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부근 통행 체증에 순서 기다리다… 추위ㆍ탈진 사망자 급증
산악인 니르말 푸르자가 지난 22일 촬영한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 사진. 마지막 산등성이를 오르는 등반가들로 가득하다. 파서블 어드벤처 제공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의 이른바 ‘데드존’(Dead Zone)에서 발생한 통행 체증 때문에 순서를 기다리다가 추위와 탈진으로 사망하는 등반가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일주일 새에만 숨진 사람이 10명에 달했다. 등반객 수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25일(현지시간) 영국인 로빈 헤이스 피셔가 이날 오전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한 지 45분만에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동반했던 셰르파에 따르면 피셔는 하산을 시작한 직후 정상으로부터 약 150m 지점에서 탈진으로 쓰러졌다. 전날에는 정상 부근에서 장시간 대기하던 아일랜드인 케빈 하인스가 해발 7,000m 지점의 캠프로 돌아왔다가 숨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 이후에만 영국인 1명과 인도인 4명, 미국인 1명, 오스트리아인 1명, 네팔인 1명 등이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사망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데드존에서의 ‘등반객 정체’ 때문에 변을 당했다. 데드존은 에베레스트 정상 도달 직전에 있는 수직빙벽 ‘힐러리 스텝’을 지칭한다. 1953년 서방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곳은 오르내릴 때 한 사람만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다. 그래서 등반가들이 몰려들 때면 길게는 몇 시간씩 오르내리는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악명 높은 ‘병목구간’일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오랜 기다림이 발생하면 여분의 산소통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거나 고산병이 악화할 경우 치명적인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구르카 용병 출신의 네팔 산악인 니르말 푸르자가 지난 22일 데드존 인근을 촬영해 공개한 사진에는 눈 덮인 바위산 능선의 좁은 외길에 등반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푸르자는 해발 8,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320여명이 강추위 속에서 고산병과 싸우며 장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본 뒤 “산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만 하루도 안돼 미국인 도널드 린 캐시, 인도인 안잘리 쿨카르니 등의 사망으로 현실이 됐고 이후에도 참변은 이어지고 있다.

BBC와 NYT는 “올봄 시즌에 네팔 정부가 1인당 1만1,000달러(약 1,300만원)를 받고 381명에게 등반 허가를 내줬다”면서 “이로 인해 최근 데드존 통과에 수시간이 걸리는 정체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사망자가 늘었다는 비판이 많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한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를 여러 번 올랐지만 최근의 체증은 최악”이라며 “등반가들에겐 강풍이나 혹한보다 이 체증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BBC는 “세계 최고봉에 오르기 위해 거액을 지불하고도 준비가 안 된 아마추어 등반가들은 자신의 목숨을 허술한 등반업체와 부패한 관리에게 내놓는다”고 개탄한 저명한 등반가이드 해리 타일러의 말을 전한 뒤, “네팔 정부와 중국 티베트 정부가 에베레스트 등반 허가를 보다 철저히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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