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종단열차 ‘통일특급’

하노이역에서 호찌민시 사이공역까지 1,726㎞, 남북선을 달리는 ‘통일특급’이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낭 북부 ‘하이반 패스’를 달리고 있다. 이번에 탄 열차는 한 밤중에 이 곳을 통과하면서 사진으로 담지 못했다. 구글 캡처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시간이 멈춘 듯, 수십 년 전 모습 그대로인 것들이 베트남에 더러 있다. 4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철도 인프라도 한 예. 그 중에서도 길이 1,726㎞ 남북선을 달리는 종단열차, ‘통일특급(Reunification Express)’은 40년째 한결 같다. 남북선은 1936년 프랑스식민 때 완성됐지만 이후 40년 가까이 이어진 전쟁에서 파괴된 것을 하노이 정부가 1975년 베트남전 직후 군사작전 펼치듯 보수해 1976년 말 개통,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쟁 직후 1년 반 동안 1,334개의 교량, 27개의 터널, 158개의 역에 대한 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지난 18일 하노이역과 호찌민시 사이공역을 연결하는 1,726㎞의 남북선 통일열차에 몸을 실었다. 북위 21도선에서 10도선까지, 34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다.

하노이역 통일특급 차장들이 열차 출입문 밖에서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베트남 최대 역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한적하다.
◇썰렁한 베트남 최대역

오전 8시 반. 9시 정각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닿은 하노이역은 썰렁했다. 남쪽으로 향하는 남북선 외에도 지난 2월 베트남을 찾은 북한 지도자가 이용한 동당, ‘베트남의 울산’으로 불리는 하이퐁, 중국 접경 라오까이로 이어지는 철도의 중심, 인구 1억의 베트남 대표 역이 맞나 싶을 정도다.

플랫폼도 단촐하다. 미리 출력해온 승차권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검표 게이트를 넘자 바로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객차 입구마다 선 차장들이 입구에서 표를 재확인 하며 맞는다. 기관사 2명을 포함해 식당칸 조리원, 승무원 등 16명이 사이공까지 간다고 한다. 객차 하나당 1.5명 수준. 인구 1억, 평균 연령 30세, 풍부한 노동력을 가진 베트남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장거리 여행을 감안해 잡은 자리는 2층 침대 2개가 양쪽으로 배치된 4인실. 옆 칸들은 더러 비어 있고, 한 방을 쓰게 된 딘득투언(50)씨가 맞은편 1층에 누웠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6개월 동안 번 돈을 싸 들고 고향인 꽝빈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베트남전 전후 일자리를 찾아 남부 호찌민으로 향했던 가장들의 애환이 서린 이 공간은 2019년 현재도 유효하다.

열차가 지나면서 건널목이 차단되자 멈춰선 하노이의 오토바이들.

오전 9시 정각, 디젤기관차가 이끄는 11량짜리 열차가 기적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전 울타리 하나 없는 주택가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와서야 속도를 붙인다. 객차 복도 끝에 달린 전광판에 표시된 속도는 시속 62㎞. 차장 용(32)은 설계 최고속도는 시속 90㎞로, 나중에는 시속 75㎞까지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현존 베트남 최고급 열차는 과거 한국의 통일호 수준이다.

베트남 철도 노선도 - 송정근 기자
◇철도 인프라 40년째 제자리

복잡한 하노이 시내를 벗어나면 줄어들 줄 알았던 ‘철커덩’ 소리는 여전했다. 시원하게 뻗은 구간에서도 시끄럽고 심하게 흔들렸다. 즉석에서 다운받은 ‘소음 측정앱’으로 잰 객실 내 소음은 80㏈ 안팎, 객실 양 끝에서는 110㏈을 가리켰다. 표준궤(1.43m)보다 좁은 미터궤(1m), 짧은 단척레일, 또 그것들이 모두 낡은 탓이기도 했다. 그 위를 달리는 객차 폭은 철로 폭 3배에 달한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노이를 출발한 열차가 내리거나 타는 손님이 없는데도 멈춰 섰다. 열차는 완목식 신호기를 든 역무원의 신호로 맞은 편에서 오는 다른 열차를 보낸 뒤 다시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사라진 완목신호기를 베트남은 아직 쓰고 있다. 열차를 끄는 디젤기관차는 오래 전 독일, 일본, 중국, 루마니아 등지서 수입한 것들이다.

