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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댄디 호스’란 이름의 자전거(6.12)

입력
2019.06.1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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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대의 나무자전거 '댄디 호스'. 드라이스 버전의 복제품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1820년대의 나무자전거 '댄디 호스'. 드라이스 버전의 복제품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만하임(Mannheim)의 산림 공무원 카를 드라이스(karl Drais, 1785~1851)가 1817년 6월 12일, 나무 자전거 ‘드라이지네(draisine)’를 타고 집 밖에 등장했다. 그는 집에서 7km 남짓 떨어진 도심 여관까지 왕복 14km를 드라이지네로 한 시간 남짓 만에 주파했다. 체리목 같은 하드우드로 프레임과 바퀴를 다듬어 만든 그의 자전거는 패들 없이 땅에 디딘 두 발로 걷거나 달려 이동하는 형태였다. 물론 방향을 조절하는 핸들은 있었다. 주민들은 말(horse)도 없이 그렇게 빨리 달리는 교통 수단에 열광했다.

그 무렵 자전거가 등장하게 된 데는, 지구적 재앙이었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1812~15)과 화산재로 인한 여름의 실종(1816), 대규모 흉작에 따른 식량난과 말 사료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는 그럴싸한 설이 있다. 나폴레옹 전쟁도 식량난과 말 부족 사태의 원인 중 하나였다.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드라이스의 자전거 드라이지네는 유럽과 북미에까지 알려져 유사한 형태의 이동ㆍ수송 수단이 꽤나 널리 쓰였다고 한다. 당시 시민들은 드라이지네를 ‘댄디 호스(Dandy Horse)’ 즉, 여물을 주지 않아도 달리는 멋쟁이 말이라 불렀다.

문제는 당시 도로 사정이었다. 비포장길은 마차 바퀴와 말 발굽에 파인 곳이 많아, 충격 완화장치 없는 나무 재질의 안장에 몸을 싣는 건 다급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그리 권장할 만한 게 아니었다. 급기야 드라이지네가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다니면서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자 각국은 잇달아 드라이지네를 규제했다.

하지만 법이 문명의 편리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년 뒤인 1839년 스코틀랜드의 발명가 커크패트릭 맥밀런은 패들과 크랭크로 구동하는 자전거를 개발했고, 1880년대 무렵에는 지금 자전거와 원리적으로 똑같은, 체인 구동형 자전거가 등장했다. 대한제국의 외국인 선교사와 서재필 윤치호 등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개화파 정치인들이 자전거를 들여온 것도 그 무렵이던 19세기 말이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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