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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는 의사 모독” 반발… “동시ㆍ대리 수술 드러날라” 우려도

입력
2019.06.24 04:40
수정
2019.06.24 09: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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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9> 수술실 CCTV 설치 반대하는 의사들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지난달 17일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의료사고 피해자ㆍ가족ㆍ유족,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이 전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발의 하루 만에 철회된 데 디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서울 국회 정문 앞에서 의료사고 피해자ㆍ가족ㆍ유족,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이 전날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이 발의 하루 만에 철회된 데 디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가 있었으면 아내를 수술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하다가 아내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A(61)씨는 아내가 사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A씨의 아내는 지난해 5월 경기도 한 대학부속병원에서 위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복강경 수술을 받은 후 급격히 상태가 악화돼 사망했다. A씨는 의료사고를 의심했지만 병원 측은 부인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 상 소송을 하지도 못했다. 그는 “나처럼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려면 수술실에 반드시 CCTV를 설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 B씨는 최근 모임에 나갔다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CCTV 이야기를 들었다. 모임에 참석한 원장 대부분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것은 의사에 대한 모독이자 인권침해”라며 분개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인 취급 받느니 차라리 달자”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지만 이내 묻혔다.

◇“수술실이 편의점이냐” 의사들 반발

국회가 수술실 CCTV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안’(일명 권대희법)을 발의하는 등 사회적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의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되 촬영은 의료진과 환자의 동의가 있을 경우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지난달 14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지만 의사 단체의 항의로 공동발의에 서명했던 의원들이 다수 입장을 바꾸며 하루 만에 철회됐다가 같은 달 21일 다른 의원들의 동의를 얻은 안 의원이 다시 발의했다. 수술 중 과다출혈로 위험한데도 의료진이 방치해 사망한 사실을 CCTV 화면을 보고 알게 된 권대희씨 유가족이 이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며 올린 청와대 청원은 현재까지 1만3,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고 권대희씨가 과다출혈로 사망하기 전 수술실에서 방치된 CCTV 모습.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고 권대희씨가 과다출혈로 사망하기 전 수술실에서 방치된 CCTV 모습.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그러나 의사들은 수술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치료방법인데, CCTV 설치는 수술을 하는 의사들을 잠재적 의료사고의 가해자로 간주해 감시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의사 다수는 “수술실을 백화점 주차장이나 편의점처럼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로 보고 감시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CCTV로 촬영된 영상의 보안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형외과 전문의 C씨는 “개인이 운영하는 성형외과 의원의 경우 현실적으로 CCTV 관리 전담 직원을 고용하기 힘들다”며 “보안이 잘 안 되어 얼굴은 물론 가슴 등 각종 성형이 이뤄지는 수술장면이 해킹이나 복제 등을 통해 자칫 불법 유출되면 어쩌느냐”고 우려했다. 그는 “CCTV 설치가 의무화된다면 적어도 관리, 보안과 관련된 비용은 건강보험 수가로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술 동시에 2, 3개 하는 현실 드러날까 속앓이

일부 대형병원이나 성형외과에서 집도의가 ‘메뚜기’처럼 수술실을 옮겨 다니며 수술을 하는 현실이 CCTV에 고스란히 담길까 하는 우려도 크다. 익명을 요구한 ‘빅5 병원’의 한 교수는 “대형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들은 사실 동시에 2, 3개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잦다”며 “집도의가 수술을 하고 옆방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CCTV에 남을 텐데, 만약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추궁 당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일반적으로 마취나 수술부위 개복 등에 드는 시간은 약 30분에서 1시간 정도이다. 이 시간에 집도의는 옆방에서 이미 수술준비가 완료된 환자의 수술을 집도한다. 혹시나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집도의가 자리를 비웠다고 책임을 추궁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PA(Physician Assistant)의 수술행위도 드러날 수 있다. PA는 간호사 신분이기 때문에 의사처럼 수술 행위를 할 수 없지만 수술이 밀려 있는 대형병원에서 수술 부위 절개, 봉합 등을 맡기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 의료인력을 보충해 그동안 음성적으로 이뤄졌던 동시 수술이나 PA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므로 병원들이 CCTV 설치를 망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CCTV 설치 찬성하는 의사도 있어

극소수이긴 하지만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의사도 있다. 충남 천안시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는 김선웅 성형외과 전문의는 10년 전 개원을 했을 때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김 전문의는 “CCTV 설치가 의무화되면 대리수술을 시키거나 마취된 환자를 성희롱하고 성폭력을 가한 의사를 적발해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최초로 지난해 10월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 전경. 안성병원 제공
전국 최초로 지난해 10월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 전경. 안성병원 제공

전국 최초로 지난해 10월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임승관 병원장은 “환자 동의를 얻어 수술을 할 때만 CCTV 촬영을 하고 수술이 끝난 후에는 종료한다”며 “의사는 대리수술 등 불법 의료행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환자는 의사를 믿고 수술을 받을 수 있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시 촬영이 아니라 수술을 할 때만 CCTV 촬영이 이뤄져 의료진 인권침해 소지를 줄였다는 것이다. 안성병원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 지난해 10월~올 5월 말까지 이뤄진 수술은 모두 1,274건으로, 이중 환자 동의를 얻어 CCTV 촬영이 이뤄진 수술은 858건(67%)이다.

환자ㆍ시민단체들은 하루빨리 CCTV설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수술실에 CCTV가 설치된다면 유령수술과 환자인권 침해행위는 대부분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언 시민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CCTV는 수술실에서 무장해제된 환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 의사, 환자, 여성, 인권 단체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CCTV 설치와 함께 무면허 불법의료행위 근절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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