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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

입력
2019.05.2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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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 부근에서 열린 ‘청계천 쌈지정원’ 행사에서 한 청년봉사자가 화분을 배치하고 물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1일 서울 청계천 모전교 부근에서 열린 ‘청계천 쌈지정원’ 행사에서 한 청년봉사자가 화분을 배치하고 물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날 전철을 타고 가는데 젊은 연인 둘이 껴안고 입을 맞추고 계속 애정행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서, 그것도 늦은 밤도 아닌 한낮에 술도 먹지 않은 제 정신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민망해하면서도 못 본 체했습니다. 제가 보다 못해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하고는 껴안고 있는 청년의 귀에 대고 공개된 자리에서는 그런 행위를 참아달라고 정말로 겸손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이 겸손하게 얘기하면 통할 줄 알았는데 그 젊은이는 큰 소리로 제게 욕을 하며 왜 남의 문제에 상관하느냐고 싸우자고 덤비는 거였습니다. 저는 더 말을 섞으면 저만 개망신당하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 하고 물러섰습니다. 그래도 그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습니다.

이 얘기는 실제 있었던 얘기가 아니라 제가 지어낸 얘기입니다. 그러나 전혀 사실무근이 아니라 지난주 전철에서 젊은 연인들이 가벼운 사랑표현을 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이것보다 더 진한 애정행각을 하면 어떻게 해야지 하며 상상을 해 본 것입니다. 비슷한 얘기를 보도한 신문기사를 본 적도 있고, 오래 전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이미 그런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개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이 다른 사람을 너무 배려ᆞ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주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것이 저의 고루함인지 생각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기에 아직도 그런 젊은이가 많지 않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 그렇지 않은 많은 젊은이들이 ‘고맙다, 참 고맙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얘기는 들은 얘기입니다. 저하고 비슷한 연배의 분이 운전을 하고 가는데 몇억은 나갈 것 같은 스포츠카가 갑자기 당신 차 앞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지르기를 하더라는 겁니다. 너무 천천히 운전한다고 생각한 젊은이가 화가 나서 그런 것인데 누가 봐도 일부러 위협 운전을 한 거였지요. 그런데 그렇게 앞질러 갔건만 결국 신호에 걸려 같이 서게 되었는데, 이 분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문을 열고 그렇게 운전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했답니다. 요즘 분위기에 겁도 없이 충고를 한 것이지요. 그랬더니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빨리 달릴 수 없으면 면허증 반납해!’라고 머리 희끗한 노인에게 반말을 하더랍니다. 얘기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무례하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얘기가 번져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들을 하니 한심하고 걱정이 된다는 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너무 ‘소수의 일반화’ 잘못을 범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런 젊은이가 우리 사회에 1%도 안 되고 많아도 5%가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다 그런 것처럼 생각하고 선량한 젊은이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그리고 그렇게 젊은이들을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마음은 어두워지고 우리 사는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현실을 보고 생각을 뒤집으면 선량한 젊은이가 훨씬 더 많고 그래서 그런 젊은이들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옛날 제가 언론인이나 방송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 뉴스의 선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나쁜 뉴스보다 좋은 뉴스를 더 많이 생산해 달라고 한 적이 있는데, 사실 선정적인 뉴스를 더 많이 생산하는 이유가 선정적인 뉴스가 더 많이 소비되기 때문이잖아요? 좋은 것은 놔두고 욕하면서 굳이 나쁜 것을 보고, 보고난 뒤에는 비관주의에 빠지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한 꺼풀 뒤집어 보면 좋은 것,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우리 세상이고 그래서 참 고맙습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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