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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심장 진단기도 무용지물… “신산업 규제 중국ㆍ이집트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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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적 심장 진단기도 무용지물… “신산업 규제 중국ㆍ이집트보다 높다”

입력
2019.05.23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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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상의, 규제 강도 국제 비교, 54개국 중 한국 38위로 중하위 

 신산업 장벽으로 기득권 저항ㆍ포지티브 규제ㆍ소극적 행정 꼽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바이오 의료 관련 스타트업인 A사는 지난해 심방세동(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면서 발생하는 부정맥류 심장 질환) 모니터링이 가능한 심장진단기기로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학술대회에 참가한 심장전문의와 전문가들은 심장이 수축 운동을 하면서 흘려 보내는 피의 양을 측정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앱으로 심장 기능을 진단할 수 있도록 한 기기를 보고 극찬했다. 게다가 진단된 내용이 의사에게 실시간 전달되는 기능까지 있어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학술대회가 끝나자 A사에 공동 연구를 진행하자는 세계적인 병원과 제약사의 제안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A사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개발한 진단기기를 정작 국내에서는 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사용자 생체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핵심인데, 법이 이 같은 원격 의료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을 고민했지만 A사는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바이오헬스 산업을 시스템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차세대 3대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처럼 관련 스타트업들은 높은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 제품조차 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2일 ‘신산업분야 대표규제 사례’ 보고서를 통해 “A사처럼 신산업 스타트업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진입규제가 중국은 물론 이집트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국제연구기관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가 올해 초 발표한 세계 54개국의 ‘진입규제 강도 국제비교’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다. 여기서 한국은 54개국 가운데 38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는데, 대만(1위)과 독일(8위), 미국(13위), 일본(21위)은 물론이고 중국(23위)이나 이집트(24위)보다도 순위가 낮았다.

보고서는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면 반대부터 하는 기득권의 저항, 법에 규정한 것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 정부 기관의 소극적인 행정 등이다.

기득권의 반대가 가장 심한 분야로는 의료ㆍ바이오 산업이 거론됐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에서도 원격의료가 전면 허용돼 이를 접목한 헬스케어 서비스 상품이 쏟아지고 있는데 한국은 의료계 반대 때문에 시범사업만 20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 체온계와 스마트폰을 연동한 영ㆍ유아 건강관리 시스템 앱을 개발한 스타트업 B사도 비슷한 사례다. 영ㆍ유아의 체온과 발열, 구토 등 증상을 입력하면 의사가 곧바로 대처법을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의사가 스마트폰앱으로 대처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료법 위반에 해당돼 국내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유전자검사업체 C사는 포지티브 규제에 막혀 한국을 떠나야 했던 업체 중 한 곳이다. 사람의 침으로 유전자정보를 분석해 각종 질병예측이 가능하도록 한 기술을 개발했는데, 국내에서는 비만과 탈모 등 12가지 항목(최근 13개 항목 추가)만 유전자검사 대상으로 허용하고 있어 사업성이 떨어졌다. 결국 C사는 암을 비롯해 300개 이상 항목에서 검사가 가능한 일본에 법인을 세웠다. 한 핀테크업체 관계자는 “금융혁신이나 숙박공유도 대표적인 규제 장벽에 갇힌 분야”라며 “인공지능 기반의 펀드 상품을 개발했지만 법이 명시적으로 허용한 펀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품 출시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 기관의 소극적 행정도 규제 장벽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우리나라 공무원은 규제 강화를 돈 안 드는 가장 확실한 대책으로 보는 것 같다”며 “기업들의 새로운 시도가 공무원들의 소극적 태도 앞에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공무원들이 문제되는 규제를 스스로 발견해 없앨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그래픽=송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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