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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계규 화백의 이 사람] ‘봉도르’가 된 ‘봉테일’

입력
2019.06.01 04:4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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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캐리커처. 배계규 화백
봉준호 캐리커처. 배계규 화백

한국 영화 최초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더구나 심사위원 만장일치 수상이다. 제72회 칸영화제를 휩쓴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향해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봉준호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극찬이 넘실댄다. 봉 감독은 자신을 “이상한 장르 영화 감독”이라고 설명한다. 장르 법칙을 비틀거나 부수면서 그 틈새에 사회 현실을 집어 넣는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하고 섬세한 연출력에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봉 감독의 영화가 날카롭게 사회를 풍자하면서도 장르적 재미와 감동을 놓치지 않는 이유다.

봉 감독은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콘티를 짠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을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 만화책처럼 만든 뒤 배우와 스태프에게 나눠주고 그대로 찍는다. 인물의 동작과 동선부터 카메라 구도까지 디테일 하나하나가 콘티에 다 담겨 있다. “봉 감독 머릿속엔 완벽한 편집본이 있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급이 다른 천재다.” ‘설국열차’(2013)에 참여한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 에번스의 이야기다.

‘기생충’도 다르지 않았다. ‘설국열차’ 후반작업 중이던 2013년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의 만남이라는 뼈대를 세웠고, ‘옥자’(2017)를 준비하고 있던 2015년 줄거리 구상을 담은 트리트먼트를 완성했다. 봉 감독이 6년간 머릿속에서 무수히 쓰고 고친 설계도에는 오차가 없다. “쉽게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조여정) “믿을 만한 가이드를 따라가는 패키지 여행”(이선균)이라는 말은 ‘봉테일’의 다른 표현이다. ‘살인의 추억’(2003)부터 ‘괴물’(2006) ‘설국열차’ ‘기생충’까지 네 작품을 함께한 송강호의 이야기는 곱씹을수록 감동적이다. “봉 감독의 정교함이 가장 빛나는 건 식사시간이다. 식사시간을 칼 같이 지키기 때문에 행복한 환경에서 일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의 주요 배경인 저택과 반지하, 가난한 달동네 마을이 모두 세트라는 말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봉도르(Bong d’Or)’.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팔름도르(Palme d’Or)와 ‘봉준호’의 합성어로, 해외 언론이 봉 감독에게 선사한 새 별명이다. 봉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새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봉테일을 봉도르로 만든 건 어쩌면 천재성이 아닌 남다른 성실함일지도 모르겠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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