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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윤주 “정치 무관심보다 혐오가 더 높은 장벽”

입력
2019.06.17 04:40
수정
2019.06.23 11: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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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젊은 정치] <3> 독점 정치의 장벽

릴레이 인터뷰 <6> 차윤주 6ㆍ13 지방선거 마포구의원 후보

※ ‘스타트업! 젊은 정치’는 한국일보 창간 65년을 맞아 청년과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의도 풍토를 집중조명하고,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 중심의 국회를 바로 보기 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전체 시리즈는 한국일보 홈페이지(www.hankookilbo.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차윤주 전 후보는 "눈에 보이는 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동네 정치판에서는 청년 이슈가 외면되기 십상이더라"며 "더 많은 청년들이 작은 단위의 정치 권력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라고 강조했다.
차윤주 전 후보는 "눈에 보이는 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동네 정치판에서는 청년 이슈가 외면되기 십상이더라"며 "더 많은 청년들이 작은 단위의 정치 권력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라고 강조했다.

“구의원 출마? 아니 왜 그런 나쁜 짓을 하려고 해. 뭘 나쁜 사람이 아니야, 거기 가면 다 똑같아져.” 경비 아저씨의 질문이 명치를 때렸다. 젊은 아파트 동대표로 동분서주하던 차윤주씨를 늘 믿고 격려해 주던 경비원의 예상치 못한 말이라 더 아팠다. 정치부, 사회부에서 잔뼈가 굵은 12년 차 기자인 차씨는 지난해 퇴사한 뒤 6ㆍ13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마포구의원에 도전했다. 결과는 300표 차 낙선. 그가 이 노정에서 직접 확인한 우리 정치와 선거의 민낯은 어땠을까. 그 첫 장면, 경비아저씨의 만류부터 심상치 않다.

석사 과정을 밟는 중인 그를 최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에서 만났다. 가장 낮은 단위의 동네 정치판부터 엉망진창이라, 내 눈앞의 작은 권력들이 너무 문제적이라, 이토록 젊은이들이 외면해선 안 될 상황이라 “일단 도전해 봤다”는 그가 통과한 고비들이 줄줄이 펼쳐졌다. 차씨는 “다시는 하지 말자고 생각할 정도로 힘겹기도 했지만, 지방 단위의 생활정치부터 더 많은 청년이 도전해야 할 상황이라는 건 자명했다”고 진단했다.

이하 일문일답.

-출마 배경은.

“원래 아파트 동대표를 하며 엄청나게 고생했다. 서울시청에 출입할 때 김부선씨가 난방 비리 이야기를 하러 기자실에 온 적이 있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웃들은 혼자 생활의 권력자들과 싸우는데 나는 뭘 하나 생각했다. 다음달 우리 아파트 동대표 선거 공고가 떴길래 호기심에 출마했다가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다. 원래 회의를 장악하던 60대, 70대 분들이 마음대로 권력을 누리다 내가 와서 눈을 부릅뜨니 미워하고 소송도 많이 걸었다. 2017년 가을까지 얘기다. 작은 정치 단위 문제가 심각하다 생각해 이후 시작된 ‘구의원출마프로젝트’에도 관심을 뒀다. 재미있게 해보고 주로 기록자, 기획자 역할만 할 셈이었는데, 기자는 구의원 겸직 금지 직종이더라. 후보 등록 직전에 퇴사했다.”

-주변 반응은.

“쟤는 뭐야, 저런 애였어, 저런 욕심 있는 사람이었어?(웃음) 사실 기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했다. 정치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의원 시절) 마크맨을 오래 했고, 촛불집회 정국 때는 사건 팀 소속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의원직, 대선, 대통령, 탄핵을 거치는 과정을 쭉 본 건데 기자로서 여러 상처도 있었다.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우선 선거 행정부터 힘겨웠다. 허례허식도 많고 21세기가 맞나 싶은 절차가 많았다. 전산화할 법도 한데 자신과 관련한 증명서만 종일 떼러 돌아다녀야 서류 구비가 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실무적 문제부터 그랬다. 기성 정당 구조 밖에서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겠더라. 두 번 할 생각은 안 들 것 같았다.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겠다 싶어 구의원 출마 가이드북을 쓰곤 있다. 개인 출마자들은 완주 자체가 쉽지 않다. 구의원 프로젝트도 처음에는 참여자가 10명이었다가 중간중간 나가 떨어지면서 4명만 남았고, 그중 한 분은 오로지 책임감만으로 힘겹게 완주했다.”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정치적 무관심보다 혐오가 훨씬 더 무섭고 아프더라. 출마를 알렸을 때 주변 반응도 그랬지만, 현장에서는 훨씬 더 날것의 반응이 왔다. 또래 남자가 얼굴에 침을 뱉고 도망가기도 했다. 동 대표할 때 친해진 경비반장님은 출마한다고 하니, 눈빛부터 달라지며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말리시더라. 사실 사적 욕망을 채우려 한 도전은 아니었다. 다른 할 일도 있고, 연봉도 원래 더 많이 받던 상황이고. 그런데도 뭔가 좋은 사회나 공동체에 대한 열망으로 출마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혐오) 정서를 극복하는 게 힘들었다.

