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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투쟁 대신 교육 바꾸는 운동 방식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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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오 전교조 위원장 “투쟁 대신 교육 바꾸는 운동 방식 생각할 때”

입력
2019.05.23 15:36
수정
2019.05.23 19:0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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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격한 투쟁 탓에 국민지지 잃어… 처절한 반성으로 30주년 맞아

촌지 근절ㆍ체벌 금지 등 이끌며 학교 민주화 씨앗 뿌린 건 성과”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권정오 위원장. 1989년 창립 멤버이기도 한 권 위원장은 “늘 반대하고 투쟁만 일삼는 조직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새로운 교육 의제를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권정오 위원장. 1989년 창립 멤버이기도 한 권 위원장은 “늘 반대하고 투쟁만 일삼는 조직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새로운 교육 의제를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투쟁만 일삼는 과격한 진보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향한 우리 사회의 이 혹독한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 묻자, 조직을 이끌고 있는 권정오(54)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원들이 활동하는 조직이면서도 ‘교육’이란 단어가 빠진 이 같은 평가가 뼈아프지만 “우리의 과오와 한계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1989년 5월 참교육 실현을 내세우며 출범, 오는 28일 결성 30주년을 맞는 전교조가 ‘대표 교원노조’에 걸맞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교육의제를 설정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권 위원장은 생각한다. ‘법외노조 사태’ 같은 당면한 현안을 해결해야 함은 물론이다. 다만 그는“이제는 교육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운동방식을 생각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권 위원장은 “처절한 반성”으로 서른 살 전교조를 돌아봤다. 창립 멤버인 그는 30년 전교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전교조의 산 증인’이다. 1989년 3월 울산의 한 고등학교에 초임교사로 발령 받았던 그는 당시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교단에 선 지 4개월 22일 만에 해직교사가 됐다. 1994년 복직했지만 2013년 전교조가 법외노조로 분류됐을 당시 울산지부장(2013~2016)을 지내면서 2016년 울산시교육청의 ‘전임자 복귀 명령’을 거부해 또 한 번 해직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전교조 제19대 위원장에 선출됐다.

조합원 수가 10만명(9만3,000여명ㆍ2003년)에 육박하던 2000년대 초반의 황금기와 비교해 현재 5만명대로 축소된 조직 규모는 자연스럽게 반성과 성찰을 불렀다. 막 교단을 채우기 시작한 신규 교사들을 중심으로 점차 전교조에 등을 돌리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전 같지 않은 위상의 이유가 뭘까. “두 보수정권으로부터 끊임없이 탄압받으면서 ‘대정부 투쟁’을 중심에 놓고 노조의 동력을 모은 탓이 크겠죠. 일반 조합원들의 생활 어려움같은, 노조가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노력을 덜 기울인 탓이 큽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와 저지가 전교조의 주된 활동이었던 탓에 조합원 개개인의 고민에 귀 기울이는 일에는 소홀했고 이에 따라 조합원들의 피로도 역시 커졌다는 뜻이다. 권 위원장은 “교사들이 노조를 통해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확장하거나, 학교 현장에서 교육권을 침해 당했을 때 (노조로부터)구제 받거나 보호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는 게 가장 큰 숙제”라고 말했다.

물론 지난 30년간 전교조는 우리 교육현장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온 건 사실이다. 촌지 근절과 체벌 금지 등을 이끌며 학교 민주화 운동의 씨앗을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사가 절대적인 권력으로 군림하던 학교 현장에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를 활성화시켜 교사ㆍ학생ㆍ학부모의 권리를 확대시켰고 결성 초기부터 교육의 공공성 개념을 내세워 무상급식, 무상교육 도입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는 “교육정책을 이끌고 바꾸는 중심에 전교조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대정부 투쟁 방식의 변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전교조는 지난해 ‘법외노조 사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며 지도부의 삭발, 단식 농성을 비롯해 조합원 연가투쟁 등 비교적 과격한 형태의 투쟁 방식을 선택해 왔다. ‘교육은 팽개치고 정치 투쟁을 일삼는 집단’이란 비판에 시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위원장 후보에 나서며 법외노조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투쟁에 주력해 온 이전 지도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한 것도 “과거 지도부가 극단적인 방식을 일상화해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권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오랜 관행과 결별하고 교육권을 강화해 학교를 되살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과거 법외노조 처분에 저항하다 현재까지 해직교사 신분인 권정오 위원장은 “30주년 전국교사대회가 열리는 25일까지 이 정부의 법외노조 직권취소 처분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류효진 기자
과거 법외노조 처분에 저항하다 현재까지 해직교사 신분인 권정오 위원장은 “30주년 전국교사대회가 열리는 25일까지 이 정부의 법외노조 직권취소 처분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류효진 기자

투쟁방식은 바꿀 수 있어도 문재인 정부가 즉각 법외노조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전교조는 30주년 전국교사대회가 열리는 오는 25일까지 정부가 법외노조 처분을 직권취소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출범과 동시에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방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권 위원장은 “이 정부가 (법외노조 문제를)청산해야 할 과거 정권의 적폐가 아닌 예민한 정치적 이슈로 보기 때문”이라며 “직권취소 이후 벌어질 보수진영의 집결과 공격을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25일까지 정부의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권 위원장은“이 정권을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낼 시간이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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