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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완벽한 남편이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요”

입력
2019.06.10 04:40
수정
2019.06.10 09:58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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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기자

저는 결혼한 지 11년된 주부입니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낸 여자와 지금까지 몰래 관계를 해오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시어머니도 아시게 됐어요. 가족들이 나서서 둘을 떼어내려 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그 여자와 연락하고, 심지어 해외 여행도 다녀옵니다. 저한테 걸려도 남편은 너무나 떳떳합니다. 해외에서 따로 만나긴 했지만 가족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말입니다.

저희에게는 초등학생 자녀가 둘 있습니다. 아이가 발달이 늦어 마음 고생이 컸습니다. 그동안 저는 아이를 돌보느라 한 치의 여유도 없었어요. 남편은 제가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의 감정은 어루만져주지 않았다면서 그 여자를 만나면 늘 자신을 대단하게 인정해준다고 말하더군요. 남편이 그녀를 만나는 이유가 제 탓이라며 말이에요. 시어머니도 아들에게 외도를 심하게 질책하시면서도 저에게도 칭찬을 많이 해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세요.

저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의 어머니는 육아보다는 당신의 삶을 더 중시했어요. 그래서 어머니 관심을 끌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저에 비해 남편은 독립적이에요. 그리고 너무나 완벽합니다. 직장, 가정, 공부 어느 하나 목표한 것을 이루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발달이 늦은 아이만 빼놓고는요. 늘 자신의 완벽함을 내세우면서 자기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말합니다. 지난 10년간 남편의 계획에 열심히 따르려고 애썼어요. 돈은 자기가 벌 테니 육아에 전념하라며 경제적으로나, 집안 문제에 있어서도 많이 배려해줬습니다.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도 가정에 소홀하진 않았어요. 아이들과도 잘 놀아줬고, 부부간의 성관계에도 문제가 없었고요.

하지만 완벽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항상 그 여자가 끼여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혼하자고도 해봤지만 남편은 절대 이혼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 종종 행복하냐고 물어봅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하면 자기가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합니다. 아이가 크면서 저도 여유가 생기고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왔어요. 이런 변화에 남편이 그 여자와의 만남을 정리할 것이라 기대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연락하고 몰래 만납니다. 저는 도대체 남편이 왜 그 여자를 계속 만나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 식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하면서도요. 노후에 남편과 서로 사랑하며 지내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선아(가명ㆍ40ㆍ주부)

선아씨, 사연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먼저 인간다운 게 뭔지 생각해볼까요. 법이 아무리 엄격해도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이런 법적 제재나 처벌이 두려워서라기 보다는, 충동적인 본능적 욕구를 건강한 자아(ego)기능을 발휘해 잘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냉정한 얘기지만 결혼한 이들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법으로 처벌을 하고 화를 내고 야단을 친다고 그 마음을 없앨 수는 없을 거예요. 개인의 마음과 생각을 법이나 타인이 과도하게 통제해서 못하게 하거나 당장 바꿔놓을 수 없다는 말이지요. 즉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자유로운 것이지요. 하지만 생각과 감정이 자유롭더라도 결국 마지막에 외도를 행하는 것은 본능적 욕구와 현실 사이에서 검증을 해내고 조절해내는 자아의 기능이 상실되거나 약해진 것이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 행동입니다. 보통은 그런 마음이 들어도 자아의 기능을 잘 발휘해 선을 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선아씨의 남편은 그 선을 지키지 않았고, 선아씨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줬죠. 부부는 다른 이성이 끼어들지 못하는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랑입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뺏긴 선아씨는 너무 힘이 들겠지요. 결혼해서 살다 보면 그 사랑도 식을 수 있어요. 하지만 상대가 싫더라도 배우자는 나에게 가장 가깝고, 중요한 사람인 것은 분명해요. 그런 배우자가 너무 싫어하고, 크나큰 상처를 받는 일은 반복해선 안 되는 행동이지요. 그런 이유에서도 남편은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닐지라도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지요.