약 2시간 뒤인 오전 10시55분. 남딘역에 닿아서야 썰렁했던 객차에 활기가 돌았다. 베트남전 때도 북부 대표 공업도시로, 베트남내 최대 방직공장이 있던 곳이다. 북한 김일성 주석도 생전에 이곳을 호찌민 주석과 함께 찾았다. 객차로 오르는 짐들이 예사롭지 않다. 한눈에 봐도 긴 여정을 시작하는 이들이거나 오랜 객지 생활을 마치고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이다. 유일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승무원, 옆 객차 차장 도티쯔엉(37)은 “주변에 공항이 없어 장거리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하노이에서 호찌민시까지 일반객실 티켓은 83만6,000동(약 4만3,000원)으로, 비엣젯 등 저가항공 조기예매 항공권 가격과 비슷하다. 4인실 침대는 158만9,000동(약 8만1,000원)으로 베트남항공 값이나 차이가 별반 없다. 근처 공항이 있는 곳에서는 비행기와 경쟁이 되지 않는 수준이다.

이후에도 열차는 승객이 타고 내리지 않는 역에 5~10분씩 멈춰 섰다. 맞은 편에서 오는 다른 열차를 보내고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했다. 1,726㎞ 남북선 전체가 단선이어서 크고 작은 역에서 교행이 잦다. 노후한 인프라 때문에 철도 이용하는 승객은 연 1,000만명을 약간 웃돌아 철도 수송부담률은 1% 수준. 창 밖엔 모심기 준비하는 논과 추수를 마친 논, 그 사이로 야자수가 선 들판이 빠르게 지나간다. 2, 3모작을 한다는 그 들판이다.

베트남 중북부 탄호아 지역 인근의 들판 풍경. 코코넛 나무가 들어선 논에서 추수가 한창이다. 인근 다른 논에서는 또 모심기 준비에 농부들이 바삐 움직였다. 남북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베트남의 다양한 자연 경관을 접할 수 있다.
◇열차는 더위와의 싸움

하노이에서 출발한 지 약 6시간, 한낮 북위 18도선을 지나면서 객차는 이제 덥다. 섭씨 25, 26도를 유지하던 실내 온도는 28도로 오르고, 승객이 많은 일반 객실은 이보다 높다. 쯔엉은 “객차 지붕에 실린 냉방기를 풀가동해도 뜨거운 태양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오후 3시35분에 닿은 응에안성의 빈역. 호찌민 전 주석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이 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하지만 이 역에서만큼은 객차 차장들이 더 바삐 움직였다. 내려서는 호스를 잡고 열차 지붕에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실외기를 이렇게라도 식히지 않으면 다른 도리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은 베트남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곳이다. 라오스 국경 산맥을 서쪽으로 길게 두고 있는 지형 때문이라고 누군가가 설명했다.

열차가 빈역에 정차하자 차장들이 승강장에 내려 준비돼 있던 호스로 열차에 물을 뿌리고 있다. 빈시가 속한 응에안성은 베트남에서도 가장 더운 곳으로, 한낮에는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다.

농업 말고는 달리 산업이라고 할 게 없어 가장 가난한 성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역에서 비어 있던 침대 2층에 사내 하나가 합류했다. 쭝주이. 호찌민시의 한 조선소에서 일하는 기술자로, 고향에 들렀다가 일터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는 동향 어른, 호찌민 주석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했다. 그의 긴 말은 ‘부정 부패로 시끄러운 지금 정치판의 정치인들과 달리 오롯이 국민을 위해 평생을 살다 간 호찌민 주석’으로 요약된다. 때마침 19일이 호찌민 주석 서거 50주기다.

들판의 소들도 더워서 드러누웠다. 흙탕물에 들어가 뒹굴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
◇어둠에 묻힌 절경

오후 6시 꽝빈성으로 열차가 접어들자 건설 노동자 투언이 짐을 챙긴다. 자신의 고향 근처 퐁냐께방 국립공원의 동굴을 꼭 한번은 들르라는 말을 남기고 동레역에서 작별했다. 퐁냐께방은 베트남 사람들 사이서도 가장 가고 싶은 곳 5위에 드는 곳이다.

투언의 말마따나 창 밖으로 기암절벽들이 펼쳐졌다. 많은 승객들이 창가로 다가섰다. 열대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선 열대 나무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해가 떨어지면서 창은 까만 거울이 됐다. 이어 7시 20분에 도착한 동호이역에서 한 사내가 투언이 내리면서 비어 있던 자리를 채웠다.

한 승무원이 객차를 돌며 간식을 팔고 있다.

