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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몰타의 이혼(5.28)

입력
2019.05.2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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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국가 몰타의 시민들이 2011년 오늘 국민투표를 통해 이혼을 합법화했다. 사진은 반대표를 던지라는 가톨릭 진영의 홍보 포스터. lepetitmaltais.com
가톨릭 국가 몰타의 시민들이 2011년 오늘 국민투표를 통해 이혼을 합법화했다. 사진은 반대표를 던지라는 가톨릭 진영의 홍보 포스터. lepetitmaltais.com

지중해 가톨릭 국가인 몰타공화국은 긴 세월 ‘중세의 섬’이라는 수식어를 떨어내지 못했다. 몰타는 16세기 이래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기까지 약 250년 동안 예루살렘 성요한기사단의 직할 영토였다가 19세기 이후 영국 지배를 받다가 1964년 독립했다. 2012년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설문조사에서 주민의 95%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그 몰타의 시민들이 2011년 5월 28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혼을 합법화했다. 찬성률은 53.16%였다.

그 전까지 몰타인은, 가톨릭 지침에 따라 이혼을 할 수 없었고, 배우자 중 한쪽의 성기능 장애나 불임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될 경우에 한해 가톨릭 재판소 판결에 따라 결혼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세속 민법은 법적 별거를 인정해 결혼의 의무 중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게 했지만 이혼은 아니어서 쌍방 누구도 재혼을 할 수 없었고, 별거 중 혼외 자식을 낳더라도 아이들은 일부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국민투표 당시 혼외 자녀는 몰타 초등학생의 약 30%에 달했다고 한다.

몰타 가톨릭 교회는 처음엔 투표를 거부했고, 나중엔 “결혼은 신의 선물이며, 예수는 이혼을 부정했다”던 대주교(Paolo Cremona)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이혼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주민 다수는 가톨릭 신앙보다 현실의 삶과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투표했다. 교회의 반대 이면에는, 종교적 신념과 별개로, ‘혼인 무효’의 종교 재판 독점 권력과 적잖은 재판 수수료 등 이권이 깔려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혼법은 의회 입법을 거쳐 그해 10월 시행됐다. 하지만, 최소 4년의 법적 별거를 해야 하고 재결합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달렸다. 그로써 이혼이 불법인 국가는 필리핀(과 바티칸시국)만 남았다. 한편 95년 국민투표로 4년 별거 등 유사 조건의 이혼을 합법화한 아일랜드는 지난달 말 다시 국민투표를 통해 82.1% 찬성으로 이혼 조건 완화를 위한 법 개정을 결정했다.

몰타 의회는 2017년 7월, EU 28개 회원국 중 15번째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앞서 2014년부터 동성애자 커플의 시민 결합을 인정, 사실상 동성혼을 인정했던 데서 더 나아간 조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임신중단권(낙태) 인정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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