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3년 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ㆍ65) 일본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지 3년이 됐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북한 핵ㆍ미사일 위기가 남북ㆍ북미 정상회담으로 전환되는 역사적 장면을 한국에서 지켜봤다. 그러나 한일 관계를 보면 수교 이래 최악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로 험난한 시기를 겪고 있다. 양국에서는 한일 관계 악화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에서 만난 나가미네 대사에게 양국 관계를 복원할 묘책을 묻자 그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강조했다. 1998년 10월 당시 김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도쿄에서 11개 항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오부치 총리가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 사죄하자 김 대통령은 화해와 선린우호 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게 시대적 요청이라고 화답했다. 나가미네 대사는 지난해 열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 기념 행사를 재임 기간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 중 하나로 꼽으며 “양국 모두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되는 나라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국내정치에 역사 이용 주장 사실 아냐”
나가미네 야스마사(왼쪽) 주한 일본 대사가 27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에서 박일근 논설위원을 만나 한일 관계 복원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로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렸다. 첫 국빈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11번째 미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일본 내 반응과 분위기는 어떤가.

“30여 년에 걸친 헤이세이(平成) 시대는 경제와 자연 재해 등으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도 평화가 유지된 시대였다. 일본 국민은 지난 1일 새 천황의 즉위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다. 레이와의 레이(令)는 ‘아름답다’(beautiful), 와(和)는 ‘조화’(harmony)를 뜻한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모으는 가운데 문화가 태어나 자란다는 의미가 있다.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며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시대가 되길 바란다. 트럼프 대통령이 레이와 시대 첫 국빈으로 방문해 일미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의미가 깊다. 일미 동맹의 전통적 우호관계가 계속 유지될 것이다.”

-한일 관계가 수교 이후 최악이란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현재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나.

“양국 관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가 인적 교류와 상호 이해라는 점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일한 관계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각에선 일본 정치 지도자가 역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지만 이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현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랐기 때문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최근에는 한국 내에서도 일한 관계의 현 상황을 걱정하며 일한 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알고 있다. 한국 측의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한다.”

-한국 측은 이미 성의를 다하고 있지 않나. 3ㆍ1운동 100주년 행사 직전 한국 측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까지 이례적으로 미리 일본 측에 귀띔해줬고, 경기도의회가 일본 전범 기업 제품 차별 조례를 추진하자 막후에서 이를 자제시키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을 때 일본인 납치자와 북일 수교 문제 등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뜻을 전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한국의 이 같은 노력에도 최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해결하라며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했다. 일본이 너무 정치적으로 문제를 끌고 가는 것 아닌가.

“일본이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강경하게 나가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안을 보면 한국 측이 원인을 만들었다. 미래지향적인 일한 관계를 만든다는 방향성을 잊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한국정부가 중재에 응했으면”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공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혼자살아남은 것이 슬프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일 관계의 복원을 위해 최우선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를 둘러싼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은 일본 기업에 보상의 의무가 있다고 단정했는데, 이는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됐다고 한 것과 완전히 상반되고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시라도 빨리 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할 필요가 있어 한국 측에 협의를 요청해 왔지만, 한국 내에서는 오히려 원고 측에 의해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가 추진됐고, 일부는 매각 신청까지 발표됐다. 일본 정부는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중재위원회의 개최를 한국 측에 통고했다. 한국 정부가 중재에 응하기를 바란다.”

-강제징용 배상 소송으로 한국 대법원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이 압류한 일본 기업 자산의 매각 신청을 했다. 실제 이 자산들이 매각될 경우 일본 정부는 어떠한 대응을 고려하고 있나.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전제로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 무엇을 실시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싶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 보호라는 관점에서 적절히 대응해 가겠다. 일본은 일본 기업의 자산이 부당하게 매각되는 일을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일한 경제 관계와 한국 경제에 널리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 측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이 건을 중재위에 회부했지만 한국 측이 구체적 해결책을 강구해 본건을 해결하는 길도 있는 만큼 한국 측의 적절한 대응을 기대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한일 정상이 서둘러 만나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일 정상회담은 언제쯤 열릴 것으로 보나. 일본 측에선 강제징용 배상 소송 문제가 해결돼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문제를 풀기 위해 회담을 하자는 것인데 문제 해결을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 아닌가.

“내달 하순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즈음한 일한 정상 회담과 관련해서 현 시점에는 그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예단은 피하고 싶다.”

-북한의 비핵화를 강도 높게 주장해오던 아베 총리가 최근 김 위원장과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대북 제재 압박을 강조해오던 기존 태도에서 달라진 것인가.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상호 불신의 틀을 깨고 총리 자신이 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하겠다는 결의를 이전부터 피력해 왔다. 조건 없는 회담의 실현을 지향하겠다는 발언은 이를 더욱 명확한 형태로 밝힌 것이다. 일본은 일북 평양선언을 바탕으로 납치, 핵, 미사일 같은 제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이 주체가 돼 임하는 게 중요하다. 그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고 과감히 행동해 가겠다.”

◇“한일 인적왕래, 1000만명 돌파 높이 평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가 27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에서 박일근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한일 관계 복원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한일 외교 관계는 나쁘지만 양국을 오가는 여행객 숫자 등 민간 왕래는 정반대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나.

“작년에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약 754만 명,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약 295만 명으로 양국의 인적 왕래가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에 대해 일한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 촉진이라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 일본 음식점이 많이 눈에 띄고 일본 술을 비롯해 디저트 등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제3차 한류 붐이 도래해 젊은이들 사이에 K팝의 인기가 엄청나다. 이처럼 양국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인적 교류와 상호 이해다. 장래의 일한 관계를 짊어질 청소년 교류, 특히 직접 체험에 바탕을 둔 상호 이해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일한 지방자치단체 사이에도 자매도시 결연이 163건이 있는데, 이런 지역 간 교류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대사관은 이렇게 다양한 분야와 연령, 계층 간의 국민적 교류 확대를 앞으로도 지원해 갈 생각이다.“

-일본 경제가 전후 최대 수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면 한국 경제는 그렇지 못하다. 한일 경제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일본과 한국은 서로가 제3위의 무역 상대국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최대 투자국 중 하나로 오랜 기간 많은 금액을 투자해 왔다. 일본 기업은 한국에서 10만 명 규모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한국 경제와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많은 일본계 기업이 반도체 제조 장비와 재료를 한국의 반도체 업체에 공급하며 한국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처럼 양국은 오랜 세월 밀접한 경제ㆍ무역 관계를 구축해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만한 경제력을 지닌 국가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양국의 밀접한 경제ㆍ무역 관계를 더 증진시켜야 한다.“

-재임 기간 가장 어려웠던 일과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그간 한국의 정치는 큰 변화를 이뤘다. 그 때마다 일한 관계의 현안이든 북한을 포함한 지역 정세든 한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며 대처해 왔다. 모든 과제가 어려웠고 대사 한 사람 힘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어려운 현안을 껴안고 있다. 보람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모든 게 도전이었다. 서울뿐 아니라 매력적인 지방들을 방문하며 많은 한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일이 기뻤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더 많이 지방을 방문하고 싶다. 이만큼 가까운 일본과 한국에서 문화의 유사성과 다양성을 발견할 때마다 깊은 감회를 느낀다. 일본과 한국은 친밀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사이이자 친구다. 또 그래야만 한다. 실제 일본에서 재해가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와 한국분들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일본과 한국은 저출산 고령화 등 공통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들 분야에서 교류와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시대의 일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

인터뷰=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1998년 10월 도쿄에서 ‘21세기 새 시대를 위한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신상순 기자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