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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기업 사환서 인니 국회의원 된 함다니 “열정적인 한인 기업인 못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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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기업 사환서 인니 국회의원 된 함다니 “열정적인 한인 기업인 못 봤다면…”

입력
2019.06.17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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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국회(DPR)의 함다니 의원이 자카르타 자택에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대형 한글 연습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집은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국회(DPR)의 함다니 의원이 자카르타 자택에서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대형 한글 연습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의 집은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소년은 열두 살 때부터 한인 회사 사환으로 일했다. 1976년 합판 공장을 만들려고 밀림을 뚫고 들어온 한국인들이 소년의 집을 임시 사무실로 빌리면서 연을 맺었다. 심부름과 허드렛일을 곧잘 했다. 합판 선적도 도왔다. 그때마다 몇천원씩 받은 팁은 학비에 보탰다. 가끔 꿀밤에 “골통” 소리도 들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오지라 불리던 소년의 마을 주민들은 농사ㆍ낚시ㆍ장사로 먹고살았다. 소년의 꿈도 마을 안에 머물렀다.

어느 날 연휴임에도 한국인 임원이 원목을 강물에 띄워 끄는 배를 직접 몰았다. 임원은 배 안에서 밥도 손수 해서 먹었다. 윗사람은 지시하고 뒷짐만 지는 줄 알았던 소년은 며칠 동행하며 그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과 현지 직원 간 갈등이 생기면 소년은 득달같이 상부에 보고했다. 어른들이 와서 상황을 해결했다. 중재의 기술을 어렴풋이 깨우쳤다. 보람이 쌓였다. 소년은 한국과 한국인을 몸으로 배웠다. “아부지”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2019년 현재 소년은 인도네시아 국회(DPR)의 의원이다. 의정 활동만 12년 6개월째다. 일개 사환에서 일국의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칼리만탄(보르네오)섬의 중부칼리만탄주(州) 팡칼란분 시골에서 나고 자란 함다니(55) 의원은 “43년 전 한인 기업 코린도를 만나고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아직도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가끔 들른다는 코린도그룹 건물에서 최근 함다니 의원을 만났다. 그는 한국-인도네시아 양국 교류 46년 역사의 아름다운 산증인이다.

함다니 의원은 “한 개 한 개 가르침을 받은 게 아니라, 최상의 합판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는 한국인들을 보고 느끼면서 참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오지 중에 오지 마을에 공장이 세워지고, 일자리가 생기고, 학교가 들어서는 모습은 그 자체가 역동적인 스승이었다. 시골에서 만든 제품이 미국으로, 유럽으로 수출되는 게 어린 나이에도 제 일처럼 자랑스러웠다. 그는 “한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들을 볼 수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함다니 의원은 코린도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학비를 지원받았다.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뒤에도 코린도에서 근무하며 대학 공부를 마쳤다. 이어 그는 외국인들의 비자 수속이나 회사 설립을 돕는 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독립했다. 1998년 수하르토 군사 독재 정권이 무너지자 전공(정치학)을 살려 정치에 몸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국회(DPR)의 함다니 의원이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코린도그룹을 방문해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얘기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국회(DPR)의 함다니 의원이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코린도그룹을 방문해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얘기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2004년 34개 주(州)마다 4명씩 대표를 뽑는 첫 직선제 지역대표협의회(DPD) 의원 선거에 출신 주(중부칼리만탄) 후보로 출마해 5등을 했다. DPD는 ‘상원’ 격이다. 2007년 의원 한 명이 사망하면서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어 자력으로 한 차례 DPD 의원에 당선된 뒤, 2014년 ‘하원’ 격인 DPR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그가 속한 나스뎀당은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합 정당 중 하나다. 올해 선거에선 아쉽게 낙마해 10월이면 의원 임기를 마친다.

그는 주한인도네시아 대사 등의 소임을 맡아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초대받아 간 함다니 의원 집엔 그가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거실엔 ‘여소야대’ ‘국회의원’ 등 우리말을 직접 한글로 쓴 대형 연습장이 군사작전 차트마냥 걸려있었다.

“수교 46년째인 양국은 형제나 다름없다”는 게 함다니 의원 생각이다. 특히 그는 “재선에 성공한 조코위 대통령이 가장 친하게 여기는 외국 정상이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에 비하면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에서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다는 한국 기업들의 지적을 받아들여 국회 차원에서 계속 협의하고 있다”라며 “새로 꾸려지는 조코위 정부가 투자 레드카펫(극진한 환영과 영접)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덕에 국회의원이 됐다”고 강조하는 함다니 의원에게 ‘몸으로 배운’ 한국인의 단점은 뭔지 슬쩍 물었다. “나 자신은 괜찮았다”는 단서를 단 뒤 이렇게 답했다. “열정이 가끔 소통 부재로 이어집니다. 직원들을 심하게 다그치죠. 불같이 화내고 욕합니다.” 더 묻지 않았고, 더 묻지 못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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