선아씨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면 선아씨는 더 괴로울 거예요. 남편은 난잡한 바람둥이거나 사리분별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남편은 사회에서도 굉장히 유능하고, 성실해서 성공한 사람일 거예요. 자의식도 매우 높을 거예요. 예컨대 나쁜 사람이랑 엮여서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받으면 많은 사람이 나쁜 사람 때문이라고 욕을 하지요. 그런데 남편처럼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나쁜 사람을 욕하기보다 나쁜 사람과 엮인 본인 자신을 더 못 견뎌 합니다. 이런 분들은 남에게 싫은 소리나 잔소리 듣는 걸 못 견뎌 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타인의 충고를 잘 안 받아들이고 매사 ‘유능한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 ‘내 가족은 내가 알아서 해’라는 태도를 가진 통제적인 사람일 거예요. 그래서 선아씨도 자신이 통제할 범위 안에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이혼을 하지 않는 겁니다. 남편에게 이혼은 자기가 아내를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자신이 생각하는 통제의 틀 안에서 고려했던 것이 아니라 선을 넘는 일이므로 있어서도 안되고 남편 자신의 마음이 괴로워지는 일이므로 절대 용납할 수 없겠지요. 사랑 여부를 떠나 ‘내가 책임져야 할 식구’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남편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고 싶기에 이혼은 발달이 느린 아이를 키운 조강지처를 버리는 비난 받을 행동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거지요.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내의 상처보다는 본인의 괴로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발달이 느린 아이 문제에 있어서도 남편은 아이를 창피하게 여기기보다 그런 아이를 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클 거예요. 아이를 사랑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가 그런 상황에 처한 자신의 모습을 못 견디는 겁니다. 아빠로서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또 발달이 느린 아이가 가엾고, 그래서 더 잘 키우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발달이 느린 아이가 자식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남편 인생의 자기 통제에서 예상도 못했던 현실이므로 자신의 통제의 틀 밖에 있는 아이를 둔 자기 자신이 마음에 안 차고 괴로워지는 거지요. 당연히 불안하겠지요. 어떤 부모는 불안하니까 강박적으로 치료에 몰두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남편은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를 보는 게 자신의 내면이 건드려지고 괴로워지니 가능하면 안 보려고 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괴로울 때 다른 이성을 만나요. 남편은 타인과의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어려움이 큰 사람입니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없었는데, 아이 문제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게 생긴 거지요. 보통은 배우자와 손을 맞잡고, 역경을 극복하고, 때로 좌절하고, 그러면서 자기의 역량 안에서 소화해 나갑니다. 그런데 선아씨의 남편은 아이 문제에 있어서 그게 안됐어요. 본인은 인정 안 하겠지만 남편은 집에 오면 ‘내가 어쩌다 발달이 느린 아이를 기르는 처지가 됐을까, 너무 괴롭다’라는 생각과 마음이 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아내는 ‘아이의 보호자’로만 느껴졌을 거예요. 아이와 아내가 자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 들추어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이런 남편에게 다른 여성은 ‘발달 지연이 있는 아이가 있는 아빠’가 아니라 ‘잘 나가는 남자’로 만들어주는 존재일 거예요. 다른 여성이 여성적인 매력이 커서가 아니라 자신이 유능한 남자로 느껴지기 때문에 계속 만난 걸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깊은 대화까지는 아니겠지만 마음이 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일 거예요. 남자 대 여자,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었을 테니깐요. 거기에 더해 남자의 입장에서 여성이 돌봐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굉장히 평등한 존재로 느껴진다면 그녀와의 관계가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꼈겠지요.

선아씨, 아마 당신에게 왜 이혼을 하지 않느냐고, 왜 무기력하게 있느냐고 당신 탓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잘 알아요. 당신이 섣불리 할 수 없었고 지난 10년을 참아온 상황을요. 당신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남편에게 맞춰주려고, 잘 보이려고 지나치게 눈치보고 과도하게 노력하지 마세요. 당신이 아이를 기르느라 소홀해서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게 아니니깐요. 그건 남편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예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응원하고 지지해요.

남편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쓰거나, 억지로 참는 것도 하지 마세요. 억지로 애쓰고, 참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해요. 당장 이혼을 할 게 아니라면 억지로 참는 대신 남편과 대화의 범주를 넓혀봤으면 좋겠어요. 아이나 집안일 얘기를 안 할 순 없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다른 사람 얘기, 정치나 경제 얘기도 해보세요. 당신 앞에서 남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부끄러운 게 많을 겁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 다른 여성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선아씨와 남자 대 여자,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가 먼저 성립된다면 두 분의 관계가 훨씬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남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당신의 아이한테는 당신이 생존을 도와주는 생명 같은 존재라는 점도 명심하세요. 남편과의 관계에서 크게 연연해하지 말고 조금은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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