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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부모의 사랑만으론 부족하다

입력
2019.05.29 15:00
수정
2019.05.29 15: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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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엄마, 나 엄마 무지무지 사랑해. 우주만큼 사랑해. 아니, 우주보다 더 사랑해!”

매일 밤 두 딸이 잠자리에 든 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아이들 방을 나서면, 둘째는 이렇게 소리친다. 동생에게 질세라 첫째도 “나도 엄마 엄청 많이 우주만큼 사랑해!”하고 외친다.

“그래 그래. 엄마도 우리 딸들 우주보다 더 사랑해~” 하고 문을 닫고 나오면 가슴이 찡한다. 내가 정말 이 아이들에게 이 정도의 사랑을 받아도 될까?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데도 넘치는 사랑을 주는 아이들.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요즘은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소녀가 있다. 이달 초 새아버지에게 목숨을 빼앗긴 13세 김모양이다. 김양은 부모 이혼 후 친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자주 매를 맞는 등 폭행을 당하자 불과 10살이던 2016년에 아동보호기관에 신고를 했다. 이후 재혼한 친어머니에게 갔으나 이번엔 새아버지가 음란물을 보내거나 성폭행을 시도하는 등 성적인 학대를 했다. 아이는 또다시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이를 어설프게 친어머니한테 알리는 바람에 새아버지마저 신고 사실을 알게 됐다. 김양은 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가 차 안에서 새아버지에게 목을 졸려 살해를 당한다.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여서 자세한 기사를 보는 것을 일부러 피했지만, 어쩌다 읽게 된 몇몇 기사만으로도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의 모습이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해 떠나지 않는다.

김양 사건을 자세히 취재해 보도한 최근 기사를 보니, 김양이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들도, 아동보호기관도 나름대로 김양을 돕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조부모에게도 ‘아버지를 신고한 딸’ 취급 받았던 불쌍한 영혼은 그 누구에게도 ‘우주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아 본 적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0대 초반, 그 어린 아이가 반복해서 부모를 신고했던 것을 보면, 학교에서 부모의 그런 행위가 아동학대이고 성적인 학대라는 교육을 받은 것이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신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온몸으로 저항한 결과는 생명의 박탈이었다. 이 아이의 죽음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물론 부모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양쪽 부모의 학대 속에서 갈 곳 없어진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잘못도 크다.

최근 정부가 ‘아동이 행복한 나라’를 천명하고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부모에게 분리돼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고 보호하고, 매년 위기 아동 전수조사와 부모에 의한 체벌 금지 등을 통해 아동 학대 근절에 나선다는 계획이 눈에 띈다.

물론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건 부모로부터 다함 없는 사랑을 받고 자라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죽음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의 억압적 양육 태도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아이들도 많다. 이런 아이들의 도움 요청에 대해 국가는 최우선적으로 응해야 한다. 그 아이를 학대 부모로부터 완전히 보호하고,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누구에게서든 받으며 온전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이들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사회적 인식과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아직도 생계 곤란 등을 이유로 아이들까지 살해하고 자살하는 아버지가 존재하고, 국민의 70%가 ‘부모의 체벌은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더라도 국가가 지켜줘야 한다,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이런 생각이 모두의 상식이 되도록, 정부가 사회적 인식 개선에도 노력하기 바란다. 또다른 김양 사건으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최진주 정책사회부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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