워낙 동네 유지들이 자기 동네에서 권세를 유지하고 과잉 권력을 누리는 모습만 봐왔던 유권자들 반응이 그렇게 나왔다. 좋은 의원도 더러 있겠지만 지역구 의원에서부터 공천 구조를 통해 쭉쭉 내려오는 이들이, 의원의 손발과 수족이 될 뿐 주민들에게 너무 큰 실망을 안겼던 거다. 이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더 도전조차 안 하는 지금, 희망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기성 정당 내 구조들도 많이 봤나.

“동네 정치판에 들어오니, 좋은 말로는 ‘아 이게 이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구나’하는 게 보이더라. 지역구 의원은 자기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위주로 지역선거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지역구 의원이나 후보들은 여성 조직, 각종 직능단체 조직에서 모을 수 있는 자기 표를 모아 의원을 위해 뛰고. 구조가 이러니 더욱 동네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 즉 눈에 보이는 표만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상황이었다. 1, 2년 단위로 이사 다니는 청년들은 표로 보지도 않는다. 제도권 정치에서는 그 동네에 오래 산 사람, 상인, 아파트 주민 등 보이는 표만 의식하게 되고, 그게 지역의회, 국회로 다 이어지더라.”

-젊은 후보로서 겪은 바는.

“애도 안 낳아 본 여자가 결혼도 안 해 본 여자가, 나와서 뭘 하려고 하냐, 저 젊은 게 정치물만 들어서 시집은 다 갔네,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사실 어리긴 뭐가 어린가. 사회생활한 지 10년이 넘었고, 프랑스 대통령과도 몇 살 차이 안 나는데, 그런 능력이나 이력과 무관하게 후보를 단순히 성별과 나이로 판단하는 경향이 아직 심하더라. 또 선거에서 표를 주는 기준이 능력보다는 인사성, 자기한테 얼마나 잘해 줄지 여부라는 것도 알았다.”

-그 와중에 선전했다.

“득표율이 18.5%나 나왔는데 기존 정치판에 계신 분들은 깜짝 놀랐다. 눈에 보이는 표만 가지고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결론이었던 거다. ‘아니 쟤가 우리 동네에서 뭘 했어, 최소한 관변단체 몇 개는 거쳐서 이름 올리고 스펙 쌓았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이 다른 기준으로 저를 선택하는 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거다.”

-재도전은 없다고 선을 그었는데.

“나름 선전은 했지만, 해 보니 정말 힘든 일이더라. 정치를 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열정, 책임감, 균형감이라고 보면 그중 열정은 대의에 대한 헌신에 해당한다. 열정 부분이 지금으로선 고갈됐다. 정당에서도 보통 사람을 키우기보다는 선거 때 꽃가마 태워서, 비례대표 주고 데려오는 게 이런 이유 같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다 알고 나면 실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선 꽃가마를 태워서 비례대표를 주고, 그 다음에는 이미 누린 권력의 에너지로 버티는 게 아닌가. 그래서 우선 다신 할 생각이 없고, 대신 누가 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생각은 있다. (웃음)”

-권유하려는 까닭은.

“국회도 국회지만 지방의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중장년층만 그런 지방의회의 작은 권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됐다. 또 고령 지방 의원들은 청년은 그냥 조금 살다가 이사 가거나, 떠날 존재라 의식할 필요도 없고 대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냥 상징적으로만 내세울 뿐이지 실제로 선거운동이 돌아가는 방식을 보면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산, 목소리 큰 사람들 위주다. 청년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는 식이다. 그래서 더 많은 젊은 사람이 도전해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혐오나 무관심 극복에 필요하다 느낀 것은.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들어버릇해야 클래식을 즐기거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않나. 마찬가지 같다. 어려서부터 민주시민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권리와 책임이 있는지 교육을 해야 한다. 지금은 만 18세에 선거권 주는 것조차 교실과 학교가 정치화된다는 반대 논리가 횡행하는데 그래선 안 된다. 정치도 즐거울 수 있고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어렸을 때부터 알려주고. 특정 정파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민주시민으로서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 문화자본처럼 정치자본을 모두가 가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평등해야 되고 자유로워야 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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