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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서 흐지부지 된 검찰 개혁, 文정부서도 ‘난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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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서 흐지부지 된 검찰 개혁, 文정부서도 ‘난제’로

입력
2019.05.24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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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던진 화두 ‘남북관계, 정치개혁, 적폐청산’… 지금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묘역에 분향하고 있다. 김해=전혜원 기자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묘역에 분향하고 있다. 김해=전혜원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대통령 재임 시절 던진 중요 화두가 재평가 받고 있다. 파격적인 탈권위주의 행보와 거침없는 언행으로 논쟁의 정점에 섰고 특히 우리 사회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 타파와 검찰개혁을 주장했다. 정치문화를 바꾸려는 시도야말로 어느 때보다 많았다. 그러나 그가 추진했던 중요 정책은 현실의 벽을 실감한 채 대부분 미완의 과제로 남거나 아예 실행조차 못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정과제를 상당부분 이어받아 추진하고 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좀더 꼼꼼히 준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향후 성과측면에선 전망이 엇갈린다. 문 정부의 중요 국정과제를 참여정부 때와 비교 점검한다.

△남북 긴장완화 소중한 자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이어 받아 남북관계 개선을 필생의 과제로 여겼지만 도드라진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참여정부 초기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현대그룹이 북한에 거액을 송금한 사실이 드러나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청와대의 운신 폭이 크게 좁아졌다. 특히 북한 핵실험과 북방한계선(NLL) 논란 등으로 대북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노 전 대통령은 6자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지만 획기적인 진전은 없었다.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만나 잠시 주목을 받았을 뿐 긴장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결실은 맺지 못했다. 보수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엔 그나마 다져진 남북관계마저 뒷걸음질쳤다. .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때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정권 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북미관계가 현재 교착상태에 있지만, 잇따른 북미ㆍ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긴장완화를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는 점에선 후한 점수를 받았다. 특히 북한 최고지도자의 전향적 태도를 확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은 문재인 정부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진일보한 성과”라면서 “포용정책으로 인한 남북 긴장완화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은 절반의 성공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신념으로 삼았다. 검찰 출신이 아닌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장관으로 발탁하는 파격을 보이더니,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평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확실한 개혁의지를 천명했다. 그러나 핵심공약인 검경 수사권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는 검찰의 반발과 정치권의 갑론을박으로 흐지부지돼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4년 공수처 설치 법안을 정부가 발의할 정도로 의욕을 보였지만, 임기 내내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개혁 동력은 꺼져버렸다.

문 대통령의 책 ‘운명’을 보면, 검찰개혁에 실패한 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강했고, 참여정부 때 타이밍을 놓쳤다는 후회가 배어있다. 취임 초부터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역설했고, 조국 민정수석 기용으로 개혁완수 의지를 드러냈다. 정치권에선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이 포함된 것도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임기 2년간 가시적 성과는 안 났지만, 패스트트랙 처리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정치개혁은 미완의 과제

노 전 대통령은 정치환경을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도록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대통령 권력을 나누는 것을 해법으로 생각했다. 2004년 총선 직전엔 내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를 국회의 다수 연합이 추천하는 동거정부 혹은 책임총리제를 검토했지만 탄핵정국으로 국회가 격랑에 휩싸이면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2005년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해 정치개혁을 시도했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당시 대연정 화두에 묻힌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결선 투표가 없는 소선구제와 소수의 비례대표 의석이 지역주의를 강화한다고 판단, 독일식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것을 고민했다. 2007년에는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권력구조 개헌을 제안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정권 초반부터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한 ‘개헌’에 나섰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의 표결 불참으로 실패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정치개혁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고 다양한 시도 속에 정치문화 개혁의 씨앗을 뿌렸다”면서 “그에 비하면 지금은 기득권 세력과 정당의 카르텔로 진전이 더디다”고 평가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도 “노 전 대통령은 탈권위와 권력분산이란 흔적을 남겼지만 여전히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불가능하다”며 “선거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문화가 과거보다 개선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분권 시행착오 줄여야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시도는 노 전 대통령의 과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임기 동안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를 만들고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건설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하지만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며 지방분권이 국정핵심과제에서 밀려났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은 문재인 정권 들어 현재진행형으로 살아났다. 정권 초부터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국정과제 로드맵을 마련하고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제시했다. 다만 정부가 제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과 중앙정부 517개 사무를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안은 아직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준한 교수는 “노 대통령의 지방분권의 꿈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지만 부작용도 상당하다”며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주의 타파는 현재진행형

노 전 대통령은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이 붙을 만큼 그의 정치인생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연속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집권당의 부산경남(PK) 공략은 연전연패로 돌아왔다. 특정정당이 영남과 호남 의석을 싹쓸이하는 구조를 바꾸려는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득표율 면에서 노 전 대통령 때보다 상당히 진일보했다.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PK지역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최고 득표를 기록했고,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이 PK 광역단체장 3곳을 모두 석권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이어질지에 대해선 아직 미지수다. 최창렬 교수는 “문 정부에서 지역주의 구도가 완화된 것은 분명하지만,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과거사 정리 명암 엇갈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승리로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자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에 사활을 걸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언론개혁법과 과거사법 마련을 승부수로 띄웠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은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로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거칠게 말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정국의 핵으로 등장해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고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국회 문턱에서 좌초했다.

과반 의석조차 확보하지 못한 문 대통령은 입법으로 과거청산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고 보고 검찰 수사와 각종 위원회 구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진행된 검찰의 전방위 수사와 정부 부처에 각종 과거사 위원회를 설치토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적폐청산은 문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수사나 조사가 길어지고 타깃이 전임 정권 사람들로 몰리면서 정치적 논란은 커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정부가 미래를 보자고 하면서 실제로는 과거에 방향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느냐”며 “객관적이지 않고 자의적으로 과거사 정리를 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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