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특파원 24시] 신랑 전봇대에 묶고 신부 추행… 中 전통 이름으로 ‘민폐 축하연’

입력
2019.05.26 15:00
수정
2019.05.26 19:03
17면
0 0
결혼식을 마친 하객들이 신랑을 나무에 묶어놓았다. 오랜 전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요란하고 떠들썩한 축하로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모욕감을 주는 비윤리적인 악질 행위나 다름없다. 중신망 캡처
결혼식을 마친 하객들이 신랑을 나무에 묶어놓았다. 오랜 전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요란하고 떠들썩한 축하로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모욕감을 주는 비윤리적인 악질 행위나 다름없다. 중신망 캡처

신랑을 전봇대에 묶고, 신부를 추행하고, 들러리는 깔아뭉개고.

요란한 결혼 축하 문화에 중국인들이 진저리를 내고 있다. 한때 미담과 관습으로 존중받았지만 이제는 민폐를 넘어 폐습으로 전락해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혼례를 마치고 나면 ‘결혼 소란(婚閙)’이라는 독특한 통과의례를 거친다. 우리의 피로연과 비슷하다. 하객들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조성해 악귀를 내쫓고, 결실을 맺은 부부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좋은 취지로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 자극적인 볼거리 위주로 바뀌면서 이제는 아예 신랑신부에게 모욕을 주고 상대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리 만족하는 악성 행사로 변질됐다. 그렇다고 일생일대의 대사를 치른 좋은 날에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낼 수도 없는 터라, 이제 막 결혼식장을 나선 선남선녀는 도를 넘은 하객들의 과도한 요구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순순히 응하는 실정이다.

급기야 지난 16일 문제가 터졌다.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 싱탄(杏檀)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 여러 명의 남성 하객이 침대에 깔린 여성 들러리 위에 올라가 낄낄대는가 하면 다른 남성은 바지를 벗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문제의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되자 공안은 즉시 조사에 착수했지만 어느 선에서 처벌할지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예전에도 온갖 폭력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예복 차림의 신랑에게 맥주와 간장, 식초를 뿌려대는 것은 그나마 애교 수준이다. 신랑을 나무나 전봇대에 묶어놓는가 하면, 팔다리를 붙잡고서 질질 끌고 가다 머리가 심하게 다치고 소화기에 맞아 질식사한 경우도 있다.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뒤집거나 여성 들러리의 가슴을 만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7~8년 전부터 이처럼 야만적인 행동이 부쩍 늘면서 사회 전체가 찬반 양론으로 맞붙는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오랜 전통이라며 딱히 처벌을 하지 않고 번번이 어물쩍 넘어가면서 속으로 곪을 대로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태다.

신랑은 '나는 강간범', 신부는 '나는 피해자'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결혼식을 마친 뒤 하객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이 같은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다. 중신망 캡처
신랑은 '나는 강간범', 신부는 '나는 피해자'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다. 결혼식을 마친 뒤 하객들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이 같은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이다. 중신망 캡처

이에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수개월씩 특별단속을 벌이고 엄정처벌 방침을 밝히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경악을 금치 못했던 당시의 충격이 뇌리에서 잊어지고 나면 공권력은 금세 느슨해지고 이를 틈타 독버섯처럼 결혼식의 ‘악질’ 축하 행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 반복돼왔다. 이에 중국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문을 내려 보내는데 그치지 말고 지속적인 선도와 홍보, 처벌을 통해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문명국가에서 개를 키우는 법’이라는 포스터까지 내걸며 자부심을 뽐내고는 있지만 상상을 넘어선 반문명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중국 도처에 만연한 상태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