주택, 아파트 자동문 설치 기술자 똔(26). 냐쨩 근처가 고향으로 호찌민시에 있는 회사에서 출장 왔다 복귀하는 길이다. 피곤했던지 이내 곯아 떨어졌다. 그가 잠든 사이 바다 옆 절벽에 아찔하게 놓인 바다 철길, 하이반 패스를 어둠 속에 보냈다. 중부 다낭에 닿기 전 지나는 이곳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길이다.

19일 오전 1시10분, 열차는 예정된 시간에 중부 최대 도시 다낭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을 태운 열차는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쯔엉은 “16시간 넘게 달린 기관차를 떼고 뒤에 새로 붙인 기관차로 사이공까지 간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역방향 자리가 순방향 자리가 됐다. 열차 운행 방향 틀도록 하는 T자 레일 외에도 다낭에는 중정비까지 할 수 있는 대규모 차량 정비단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동해라고 부르는, 남중국해 일출. 열차를 타고 가다 보면 이따금 이렇게 바다와도 마주친다.
◇경제수도 호찌민시

오전 5시 반. 객차를 휘젓고 다니는 식당칸 직원이 시끄럽다. 아침밥을 먹으려면 식권을 구입하라는 소리다. 흰죽 단일 메뉴에 가격은 2만5,000동(약 1,200원). 이렇게 판매된 식권 수로 음식 조리량을 결정한다고 했다. 미국 미주리에서 여행 왔다는 마이클(48)은 화장실 가는 게 두려워 최소한으로 먹고 있다고 했다.

남북선 철로 변으로 펼쳐진 용과 농장. 냐쨩과 호찌민시 중간의 빈투언성은 베트남 최대 용과 생산지다. 너무 더워서 다른 작물은 재배가 어렵다.

냐쨩으로 접근하는 길. 들판의 농부들이 이른 아침엔 보이더니 언제부턴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태양광발전이 가장 잘된다는 중남부 지역의 태양을 실감했다. 오전 11시 15분 냐짱역에 도착하자 실외 온도는 49도. 농부들은 오후 2시가 넘어야 다시 들판에 나온다고 한다.

용과(dragon fruit) 농사를 짓는 똔의 부모와 두 형제는 중국에 불만이 많다고 했다. 작년까지 1㎏에 3,000동씩 주고 가져가던 걸 올해에는 1,000동으로 후려쳤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도 몸에 좋고 미용에도 좋은 용과를 수입하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와 두 형이 1년 동안 농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생활비를 빼고 나면 약 500만원. 대학 나온 똔이 혼자 벌어들이는 것보다 적은 액수다.

하노이로 가는 열차에 올라 근무할 승무원들이 사이공역 승강장 한 켠에 앉아 있다. 하노이에서 내려온 열차 승무원들이 모두 다 교체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직원들은 하행선에서 이틀 근무 후 곧바로 상행선에 올라 다시 근무에 투입된다. 4일 근무, 4일 휴무 체계다.

광활한 논과 용과 농장, 고무나무 숲, 제지용으로 쓰인다는 멜라루카 숲, 20년 전만해도 코끼리가 뛰놀았다는 이름 모를 숲을 헤치고 달려온 열차가 들어선 곳은 호찌민시 인근의 동나이성. 종착역 사이공까지는 1시간 반을 더 달려야 하는 곳이지만, 큰 공장들이 눈에 띄는가 싶더니 건물들이 덩치를 키우면서 화려해지는 모습이 확연하다. 네온사인 불빛에 베트남 최고층 랜드마크 81타워까지 눈에 들어오자 객차는 떠나갈 듯하다. 마이클은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한 것 같다”고 했다. 그 타임머신은 예정보다 24분 더 걸린, 하노이역 출발 34시간 2분만인, 오후 7시2분 사이공역에 도착했다.

베트남=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열차가 한 역에 정차해 있는 동안 한 승객이 승강장으로 물건 팔러 나온 상인으로부터 음식을 사고 있다. 이렇게 역에서 물건을 사면 열차 식당객차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절반 가까운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승객이 타고 내리는 역에는 보통 3분씩 정차한다. 큰 역에서는 이보다 더 오래 멈추기도 한다.
하노이에서 호찌민시 사이공역까지 1,726㎞의 남북선을 달리는 종단열차, ‘통일특급(Reunification Express)’ 식당차에서 승무원들이 손님들에게 팔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4인실 침대칸에 탑승한 한 승객이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도 열차 여행, 특히 남북선 종단열차 여행은 한번쯤 꿈꾸는 여행이다.
시속 65㎞로 달리는 열차 여행이 지루했던지 아이들이 객차 내에서 뛰어 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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