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IMF 구제금융 체제 하의 그리스 정부가 국영방송 ERT를 폐쇄했다. 사진은 1주년인 2013년 런던 시민들의 항의시위 장면. AP 연합뉴스

2012년 6월 11일, 그리스 보수연립정부가 국영방송 ‘ERT’를 전격 폐쇄했다. 당일 ERT 모든 채널의 공식 방송이 종료됐고 임직원 2,600여명이 직장을 잃었다.

국가부채 위기로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시스템에 기대야 했던 그리스는 국제채권단의 재정 긴축(재정 흑자) 요구에 쫓기던 참이었다. 대규모 연금 삭감과 연금 수령연령 상향 조정, 복지예산 감축과 공무원 등 공공 부문 축소가 끝간 데 없이 이어졌고, 더 험한 조치가 대기 중이라는 식의 흉흉한 소문들이 난무하던 때였다. 그 와중에 IMF는 그리스의 공공개혁 속도가 더디다며 공개 비난했다. 중도우파 신민주당(신민당) 주도의 보수연립정부가 국영방송을 폐쇄하는 난폭한 결정을 내리기 불과 닷새 전이었다.

보수정부는 ERT의 폐쇄 명분으로 ‘비대하고 방만한 경영과 탐탁지 않은 시청률의 비효율’을 앞세운 뒤 “더 작고 효율적인 대체 방송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그 무렵 ERT가 전기요금에 합산해 걷어들인 수신료 수입은 한해 약 3억2,800만유로로, 아일랜드 같은 작은 EU국가의 한해 예산을 넘어서는 규모이긴 했다.

그리스 국가 부도의 원인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채나 복지 포퓰리즘이 아니라 만연한 부패에 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어가던 때였다. 부패 핵심은 좌ᆞ우파를 막론한 권력과 그에 결탁한 자본이었다. 그리고 권력ㆍ자본에 대한 ERT의 언론으로서의 감시 기능에 만족하는 그리스 시민은 드물었고, 채용 비리와 인사 부정도 만연해 있었다. 그래서, 내전(1944~49)과 군사정권(1967~74)을 겪고 우파-좌파-연립정부 출범의 혼란과 민주화를 겪으면서도 건재했던 그리스 최대 국영방송의 전격적 폐쇄 충격이 그리스 다수 시민들에겐, 외신들이 전한 것만큼 크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물가 폭등과 세금 인상, 살인적 실업률 등으로 다들 힘겨울 때이기도 했지만, 방송에 쌓인 불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ERT 방송인들은 유럽방송연맹의 위성과 온라인, 지역 저용량 송출소 장비와 아날로그 시스템을 활용해 제한적이나마 방송을 계속했고, 정부도 500여명 규모의 소규모 대체방송(NEPIT)을 8월부터 시작했다.

ERT는 2015년 총선서 승리한 시리자 급진좌파연합의 공약대로 만 2년 만인 2015년 6월 11일 부활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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