG의 실패는 넓게 보면 K팝의 실패일지 모른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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